제목 | ■ 순수한 믿음만이 신비의 은총을 / 연중 제4주일 다해(루카 4,21-30)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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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박윤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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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2025-02-01 | 조회수96 | 추천수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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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 순수한 믿음만이 신비의 은총을 / 연중 제4주일 다해(루카 4,21-30) “오늘 이 성경 말씀이 너희가 듣는 가운데에서 이루어졌다.” 어떤 말씀이 이루어졌다는 것일까? “주님께서 나를 보내시어, 가난한 이들에게 기쁜 소식을 전하고, 잡혀간 이들에게 해방을 선포하며, 눈먼 이들을 다시 보게 하고, 억압받는 이들을 해방시켜 내보내며, 주님의 은혜로운 해를 선포하게 하셨다.” 그런데 가만히 보면, 잡혀간 이들이 해방되거나 눈먼 이들이 다시 보는 게 없다. 오히려 예수님께 무언가를 기대했다가 퇴짜를 맞고 그분을 죽이려는 분위기이다. 그렇다면 이를 어떻게 이해할지를 생각해 보자. 예수님께서는 ‘너희가 듣는 가운데에서’ 이루어졌단다. 듣지 않으면서가 아닌, 듣는 것에서여야 된단다. 이는 곧 예수님 말씀을 제대로 듣지 못하면 이루어지지 않는다는 거다. 주님 은혜는 듣는 가운데에서 이루어진다나. 고향 사람이라서, 이스라엘 민족이라서 은총 더 받는 게 아니라나. 당신 말씀을 제대로 듣는 이라면, 비록 이방인일지라도 하느님 은총을 충만히 받는단다. 말씀 잘 들었기에, 기적 체험했다는 거다.
예수님 설교에 고향 분들은 놀라며 칭찬을 보낸다. 그러나 대뜸 출신을 문제 삼아 그 능력 의심한다. ‘아니, 저이는 요셉의 아들이 아닌가? 우리 동네에서 목수 일 하던 그의 자제지?’ 이런 생각에 예수님의 본모습에 다가가는 데에는 결국 실패다. 단지 그들은 기적만을 보고자했다. 그리고는 목수의 아들이란 그 생각에 잡혀 기적의 힘을 깨닫지 못했다. 대단한 편견이다. 한쪽만 치우쳐 전체를 못 본 오해이다. 가정사에만 매달리다가 영적 모습을 내다 버린 것이다. 그래서 예수님께서는 고향에서 기적을 베풀지 않으셨다. 기적으로 편견을 깨뜨릴 수 있었지만, 그렇게 하지 않으셨다. 기적은 믿는 이에게만 주어지는 선물이기에. 예수님께서는 그들에게 믿음이 없는 것을 애석하게 여기셨다. 인생은 기적의 연속이다. 숨 쉬는 은총은 기적이다. 그렇건만 너무 당연한 것으로 여긴다. 세상에는 당연한 게 없다. 모두 것은 주님께서 주셨기에 의당 있는 거다. 당연하게 여기는 그 선을 꼭 넘어야만 한다. 그래야 삶의 편견을 깰 수가 있다. 의인들이 고향에서 대접받지 못하는 일은, 예나 지금이나 인간사에서 흔히 볼 수 있다. 공자는 사리를 따지고 대의명분을 밝히는 데에 누구보다도 해박하고 달변이었지만 유독 고향에 머물러 있을 때에는 의기소침하고 침묵만을 지켰단다. 공자의 전기인 ‘공자세가(孔子世家)’에 따르면 공자는 사생아였다나. 이러한 사실을 익히 아는 동네 사람들에게는 공자의 그 높은 가르침은커녕, 그 인격 자체도 인정과 존경을 결코 받지 못했을 게다. 이렇게 고향에서 받는 냉대는 일찍이 예언자들의 삶에서도 찾아볼 수 있었고, 예수님의 삶에서도 마찬가지였다. 고향 사람들에게 환영받지 못하고 배척당하시는 예수님의 모습을 바라보면, 이러한 냉대의 원인은 사실 예수님의 인격이나 언행이 아니라, 예수님을 바라보는 고향 사람들의 비뚤어진 편견일 것이다. 곧 예수님을 있는 그대로 보기보다는 예수님에 대한 자신들의 속빈 생각과 철없는 감정에 기준하여 바라본 것이다. 인간의 마음은 참으로 신기하여 사물이 있는 그대로 인식되지 않고, 자신이 바라보고 싶은 그대로 보려하고, 듣고 싶은 대로 들리게 되는 이상한 특성이 있다. 다시 말하면, 인간은 자신의 마음에 따라서 객관적으로 통용되는 것임에도 주관적으로 달리 여기기도 한단다. 그래서 마음이 순수한 이가 하느님 잘 뵙는단다. 어린아이마냥 순수한 마음으로 바라보고 받아들인다면, 예수님의 기적 같은 능력을 맞보면서 크나큰 은총을 체험하게 될 게다.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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