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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송영진 신부님_<평범하든 특별하든, 지금 여기서 예수님을 만나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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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최원석 쪽지 캡슐 작성일2025-02-05 조회수102 추천수2 반대(0) 신고

 

“예수님께서 그곳을 떠나 고향으로 가셨는데 제자들도

그분을 따라갔다. 안식일이 되자 예수님께서는 회당에서

가르치기 시작하셨다. 많은 이가 듣고는 놀라서 이렇게

말하였다. ‘저 사람이 어디서 저 모든 것을 얻었을까?

저런 지혜를 어디서 받았을까? 그의 손에서 저런 기적들이

일어나다니! 저 사람은 목수로서 마리아의 아들이며, 야고보,

요세, 유다, 시몬과 형제간이 아닌가? 그의 누이들도 우리와

함께 여기에 살고 있지 않는가?’ 그러면서 그들은 그분을

못마땅하게 여겼다. 그러자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이르셨다.

‘예언자는 어디에서나 존경받지만 고향과 친척과

집안에서만은 존경받지 못한다.’ 그리하여 예수님께서는

그곳에서 몇몇 병자에게 손을 얹어서 병을 고쳐

주시는 것밖에는 아무런 기적도 일으키실 수 없었다.

그리고 그들이 믿지 않는 것에 놀라셨다(마르 6,1-6).”

1) 나자렛 사람들이 한 말은, “목수는 목수 일이나

할 것이지, 어찌 감히 메시아 행세를 하면서 사람들을

가르치려고 하는가?” 라는 뜻입니다.

아마도 그들은 ‘목수’ 라는 직업과 가난한 집안이라는 것

때문에, 예수님과 예수님의 집안을 그 전부터 무시하고

업신여겼던 것 같습니다.

그들도 예수님의 말씀이 ‘지혜의 말씀’이라는 것을,

즉 ‘하느님의 말씀’이라는 것을 알아들었고, 예수님께서

일으키신 기적을 기적으로 알아보긴 했는데, 그것이 오히려

예수님을 못마땅하게 여기는 이유가 되었습니다.

‘말씀’의 은총과 ‘기적’은, 평범한 사람을 통해서는

오지 않는다는 고정관념 때문입니다.

<‘못마땅하게 여겼다.’ 라는 말은, 그들이 ‘말씀’을

‘말씀’으로 받아들이기를 거부했고, ‘기적’을 ‘기적’으로

인정하기를 거부했다는 뜻이기도 합니다.

그것은 알아듣고 알아본다고 해서 꼭 믿음을

갖게 되는 것은 아니라는 것을 나타냅니다.>

“예언자는 어디에서나 존경받지만 고향과 친척과

집안에서만은 존경받지 못한다.” 라는 말씀은, “하느님을

모르고 살던 이방인들은 나의 복음을 믿고 받아들이는데,

하느님을 잘 알고 있고 믿고 있다고 자처하는 너희는 왜

나의 복음을 거부하는가?” 라고 꾸짖으시는 말씀입니다.

예수님께서 고향 나자렛에 가신 것은 존경받기 위해서가

아니라, 복음을 선포하고 그들을 구원하기 위해서였는데,

구원받기를 거부하면 구원할 수가 없습니다.

<예수님께서 사용하신 ‘존경’이라는 말은, 나자렛 사람들이

‘말씀’의 은총과 ‘기적’을 ‘무시’했음을 암시합니다.>

“아무런 기적도 일으키실 수 없었다.” 라는 말은,

“기적을 일으킬 기회가 없었다.” 라는 뜻입니다.

몇몇 병자 외에는 청하는 사람이 없었기 때문에,

즉 사람들이 받기를 거부했기 때문에

치유의 은총을 주시려고 해도 주실 수가 없었던 것입니다.

“그들이 믿지 않는 것에 놀라셨다.” 라는 말은, “그들이

믿지 않는 것을 안타까워하셨다.” 라는 뜻입니다.

2) 나자렛 사람들이 예수님을 믿지 않았다는 이야기는

요한복음에 있는 ‘예루살렘 주민들’이 한 말에 연결됩니다.

“메시아께서 오실 때에는 그분이 어디에서 오시는지

아무도 알지 못할 터인데, 우리는 저 사람이

어디에서 왔는지 알고 있지 않습니까?(요한 7,27)”

메시아께서 어디에서 오시는지 아무도 알지 못한다는

말은, 메시아는 일반인들과는 다른 신비스러운 존재라는

고정관념을 나타냅니다.

“우리는 저 사람이 어디에서 왔는지 알고 있지 않습니까?”

라는 말은, 나자렛의 가난한 목수라는 것이 널리 알려져

있는 예수에게는 신비감이 하나도 없다는 뜻입니다.

그러니 메시아가 아니라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그들에게 이런 말씀을 하셨습니다.

“너희는 나를 알고 또 내가 어디에서 왔는지도 알고 있다.

그러나 나는 나 스스로 온 것이 아니다. 나를 보내신 분은

참되신데 너희는 그분을 알지 못한다. 나는 그분을 안다.

내가 그분에게서 왔고 그분께서 나를 보내셨기

때문이다.’(요한 7,28-29)”

“너희는 나를 알고 또 내가 어디에서 왔는지도 알고 있다.”

라는 말씀은, “내가 나자렛의 목수라는 것을 너희는 알고

있지만, 그것은 나를 아는 것이 아니다.” 라는 뜻입니다.

“나는 나 스스로 온 것이 아니다. 나를 보내신 분은

참되신데” 라는 말씀은, 당신은 하느님께서 보내신

메시아라는 것을 암시하신 말씀입니다.

“너희는 그분을 알지 못한다.” 라는 말씀은, “너희는

하느님을 잘 안다고 자부하지만 모르고 있다.”,

즉 “너희는 신앙생활을 제대로 하지 않고 있다. 그래서

하느님께서 하시는 일을 모르고 있다.” 라는 뜻입니다.

<신앙생활을 제대로 하는 참된 신앙인이라면, 예수님이

메시아라는 것을 바로 알아보고 믿었을 것이라는 뜻입니다.>

3) 메시아는 신비스럽게 오시는 존재라는 생각도, 반대로

평범한 사람으로 오신다는 생각도, 또 하느님께서

하시는 일은 일상생활에서 이루어져야 한다는 생각도,

모두 다 잘못된 고정관념입니다.

하느님께서 하시는 일을 인간이 마음대로 판단할 수 없고,

마음대로 규정지을 수 없습니다.

예수님께서는 가난한 집안의 아기로 태어나셨지만, 끝까지

평범하고 보잘것없는 모습만 유지하신 것은 아닙니다.

사도들은 예수님께서 물 위를 걸으시는 모습도 보았고,

영광스럽게 변모하시는 모습도 보았고, 죽음에서 부활하신

예수님을 만났고, 예수님께서 승천하시는 모습도 보았습니다.

특별하고 신비스러운 모습이든지 평범한 모습이든지 간에

우리에게 중요한 것은 ‘바로 지금 여기에서’

예수님을 만나고, 믿고, 함께 사는 것입니다.

송영진 모세 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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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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