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 송영진 신부님_<예수님도 고치실 수 없는 병자들이 있습니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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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글 | 송영진 신부님_<“믿음이란, 믿으려고 노력하는 것”입니다.> | |||
작성자최원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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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2025-02-10 | 조회수210 | 추천수2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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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들은 호수를 건너 겐네사렛 땅에 이르러 배를 대었다. 그들이 배에서 내리자 사람들은 곧 예수님을 알아보고, 그 지방을 두루 뛰어다니며 병든 이들을 들것에 눕혀, 그분께서 계시다는 곳마다 데려오기 시작하였다. 그리하여 마을이든 고을이든 촌락이든 예수님께서 들어가기만 하시면, 장터에 병자들을 데려다 놓고 그 옷자락 술에 그들이 손이라도 대게 해 주십사고 청하였다. 과연 그것에 손을 댄 사람마다 구원을 받았다(마르 6,53-56).”
1) 예수님께서는 ‘말씀’만으로 복음을 선포하신 것이 아니라, ‘치유의 은총’으로도 복음을 선포하셨습니다. 예수님의 ‘치유’는 사람들을 모으기 위한 일이 아니라, 즉 복음 선포를 하기 위한 수단이 아니라, 그 일 자체가 복음 선포였습니다. 사람들은 ‘치유의 은총’을 통해서 하느님 나라의 기쁨을 체험하게 되었을 것이고, “다시는 죽음이 없고, 다시는 슬픔도 울부짖음도 괴로움도 없는”(묵시 21,4) 하느님 나라를 믿고 희망하게 되었을 것입니다. 그리고 ‘치유의 은총’을 받은 사람들 가운데 일부는 예수님을 ‘그 나라로 인도해 주시는 메시아’로 믿었습니다. 병의 치유로만 만족하고서 그냥 가버린 사람들도 많았고......
2) 질병의 고통은 인간이 겪는 고통들 가운데 가장 대표적인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인간들의 모든 처지를 가엾게 여기셨지만, 병자들과 장애자들을 특별히 더 가엾게 여기셨습니다. ‘사람의 힘’으로 고칠 수 있는 병이라면, 그냥 고치면 되는데, ‘사람의 힘’으로 고칠 수 없는 병이라면 하느님을 찾을 수밖에 없습니다. 예수님께서는 당신을 찾아온 병자들을 당신이 가지고 계시는 ‘하느님의 권능’으로 고쳐 주셨습니다. 믿음이 없거나 부족한 사람들은 예수님을 ‘병을 잘 고치는 의사’로만 생각했지만, 예수님은 ‘병을 잘 고치는 의사’가 아니라, ‘병을 지배하시는 주님’이신 분입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는 병자들을 고쳐 주실 때 당신의 말씀만으로 고쳐 주셨습니다. “예수님께서는 회당을 떠나 시몬의 집으로 가셨다. 그때에 시몬의 장모가 심한 열에 시달리고 있어서, 사람들이 그를 위해 예수님께 청하였다. 예수님께서 그 부인에게 가까이 가시어 열을 꾸짖으시니 열이 가셨다. 그러자 부인은 즉시 일어나 그들의 시중을 들었다(루카 4,38-39).” <“열을 꾸짖으시니 열이 가셨다.”는 “열에게 떠나라고 명령하시니, 그 명령에 복종하고 열이 떠나갔다.”입니다.> “그저 한 말씀만 해 주십시오. 그러면 제 종이 나을 것입니다(마태 8,8).” <이 말은 어떤 백인대장이 한 말인데, 그는 “예수님은 ‘병’을 지배하시는 주님”이라고 믿고 있었습니다. 그 믿음은 사실상 “예수님은 하느님”이라는 믿음입니다.>
3) 예수님은 ‘병을 지배하시는 주님’이신 분이지만, 예수님도 고치시지 못하는 병자들이 있습니다. 자기가 병이 들었다는 것을 부정하는 사람들, 자기가 병자라는 것을 인정하지 않는 사람들, 자기는 건강하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은 치료받을 생각 자체를 하지 않기 때문에 병을 고쳐 달라는 청을 하지도 않을 것이고, 예수님도 그런 사람들은 고쳐 주시지 못합니다. 자기가 병이 들었다는 것을 알고 있고, 자기가 병자라는 것을 인정하지만, 예수님을 믿지 않아서 예수님께 치유의 은총을 청하지 않는 사람들도 고쳐 주실 수가 없습니다. 원래 은총은, 받기를 원하고 받으려고 노력하는 사람이 받게 됩니다. 원하지도 않고 받는 것을 거부하는 사람들은, 자기들이 안 받아서 못 받게 됩니다.
4) 자신의 병을 고통스러워하고, 치유되기를 간절하게 원하고, 또 치유를 위해서 노력하긴 하는데, 몸의 건강만 생각하고 영혼의 건강은 생각하지 않는 사람이 있습니다. 요한복음 5장의 ‘벳자타 못 가의 병자’가 대표적인 예입니다. 그는 치유되기를 간절하게 원하고 있었지만, 예수님을 몰랐기 때문에 예수님께 치유의 은총을 청하지 않았습니다. 그래도 예수님께서는 그를 가엾게 여기셔서, 그의 믿음과는 상관없이 그를 고쳐 주셨습니다(요한 5,8-9). 그런데 그는 안식일 규정에 관한 문제로 시비가 붙자, 유대인들에게 가서 예수님을 신고했습니다(요한 5,15). 그것은 명백하게 ‘배은망덕’이고, 자기가 받은 은총을 스스로 ‘헛일’로 만들어버린 일입니다. 몸의 병은 고쳤지만, 영혼의 병은 그대로 남아 있었던 것인데, 그것은 전적으로 그 자신의 탓입니다.
5) 몸의 병을 고치는 것은, 또 몸의 건강을 되찾고 유지하는 것은, 누구에게나 필요한 일이고 중요한 일입니다. 그러나 몸만 건강하고 영혼은 병든 상태라면, 그 ‘몸의 건강’은 아무것도 아닌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벳자타 못 가의 병자’에게, “자, 너는 건강하게 되었다. 더 나쁜 일이 너에게 일어나지 않도록 다시는 죄를 짓지 마라(요한 5,14).” 라는 말씀을 하셨습니다. 이 말씀은, 그의 ‘몸’이 완전히 치유되었음을 확인해 주시는 말씀이기도 하고, ‘몸의 치유’로만 만족하지 말고 ‘영혼의 구원’을 향해 나아가라는 가르침이기도 합니다. ‘더 나쁜 일’은 ‘구원받지 못하는 일’입니다. 그가 예수님을 신고한 것은, 예수님을 믿기를 거부한 것이고, 예수님께서 주시는 구원을 받기를 거부한 것이기 때문에, ‘더 나쁜 일’은 그가 예수님을 신고할 때 이미 일어난 것과 같습니다.
송영진 모세 신부 ------------------------------------- [출처] 연중 제5주간 월요일 강론|작성자 송영진 모세 신부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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