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미사

우리들의 묵상/체험

제목 [연중 제5주간 목요일]
이전글 이전 글이 없습니다.
다음글 황혼의 삶 |1|  
작성자박영희 쪽지 캡슐 작성일2025-02-13 조회수96 추천수4 반대(0) 신고

[연중 제5주간 목요일] 마르 7,24-30 “주님, 그러나 상 아래에 있는 강아지들도 자식들이 떨어뜨린 부스러기는 먹습니다.”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은 이방인과 유대인들이 뒤섞여 살아가는 접경지역 ‘티로’ 지방으로 가십니다. 당신이 그곳에 계시다는 걸 아무에게도 알리지 않으시고 외딴 곳에서 홀로 조용히 쉬고자 하신 것인데, 그분이 오신 것을 어찌 알았는지 한 이방인 여인이 찾아와 그분 앞에 납작 엎드립니다. 그리고는 자기 딸에게 들린 더러운 영을 좀 쫓아주시기를 간절히 청하지요. 자기 딸을 괴롭히는 악령을 쫓아내기 위해 백방을 찾아다니며 갖은 노력을 다해봤지만 허사였고, 그녀에게는 예수님이 ‘최후의 보루’였기에 자존심이고 뭐고 다 내팽개치고 그분 앞에 납작 엎드렸던 겁니다. 그런 그녀의 처지가 딱하긴 했지만, 예수님께서는 아직 유다인들에게 하느님 나라의 복음을 전해야 할 당신의 사명을 완수하지 못하셨기에, 아직 이방인들에게는 하느님의 사랑과 자비를 보여줄 ‘때’가 되지 않았기에, 냉정하고 단호한 어조로 거부의사를 분명히 하시지요.

 

“먼저 자녀들을 배불리 먹여야 한다. 자녀들의 빵을 집어 강아지들에게 던져 주는 것은 옳지 않다.”

 

만약 내가 예수님으로부터 그런 말씀을 듣는다면 어떤 기분일까요? 나의 간절한 청원이 단순히 거절당하는 정도가 아니라, 큰 멸시와 모욕까지 받았다고 느껴지면 마음에 큰 상처를 받고 절망하여 예수님으로부터 등을 돌리게 될 겁니다. 큰 분노와 배신감에 사로잡혀서는 내 청원을 들어주기 싫으시면 관두시라고, 나도 당신처럼 차갑고 무서운 분께 더 이상 매달리기 싫다고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겠지요. 하지만 나를 깊은 절망에 빠뜨리는 그 좌절의 순간이 다른 한편으로는 주님을 향한 나의 믿음을 더 깊은 차원으로 이끄는 기회가 되기도 합니다. 더 이상 잃을 게 없으니 ‘에라 모르겠다’는 심정으로 주님께 ‘올인’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오늘 복음 속 여인이 그렇게 했지요.

 

“주님, 그러나 상 아래에 있는 강아지들도 자식들이 떨어뜨린 부스러기는 먹습니다.”

 

그녀는 자기 청원이 무시당하는 것으로도 모자라 자신이 ‘강아지’로 취급되는 치욕스러운 상황을 기분 나쁘게 생각하지 않고, 오히려 자신이 주인의 밥상만 쳐다보는 강아지처럼 구원의 식탁에 참여할 자격이 없는 비천한 존재임을 고백합니다. 아직 하느님에 대해 그리고 성경 말씀에 대해 잘 모르는 이방인이지만, 주님께서 베푸시는 은총의 부스러기만이라도 얻을 수 있다면 자신이 구원받는데에는 그것으로도 충분하다는 믿음으로 더 겸손하게 그러나 더 간절하게 주님께 매달린 겁니다. 다른 유다인들처럼 주님의 은총을 자기가 당연히 누려야 할 권리처럼 요구하지 않고, 주님의 자비에 온전히 의탁하며 겸손하게 청하는 모습에 주님은 생각을 바꿔 그녀에게 구원의 은총을 베푸시지요. 믿음은 선택입니다. 그럴만한 근거가 있어서, 믿는 게 자신에게 이득이 되어서 믿는 게 아니라, 내가 믿고 의지할 분이 주님 뿐이기에, 그분 뜻을 따르는 것이 나에게 가장 좋은 길임을 확신하기에 온갖 시련과 고통에도 불구하고 주님을 믿고 따르기로 선택하는 것이지요. 그리고 주님은 우리의 그 선택에 반드시 큰 은총으로 보답해 주십니다. 

 

* 함 승수 신부님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태그
COMMENTS※ 500자 이내로 작성 가능합니다. (26/500)
[ Total 27 ] 기도고침 기도지움
등록하기
※ 로그인 후 등록 가능합니다. 파일 찾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