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 이영근 신부님_ “저 군중이 가엾구나.”(마르 8,2)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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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최원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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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2025-02-15 | 조회수71 | 추천수3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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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늘의 말씀(2/15) : 연중 제5주간 토요일 * 제1독서 : 창세 3, 9-24 * 복음 : 마르 8, 1-10
1 그 무렵에 다시 많은 군중이 모여 있었는데 먹을 것이 없었다. 예수님께서 제자들을 가까이 불러 말씀하셨다. 2 “저 군중이 가엾구나. 벌써 사흘 동안이나 내 곁에 머물렀는데 먹을 것이 없으니 말이다. 3 내가 저들을 굶겨서 집으로 돌려보내면 길에서 쓰러질 것이다. 더구나 저들 가운데에는 먼 데서 온 사람들도 있다.” 4 그러자 제자들이 “이 광야에서 누가 어디서 빵을 구해 저 사람들을 배불릴 수 있겠습니까?” 하고 대답하였다. 5 예수님께서 “너희에게 빵이 몇 개나 있느냐?” 하고 물으시자, 그들이 “일곱 개 있습니다.” 하고 대답하였다. 6 예수님께서는 군중에게 땅에 앉으라고 분부하셨다. 그리고 빵 일곱 개를 손에 들고 감사를 드리신 다음, 떼어서 제자들에게 주시며 나누어 주라고 하시니, 그들이 군중에게 나누어 주었다. 7 또 제자들이 작은 물고기 몇 마리를 가지고 있었는데, 예수님께서는 그것도 축복하신 다음에 나누어 주라고 이르셨다. 8 사람들은 배불리 먹었다. 그리고 남은 조각을 모았더니 일곱 바구니나 되었다. 9 사람들은 사천 명가량이었다. 예수님께서는 그들을 돌려보내시고 나서, 10 곧바로 제자들과 함께 배에 올라 달마누타 지방으로 가셨다.
* <오늘의 강론> 군중이 모여 있었는데, 먹을 것이 없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을 가까이 불러 말씀하셨습니다. “저 군중이 가엾구나. ~내가 저들을 굶겨서 집으로 돌려보내면 길에서 쓰러질 것이다.”(마르 8,2-3)
예수님께서는 사람들을 굶겨서 돌려보내고 싶지 않으셨습니다. 그들을 소중히 여기시고 사랑하셨습니다. 그들이 청하지도 않는데도 이미 먹이셨고, 미처 바라지도 않는 데도 이미 용서하셨고, 가엷게 여기셨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에게 물으십니다. “‘너희에게는 빵이 몇 개 있느냐?’ 그러자 그들이 ‘일곱 개 있습니다.’ 하고 대답하였습니다.”(마르 7,5)
그렇습니다. 빵은 이미 ‘우리’에게 있습니다. 주님께서는 그것을 일깨워주시고 확인시켜 주십니다. 사실, 그들에게는 빵이 이미 “일곱 개”나 있었습니다. ‘일곱’은 완전함의 숫자입니다. 곧 이미 차고 넘치게 있는 것입니다. 그러니 그들은 “빵”이 없거나 부족해서가 아니라, 단지 그것을 모르고 있거나 인정하지 않고 있을 뿐이었습니다. 아니, 나누기를 원하지 않은 까닭이었습니다. (사실, 이는 오늘 날의 우리도 마찬가지입니다. 오늘날 세계에서 생산되는 식량은 약 120억 명이 먹을 수 있는 양이라고 합니다. 현재 인구가 약 85억이라면 그 양은 차고 넘치지만, 버리는 음씩 쓰레기가 쌓여가도 굶주린 이들에게는 주지를 않는 세상입니다. <유엔세계식량기구>가 발표한 통계에 따르면(2017년), 현재 인류의 생명을 가장 많이 앗아가는 것이 ‘기아’이고, 매일 1만 6천명의 어린아이가 기아로 죽고 있으며, 이는 모든 질병으로 죽어가는 사람을 다 합친 숫자보다 더 많다고 합니다. 또한 세계 인구의 일곱 명 중이 한 명은 오늘 저녁식사를 굶은 채 잠자리에 든다고 합니다. 그러니 그 어떤 것도 우리의 이기심과 무관심을 정당화하지 못할 것입니다.) 사실, ‘있는 것’을 없다고 여기는 것은 무지요, ‘있는 것’의 가치를 모르는 것은 어리석음일 것입니다. 나아가, 나누기를 원하지 않은 것은 무관심과 무감각, 무책임과 이기심, 자기 안주와 사랑이 부족한 까닭일 것입니다. 또한, 우리가 이미 가지고 있는 하느님의 말씀과 사랑을 보지 못하고 또한 찾지 않는다면, 그것이 바로 무지요 어리석음이요, 사랑의 소명에 대한 무감각일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우리에게는 이미 그 “빵”이 있습니다. 무엇보다도, “말씀의 빵”이 있습니다. 그것은 이미 ‘은총’입니다. 우리가 이 빵의 가치를 진정으로 안다면, 벅찬 감격에 까무러칠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다름 아닌 ‘우리에게 있는 바로 그 빵’으로 감사드리셨고, 제자들은 ‘그 빵’을 군중들에게 나누어 주었습니다. 우리는 이미 이 “빵”을 먹었고, 또한 곧 먹을 것입니다. 성찬의 전례를 통해 ‘그리스도의 몸’을, 말씀의 전례를 통해서 ‘그리스도의 말씀’을 먹었습니다. 그런데 우리가 먹고도 먹은 줄을 모른다면 참으로 어리석은 일일 것입니다. 이제는 우리가 먹은 ‘그리스도의 생명’을 살아야 할 일입니다. 그것은 무엇보다도 말씀을 나누는 일, 곧 복음 선포가 될 것입니다. 아우구스티누스는 말합니다. “성경을 풀이해 주는 것은 빵을 떼어 주는 것과 같다.” “저 군중이 가엾구나.”(마르 8,2)
주님! 속 깊은 곳을 환히 보시고 깊이 숨겨진 말도 다 들으시니, 제 마음 안에 당신의 빛을 비추소서. 제 가슴 속에 가엾이 보는 눈과 마음을 주소서. 약한 이들을 소중히 여기고 사랑하게 하소서.아멘.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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