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 연중 제6주간 월요일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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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조재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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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2025-02-16 | 조회수115 | 추천수4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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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대에 가면 ‘사수와 부사수’가 있습니다. 사수는 오랜 경험과 능력을 갖춘 군인입니다. 사수는 이제 곧 제대를 앞두고 있습니다. 부사수는 이제 훈련을 마치고 부대에 배치된 신병입니다. 사수는 마치 암탉이 병아리를 돌보듯이 부사수를 돌봐줍니다. 내무반 생활, 행정 업무, 외출과 외박에 대한 것을 알려줍니다. 사수가 있기에 다른 선임병들이 부사수를 괴롭히지 못합니다. 사수에게 업무를 배우면서 부사수는 가끔 생각합니다. ‘사수가 제대하면 내가 더 잘할 수 있지 않을까?’ 그러나 사수가 제대하고 나면 어려운 상황을 만나게 되었을 때 당황하게 됩니다. 그렇게 몸으로 배우면서 부사수는 진정한 사수가 됩니다. 저도 사수가 되었을 때, 훈련을 마치고 전입온 부사수에게 업무를 가르쳤습니다. 간혹 사수 중에는 부사수를 괴롭히고, 업무를 잘 가르쳐주지 않는 사수도 있었습니다. 그러면 부사수는 낙동강 오리알처럼 힘든 시간을 보내게 됩니다. 오늘 우리는 성경에서 가장 비극적인 형제 이야기, 카인과 아벨의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카인은 아벨을 시기하여 들판에서 그를 살해합니다. 그리고 하느님이 카인에게 물으십니다. "네 아우 아벨은 어디에 있느냐?" 카인은 이렇게 대답합니다. "내가 내 아우를 지키는 자입니까?" 이 질문과 대답은 인간관계의 핵심을 묻습니다. "나는 내 형제를 지키는 자인가?" 이는 단순히 카인에게만 주어진 질문이 아닙니다. 하나님께서는 이 질문을 오늘날 우리에게도 던지고 계십니다. 우리 곁에 있는 형제자매는 어디에 있습니까? 우리는 그들을 지키는 자입니까? 프란치스코 교황님은 착좌 뒤 첫 방문지로 이탈리아 최남단의 람페두사를 찾았습니다. 람페두사는 전쟁과 가난으로 생명의 위협을 받는 아프리카 난민들이 유럽으로 가기 위해 거치는 중간 기착지와 같은 곳입니다. 교황님이 방문하기 전에 람페두사 해변에 한 아이의 시신이 발견되었습니다. 교황님은 그 소식을 듣고 람페두사를 방문하였습니다. 교황님은 이렇게 이야기했습니다. “‘아담아 너 어디 있느냐?’ ‘(카인아) 네 아우는 어디 있느냐?’ 이것은 인간 역사의 여명기에 하느님께서 인간에게 던지신 두 가지 질문입니다. 동시에 이 시대의 모든 이들에게, 우리 한 사람 한 사람에게 던지시는 질문이기도 합니다. 그러나 저는 여러분에게 세 번째 질문을 던지고자 합니다. “누가 이들을 위해 울고 있습니까?” 여기 형제자매들의 죽음에 누가 애통해하고 있습니까? 이 (죽음의) 배를 탄 사람들을 위해 누가 울고 있습니까? 어린 것들을 안고 있는 이 젊은 엄마들을 위해, 가족을 위해 일자리를 찾아 나선 이 남자들을 위해서 누가? 우리는 어떻게 울어야 할지를, 어떻게 연민을 경험해야 할지를 잊었습니다. 이웃과 함께하는 ‘고통’ 말입니다. 무관심의 세계화가 우리에게서 슬퍼하는 능력을 제거해 버렸습니다! 우리의 무관심을 슬퍼하고, 세상과 우리 마음의 야만성을 슬퍼하며, 또한 지금과 같은 비극적 상황을 초래하는 사회경제적 결정들을 용납하는 익명성의 야만에 슬퍼하는 은총을 주십사 주님께 청합시다. ‘누가 울고 있습니까?’ 오늘 이 시간, 이 세상에서 누가 울고 있습니까?” 오늘 바리사이파와 율법학자들은 예수님께 ‘표징’을 요구합니다. 하느님께서 창조하신 이 아름다운 세상이 표징입니다. 하느님께서 보여주신 사랑이 표징입니다. 그 사랑 때문에 외아들 예수님을 보내 주신 것이 표징입니다. 우리를 위해서 십자가를 지고 돌아가셨지만, 부활하신 예수님께서 표징입니다. 이미 표징은 차고 넘치고 있습니다. 우리가 새로운 표징을 요구할 것이 아니라 지금까지 보여주신 ‘표징’에 감사드리면서 별을 노래하는 마음으로 모든, 죽어가는 것을 사랑하면 좋겠습니다. 이 세상에는 우리가 지켜야 할 "형제들"이 너무도 많습니다. 우리의 도움이 필요한 가난한 이들, 삶의 의미를 찾지 못해 방황하는 이들, 신앙 안에서 위로를 찾고자 하는 이들이 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우리에게 "네 이웃을 사랑하라"고 명령하셨습니다. 이웃을 사랑하는 것은 단순한 선택이 아니라 그리스도인의 필수적 삶입니다. 하느님은 오늘도 우리에게 묻고 계십니다. "네 아우는 어디에 있느냐?" 우리 곁에 있는 형제자매를 돌아보면 좋겠습니다. 그들의 고통과 아픔을 함께 아파하면 좋겠습니다. 그리고 이렇게 대답하면 좋겠습니다. "주님, 저는 제 형제와 자매를 지키는 자입니다." 이제 우리가 해야 할 일은 분명합니다. 형제애와 사랑을 실천하며, 하느님의 정의와 자비를 세상에 드러내는 삶을 사는 것입니다. 우리가 모두 형제의 지킴이가 될 수 있기를 간절히 기도합니다. “주님, 우리가 형제자매의 고통에 눈을 감지 않게 하소서. 그들을 사랑으로 돌보고, 당신의 자비를 전하며, 당신의 뜻을 이 땅에서 이루게 하소서.”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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