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 사람들이 너희를 미워하면, 그리고 사람의 아들 때문에 너희를 쫓아내고 모욕하고 중상하면, 너희는 행복하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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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최원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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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2025-02-16 | 조회수64 | 추천수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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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이 가난한 사람은 행복하다고 말씀하십니다. 그리고 주님의 부활을 제 2독서는 말씀하시고 1독서는 주님에게 희망을 두는 사람을 말씀하십니다. 그럼 어떻게 살아야 신앙인은 신앙인 다운 삶인가? 어려운것 같아요. 내 모습도 두 모습입니다. 하나는 하느님 닮아가는 모습이 있고 내가 내 자신의 왕국을 완성해 가는 과정이 있습니다. 백수 생활 혹은 가난한 생활하면서 사람들에게 비추어진 나의 모습과 세상 사람들에게 비추어진 내 모습은 상관 하지 않고 오직 하느님만 바라보는 내 모습이 있습니다. 그런데 외양것도 중요합니다. 내적으로 주님 닮아가는 모습은 더 중요합니다. 저가 인생에서 가장 어려운 순간을 말하라고 하면 저는 박사과정 때 이고 그 이후 줄곧 가난한 삶과 삶에서 수없이 많은 백수 생활을 한것입니다. 내가 선택한 삶입니다. 특허 업무 하면서 나이 50넘어가면 백수로 넘어갈 것이 두려워서 나름 준비한 것입니다. 그런데 그 준비하는 삶이 내 기대치와 많이 달라졌습니다. 그래서 매일 매일이 삶에 희망이 없는 절벽과 같은 삶을 살았습니다. 인간이 바라보는 삶을 살은 것입니다. 가난과 수없이 많은 절벽의 절망 속에서 묵상을 하게 되었습니다. 묵상 공부를 한것입니다. 그래서 지금으로 부터 딱 10년 전에 묵상 공부를 하고 묵상을 나누게 되었습니다. 당시 제가 발견한 것은 삶의 변수와 관계없이 주님을 중심으로 살게 되었고 그리고 그 속에서 삶의 Shift가 일어난 것입니다. 주님 중심의 삶입니다. 작년에 영세민 같은 삶, 한달에 100만원 미만의 돈으로 생활하면서 많이 불편했습니다. 추석과 설 명절에 5만원 집에 드리고 명절 보내시라고 말씀드릴 때. 그리고 행색이 너무 초라할 때가 너무 많았고 먹고 싶어도 먹고 싶은 것을 못 먹을 때가 많았습니다. 좋아하는 회도 못 사먹고 ..다달이 고정적으로 나가는 돈도 있었고 .. 부모님은 치매 걸려서 그 분들을 위한 돈도 나가야 했습니다. 세상 사람들이 볼 때는 절망 중에 절망 같은 상황입니다. 작년은 저에게 암흑과 같은 어두움이었을까? 그러나 그것은 세상에 비추어진 내 모습안에서 예수 없는 내 혼자만의 삶? 아닙니다. 예수님은 어느 순간이나 같이 계셨고 저는 주님과 같이 걸어갔습니다. 흔들리고 어려운 삶을 살아가는 것의 원인이 내 안에 예수 없이 세상에서 비추어진 내 모습과 내가 그것을 내 힘으로 싸워가는 사람의 모습 속에서 세상과 싸움에서 지는 모습에서 절망하는 것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어느 신부님의 지적중에 하나가 저가 너무 찌들어 사는 삶을 살아가는 것과 같다고 말씀하시는데 그런데 그렇지 않습니다. 나는 주님 안에서 주님의 도움심으로 잘 살아가고 있습니다. 중심은 흔들림은 없이 온전히 무릎을 펴고 잘 걸어가고 있습니다. 생보자와 같은 삶이지만 그러나 우선 매일 성무 일도를 빋치고 그리고 묵상을 하면서 영적 독서를 하면서 신앙의 길을 걸어가고 있습니다. 예수님의 공 생활 전반을 보면 제자들의 가난한 모습이 많이 목격합니다. 그런데 그 순간에 예수님은 세상에서 바라보는 나의 모습에 연연하지 않으십니다. 수없이 주님을 죽이려는 위협을 받으신 분이 예수님이고 실제로 세상에 붙잡혀서 돌아가신 분입니다. 그러나 주님은 그 순간에도 세상을 원망하거나 붇잡힌것으로 나의 신세를 보고 절망하거나 내가 세상으로 부터 죽음을 당하게 되었다고 자신을 원망하거나 절망하지 않으셨습니다. 꿋꿋이 주님은 하느님의 일을 하셨습니다. 하느님의 아들임에도 당신은 내가 하느님의 아들이라는 말씀으로 세상을 제압하신 분이 아니라 온전히 종의 신분으로 살아가신 분입니다. 세상 사랍들이 바라 보았을 때 절망 중에 절망입니다. 그러나 주님은 세상에서 바라보는 그런 모습을 철두 철미하게 배격하시고 온전히 하느님 안에서 하나되어서 걸어가신 분입니다. 그래서 주님은 어느 순간에도 흔들림이 없으셨습니다. 마음이 가난하셨습니다. 지금 내가 돈이 없다고 해서 절망하시거나 삶을 포기하신 분이 아니라 어느 순간에도 주님은 먹을 것을 하느님이 내게 주시고 그것으로 하느님께 감사드리고 같이 나누어 먹을 수 있다는 그런 하느님이셨습니다. 어느 순간에도 채워 주신다는 마음이 가난한 분이셨고 청빈의 삶을 살으신 분입니다. 항상 비움이 중심이 되어야 합니다. 예수님의 삶이 가난과 세상 사람들의 표적의 삶이었습니다. 그러나 그것으로 주님은 완전한 패인이었나? 아닙니다. 주님은 영적인 삶을 살으신 분입니다. 영혼의 주인이십니다. 그래서 눈에 보이는 것 넘어에 있는 것을 온전히 알고 그 속에서 살아가신 분입니다. 뿌리가 단단한 나무는 좋은 열매를 맺는다고 하는데 그 단단함은 영적인 삶을 말합니다. 예수님은 영의 근원이시고 영적인 열매를 매 순간 맺으신 분입니다. 영과 육은 서로 반대 모습입니다. 그렇기에 영적인 삶을 살아가는 사람들이 세속에서 비추어진 모습은 참 별볼일이 없어 보입니다. 영적인 사람들은 육적인 세상 사람들로 부터 공격을 받습니다. 육적인 것은 정복이 그들의 만족입니다. 그것이 정체성입니다. 정복은 악에게 인간이 복종했다는 증거입니다. 참 불쌍한 것이 정복이요 복종입니다. 그러나 주님의 영적인 삶은 참 자유이고 천국입니다. 작년에 그 혹독한 삶 속에서도 흔들리지 않고 온전히 걸어갈 수 있는 것은 묵상과 기도, 영적 독서를 하면서 하느님 중심의 삶을 살아가기에 늠늠히 살 수 있었습니다. 그 어려운 삶 속에서도 한번도 저는 물질적으로 빚이 생기지 않고 세상으로 부터 보이는 내 모습에 절망속으로 들어가지 않고 매일 매일 아침에 묵상 할 수 있게되었습니다. 그것이 내가 마음이 가난하고 청빈한 삶을 살아갔기에 가능한 것입니다. 주님 안에서 주님 중심으로 살았기에 행복하게 살아갈 수 있는 것입니다. 항상 주님을 내 중심으로.. 내 중심은 영적인 삶입니다. 아멘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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