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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반영억 신부님_보라, 너희가 하늘에서 받을 상이 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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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최원석 쪽지 캡슐 작성일2025-02-16 조회수74 추천수4 반대(0) 신고

 

찬미 예수님, 사랑합니다. 하느님께서는 우리를 사랑하시고 우리 한 사람, 한 사람이 참으로 행복하게 살기를 원하고 계십니다. 사람마다 행복의 기준이 다르지만, 우리는 주님께서 원하시는 행복을 누려야 합니다. 이 시간 참된 행복에 눈뜨기를 기도합니다.

 

오래 전입니다만, 제가 꽃동네에 있을 때 만난 사람 중에 배영희 엘리사벳 자매님이 계셨습니다. 19살에 뇌막염을 앓고 나서 앞 못 보는 전신마비 장애인이 되신 분입니다. 그는 온몸이 마비된 채 누워계셨는데 얼굴이 항상 맑고 밝은 모습이었습니다. 미소가 너무 아름다웠습니다. 서른아홉에 세상을 떠났습니다. 그가 장애인이 된 후 ‘나는 행복합니다’, ‘소라의 꿈’, ‘당신이 머무는 곳’등 많은 영혼의 시를 쓰셨습니다. 그중에 ‘나는 행복합니다’를 읽어 드리겠습니다.

 

나는 행복합니다.

 

아무것도 가진 것 없고

아무것도 아는 것 없고

건강조차 없는 작은 몸이지만

나는 행복합니다.

 

세상에서 지을 수 있는 죄악

피해 갈 수 있도록 이 몸 묶어 주시고

외롭지 않도록 당신 느낌 주시니

 

말할 수 있고

들을 수 있고

생각할 수 있는

세 가지 남은 것은

천상을 위해서만 쓰여질 것입니다.

 

그래도 소담스레

웃을 수 있는 여유는

그런 사랑에 쓰여진 때문입니다.

나는 행복합니다.

나는 행복합니다.

 

이 자매님은 다른 사람이 보기에는 전신마비 장애인이요, 불행한 사람입니다. 그러나 하느님 안에서 아주 행복한 삶을 사셨습니다. 사람들은 더 많이 소유하고 더 많이 지배하는 데서 행복을 찾습니다. 많은 사람이 하고 싶은 일을 하고, 할 수 있는 일을 하는 것을 기쁨으로 생각합니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영원한 행복은 하느님에게서 오는 것입니다.

 

우리는 일시적인 행복감이 아니라 영원한 행복을 찾아야 합니다. 아우구스티노 성인은 “하늘과 땅에 있는 모든 것을 알되 하느님을 알지 못하는 사람은 불행하며, 이 모든 것을 모르나 하느님을 아는 사람은 참으로 행복하다.”고 하였습니다. 성 베르나르도는 “내 행복은 오직 하느님 곁에 있는 것, 내 주 하느님께 희망을 두는 일 뿐입니다.” 하고 고백하였습니다. 사실 행복한 사람이란 하느님에 대해서 많은 것을 아는 사람이 아니라 하느님을 자신 안에 모신 사람입니다.

 

오늘 복음을 보면, 예수님께서는 남들은 말할 것도 없고 스스로도 불행하다고 생각하는 사람들, 가난하고 굶주리고, 울고, 미움을 사고, 쫓겨나고 욕을 먹고, 누명을 쓴 사람을 행복한 사람이라고 합니다. 그런가 하면 누가 봐도 행복한 사람들, 부요하고 배부르고, 웃고, 모든 사람에게 칭찬받는 사람을 오히려 불행하다고 하십니다. 이는 세상의 논리와 복음의 논리는 다르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독서에서 예레미야 예언자는 말합니다. ‘사람에게 의지하는 자는 저주를 받을 것이지만 주님께 신뢰를 두는 이는 복되다. 저주를 받는다는 것은 하느님께서 내치시고 벌하시는 것이 아니라 나의 욕심으로 자기 파멸을 가져온다는 말씀입니다. 그러나 하느님께 의지하면, “하늘에서 받을 상이 큽니다.” 우리는 스쳐 지나가는 이 세상이 아니라 천상의 행복을 바라보고 살아야 합니다. 바오로 사도는 말합니다. “우리가 현세만을 위하여 그리스도께 희망을 걸고 있다면, 우리는 모든 인간 가운데에서 가장 불쌍한 사람일 것입니다.”(1코린15,19).

 

한번 마음을 살펴보면 좋겠습니다. 나는 하늘나라에 속해 있는지? 아니면 세상에 속해 있는지? 주님을 위해 살고 있는지? 자신을 위해 살고 있는지? 영원한 행복을 위해 살고 있는가? 아니면 현재의 만족을 위해 살고 있는가? 분명한 것은, 지금의 상태가 나의 신앙의 현주소입니다. 예수님은 선언하십니다. “보라! 너희가 하늘에서 받을 상이 크다.” 결국, 행복한 사람은 지금 배부르고 잘 지내는 사람이 아니라 “은총의 상태 안에 있으며, 하느님의 은총 안에서 정진하고, 하느님의 길을 따라 나아가는 사람”을 의미합니다. 인내와 가난, 다른 이들에 대한 섬김, 사랑으로 위로의 길을 걷는 사람은 기쁘고 행복할 것입니다. “참 행복은 그리스도인의 신분증”(프란치스코 교황)입니다.

 

참된 행복은 물질에서 오는 것이 아닙니다. 잠언 30장 8절에서 9절의 말씀을 보면“저를 가난하게도 부유하게도 하지 마시고 저에게 정해진 약속만 허락해 주십시오. 그렇지 않으면 제가 배부른 뒤에 불신자가 되어 “주님이 누구냐?”고 말하게 될 것입니다. 아니면 가난하게 되어 도둑질하고 저의 하느님 이름을 더럽히게 될 것입니다.”라고 적혀 있습니다.

 

참으로 행복한 사람은 주님께 신뢰를 두고 그분을 차지하는 사람입니다. 오늘 화답송의 말씀입니다. “행복하여라! 주님의 가르침을 좋아하고, 밤낮으로 그 가르침을 되새기는 사람. 그는 시냇가에 심은 나무 같아, 제때에 열매 맺고, 잎이 아니 시들어, 하는 일마다 모두 잘 되리라”(시편 1,1-3).

 

여러분은 진정 행복하기를 원하십니까? 그렇다면 주님의 말씀을 믿으십시오! 그리고 믿는다면 말씀대로 실천하십시오. 그리하면 반드시 행복해질 것입니다. 주님을 차지하십시오. 성모님께서도 “주님께서 하신 말씀이 이루어지리라고 믿으신 분!”(루카1,45)으로서 행복하셨습니다. 사람들은 사물의 거죽만 보고 그것이 전부인 줄 압니다. 그러나 믿는 우리는 우리에게 약속된 하느님 나라, 영원한 생명이 있고, 웃게 될 날이 있고, 받을 상이 크다는 것을 압니다. 그래서 행복합니다. 곡식 단 들고 춤추게 될 날을 알기에 지금 눈물로 씨를 뿌릴 줄 압니다.

 

사실 오늘날의 불행은 모자람이 아니라 오히려 넘침에 있습니다. 넘치기 때문에 만족하지 못하며 감사하지 못합니다. 그래서 따뜻한 가슴을 잃어가고 남에게 행복해 보이려고 포장하다가 불행해 집니다. 여러분은 제가 행복해 보입니까? 예. 왜 행복할까요? 여러분을 만나서 행복합니다. (믿거나 말거나) 여러분도 저 때문에, 행복했으면 좋겠습니다. 저를 보내신 하느님 때문에, 아니, 하느님을 차지해서 행복하시길 바랍니다.

 

한번 옆 사람 좀 바라보세요! 그분 때문에 행복하십니까? 예, 행복하시니 다행입니다. 그런데 이 마음이 얼마나 지속될 수 있을지…… 한번 쥐어박고 싶은 분도 계시고 때로는 밥맛이 떨어질 때도 있을 것이고, 안 봤으면 속이 시원할 것 같은 마음도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주님은 바로 그 사람을 통해서 나를 단련시키시고 다듬어 주셔서 행복하게 만드신다는 것을 기억하시길 바랍니다. 지금 어렵고 고달프고 힘들더라도 부디 하느님 안에서 행복하시길 기도합니다. “기뻐하고 즐거워하여라, 너희가 하늘에서 받을 상이 크다”(마태5,12). 더 큰 사랑을 담아 사랑합니다.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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