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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연중 제6주간 금요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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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글 하느님께서 맺어 주신 것을 사람이 갈라놓아서는 안 된다.  
작성자조재형 쪽지 캡슐 작성일2025-02-20 조회수140 추천수2 반대(0)

진화의 메커니즘은 돌연변이에 있다고 합니다. 돌연변이는 환경의 변화와 위기의 상황에서 대처할 수 있는 능력을 주기도 합니다. 2020년 코로나바이러스가 팬데믹 위기를 가져왔을 때입니다. 모든 사람이 같은 면역체계를 가졌다면 인류는 더 큰 재앙에 빠졌을 겁니다. 그러나 인류는 저마다 다른 면역체계가 있어서 코로나의 위기를 이겨낼 수 있었습니다. 민주주의는 서로 다른 생각과 이념을 가진 사람들이 서로 존중하면서 더 많은 지지를 받은 정당이 국가를 운영하는 제도입니다. 비록 그 과정에서 갈등과 분열이 생기지만 그보다 더 좋은 제도를 찾지 못하였기에 대부분의 나라는 민주주의를 채택하고 있습니다. 파시즘, 봉건제도, 제국주의가 하나로 힘을 모아서 좋을 것 같지만 절대 권력은 절대 부패한다는 말처럼 인류는 그런 제도로 인해서 많은 전쟁과 폭력을 경험했습니다. 아직도 형식은 왕을 인정하는 국가가 있지만 정치의 형태는 대부분 민주주의를 채택하고 있습니다.

 

오늘 우리는 바벨탑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바벨탑 이야기는 단순히 하느님께 반역한 인간이 벌을 받은 사건이 아닙니다. 이 이야기는 우리 인간이 어디에서 와서 어디로 가야 하는지, 그리고 하느님의 계획 속에서 우리의 자리가 무엇인지 깊이 고민하게 합니다. 최근 과학 기술의 발전은 인간이 창조 질서를 스스로 결정하려는 시도를 계속하고 있습니다. DNA 돌연변이를 연구하고 유전자 편집을 시도하는 이 시대는, 어쩌면 또 다른 바벨탑을 쌓고 있는 것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하느님께서 창조하신 인간은 시간이 지나면서 변화해 왔습니다. DNA 돌연변이는 인간의 생존과 적응을 가능하게 하였고, 여러 환경 속에서 다양한 인류 집단이 형성되었습니다. 과학적으로 보면, 인간의 다양성은 자연스러운 진화의 결과입니다. 그러나 신학적으로 볼 때, 이는 단순한 자연적 현상이 아니라 하느님의 섭리가 작용하는 과정입니다. 하느님께서는 인간을 하나의 틀에 가두지 않으시고, 오히려 각자가 서로 다른 모습을 가질 수 있도록 하셨습니다.

 

문제는 인간이 자신의 지혜를 맹신할 때 발생합니다. 우리가 자신의 힘으로 유전자를 조작하고 인간을 통일된 존재로 만들려 한다면, 그것은 또 다른 바벨탑을 쌓는 것이 될 것입니다. 바벨탑 사건을 보면, 인간들은 하나의 언어를 사용하며 "하늘에 닿는 탑을 쌓자"라고 합니다. 이는 단순한 건축이 아니라 인간이 하느님 없이도 스스로 하나가 될 수 있다는 교만을 상징합니다. 그러나 하느님께서는 인간의 언어를 혼잡하게 하셔서 그들을 흩으셨습니다. 이 사건을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요? 하느님께서 인간의 통일과 협력을 방해하신 것일까요? 아닙니다. 오히려 하느님께서는 인간이 하나의 방식으로만 살아가는 것이 아니라, 다양성 속에서 참된 조화가 이루어지기를 바라셨던 것입니다. 세상을 보면, 다양한 민족과 문화, 언어가 존재합니다. 어떤 사람들은 이를 "분열"이라고 하지만, 하느님의 계획 속에서는 "조화로운 다양성"입니다. 만일 인간이 하나의 언어만을 사용하고, 하나의 문화만을 강요하며, 한 가지 방식으로만 살아야 한다면, 그것이야말로 하느님의 창조 질서를 거스르는 것이 될 것입니다.

 

바벨탑의 혼란은 신약에서 놀라운 방식으로 치유됩니다. 사도행전 2장을 보면, 성령 강림 사건이 나옵니다. 성령께서 임하자, 사도들은 여러 언어로 복음을 전했고, 각 나라에서 온 사람들이 자기들의 언어로 그 말씀을 이해하였습니다. 바벨탑에서는 인간이 하나의 언어를 사용하려 했고, 그로 인해 하느님께서 그들을 흩으셨습니다. 하지만 성령 강림 사건에서는 각기 다른 언어를 사용하는 사람들이 하나의 성령 안에서 일치를 이루었습니다. 이것이 하느님의 참된 뜻입니다. 인간이 강제로 하나가 되는 것이 아니라, 하느님의 사랑 안에서 각자의 고유한 모습으로 일치하는 것입니다. 인간이 하느님 없이 자신을 통일하려 하면, 그것은 오히려 파괴와 혼란을 초래할 것입니다. 반대로, 우리가 성령 안에서 서로의 차이를 인정하고 조화를 이루려 한다면, 그것이야말로 하느님께서 원하시는 참된 일치입니다.

 

오늘 복음에서 우리는 예수님의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에게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내 아버지에게서 들은 것을 너희에게 모두 알려 주었으니 나는 너희를 친구라고 부른다. 누구든지 내 뒤를 따르려면 자신을 버리고 제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라야 한다. 정녕 자기 목숨을 구하려는 사람은 목숨을 잃을 것이고, 나와 복음 때문에 목숨을 잃는 사람은 목숨을 구할 것이다.” 예수님께서는 앞서가는 사람을 끌어 내리는 탑을 말씀하지 않으셨습니다. 뒤에 따라오는 사람을 밀쳐내는 탑을 말씀하시지 않으셨습니다. 동료의 십자가를 함께 지고 가는 탑을 말씀하십니다. 이웃의 아픔에 공감하는 탑을 말씀하십니다. 누구나 갈 수 있지만 아무나 가지 않는 길을 말씀하십니다. 그러나 그 길만이 우리를 영적인 갈증을 풀어 주는 샘물로 인도할 것이라고 말씀하십니다. 그 길만이 이 세상에서 하느님 나라를 체험하고, 죽어서는 영원한 생명에 이를 것이라고 말씀하십니다.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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