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미사

우리들의 묵상/체험

제목 [연중 제6주간 목요일]
이전글 이전 글이 없습니다.
다음글 엘리사의 매일말씀여행(마르 10,1-12 / 연중 제7주간 금요일)  
작성자박영희 쪽지 캡슐 작성일2025-02-20 조회수68 추천수4 반대(0) 신고

[연중 제6주간 목요일] 마르 8,27-33 “너는 하느님의 일은 생각하지 않고 사람의 일만 생각하는구나.”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주기 전에는

그는 다만 / 하나의 몸짓에 지나지 않았다.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주었을 때

그는 나에게로 와서 / 꽃이 되었다.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준 것처럼

나의 이 빛깔과 향기에 알맞은

 

누가 나의 이름을 불러 다오.

그에게로 가서 나도 / 그의 꽃이 되고 싶다.

 

우리들은 모두 / 무엇이 되고 싶다.

나는 너에게 너는 나에게 / 잊혀지지 않는 하나의 의미가 되고 싶다.]

 

김춘수 시인이 쓴 <꽃>이라는 시입니다. 그런데 정말 누군가 내 이름을 알아주고 불러준다고 해서 내가 그 사람의 삶에 참된 의미가 될 수 있을까요? 오늘 복음을 보면 그렇지 않은 듯 합니다. 예수님을 ‘그리스도’라고 불러준 베드로가 정작 그분의 ‘수난예고’를 듣고는 그러시면 안된다고 반박하는 것을 보면 말입니다. 흠 없는 어린 양이 내 죄를 대신 짊어지고 희생해야 내 죗값을 대신 치르는 ‘속죄양’이 되는 것처럼, 예수님께서 우리를 구원하시는 ‘그리스도’가 되시려면 나의 죄를 대신 짊어지고 십자가의 길을 오르셔야 합니다. 그리고 그 길의 끝에서 우리 대신 죽으셔야만 하지요. 하지만 베드로는 그래서는 안된다고 예수님 앞을 막아선 겁니다. 주님의 뜻이 아니라 자기 뜻을 먼저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하느님의 일은 생각하지 않고 사람의 일만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그 결과 예수님으로부터 ‘사탄아 내게서 물러가라’는 엄중한 질책을 받게 되지요.

 

예수님께서 우리의 ‘그리스도’가 되시기 위해 고통과 모욕을 기꺼이 받아들이시고 희생하신 것처럼, 우리도 예수님을 주님으로 믿고 따르는 참된 ‘그리스도인’이 되려면 주님을 위해 그분 뜻을 이루기 위해 나 자신을 희생할 수 있어야 합니다. 그럴 각오도 용기도 의지도 없으면서,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비나이다”라고 기도하며 자기 이익을 챙기려고 드는 건, 제대로 된 신앙생활이 아닐 뿐 아니라 우리 구원에 아무 의미도 되지 않는다는 뜻입니다. 말로만 주님 주님 한다고 해서 하느님 나라에 들어가는 게 아니지요. 기도를 통해 주님과 깊은 친교를 맺고 기꺼이 그분 뒤를 따라나설 때 우리는 비로소 하느님 나라에 들어가기에 합당한 사람이 됩니다. 

 

* 함 승수 신부님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태그
COMMENTS※ 500자 이내로 작성 가능합니다. (26/500)
[ Total 27 ] 기도고침 기도지움
등록하기
※ 로그인 후 등록 가능합니다. 파일 찾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