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 ■ 낮아질수록 높아지는 삶의 자세를 / 연중 제7주간 화요일(마르 9,30-37) | |||
---|---|---|---|---|
이전글 | 이전 글이 없습니다. | |||
다음글 | 내 삶 안에 있는 느낌표 | |||
작성자박윤식
![]() ![]() |
작성일2025-02-24 | 조회수50 | 추천수1 |
반대(0)
![]() |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 낮아질수록 높아지는 삶의 자세를 / 연중 제7주간 화요일(마르 9,30-37) 나이 열아홉에 급제해 스무 살에 군수가 된 맹사성은 조선시대의 학자다. 젊은 그는 나이 든 선비를 찾았다. “어른께서는 군수로서의 좌우명이 무엇인지요?” “그건 어렵지 않소이다. 나쁜 일 하지 않고 착한 일 많이 베푸는 겁니다.” “그거라면 삼척동자도 아는 이치 아니오. 먼 길 온 제게 고작 그런 말씀만 하시다니요?” 맹사성은 일어서려 했지만 선비는 차 한 잔 빌미로 자리를 붙잡는다. 두 사람은 말이 없었다. 그런데 선비는 넘치는데도 자꾸 잔에 차를 따른다.
그들은 카파르나움에 이르렀다.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너희는 길에서 무슨 일로 논쟁하였느냐?” 라고 물으셨지만, 그들은 아무 말도 없었다. 누가 가장 큰 사람인가로 서로 논쟁하였기에. 예수님께서는 “누구나 첫째가 되려면, 꼴찌가 되고 모든 이의 종이 되어야 한다.” 라고 엄히 이르셨다. 무한경쟁에서 성공은 남보다 더 일찍 자신의 능력을 보일 때 얻어지는 것이라나. 그러기에 첫째 되려면 꼴찌 되어 모든 이의 종이 되어보라는 예수님 말씀이 어렵게만 들린다. 첫째가 되는 길만을 가르쳐 온 삶에서 스스로 꼴찌가 되고, 이웃들에게 늘 종처럼, 학교에서는 왕따를, 직장에서는 실직을, 상점에서 손님들에게 늘 무시당하는 게, 어찌 성공한 인생이라 하겠는가? 예수님 시대에도 제자들은 메시아의 수난을 알아듣지도 못했고, 그런 일이 일어날까 봐 묻는 것조차 두려워했단다. 게다가 그분께서 정권을 잡으시면 자기들끼리의 서열 다툼까지 했으니까. 사실 신앙생활을 할수록 내 영이 맑아져 세상 것보다 하느님 일에 더 관심 갖는 게 어쩜 순리이지만, 세속적인 게 더 커지는 오늘의 모습처럼 당시 제자들마저 그렇게 되었다니! 그렇지만 예수님께서는 우리가 남들에게 인정받거나 출세하려고 더 이상 다툴 필요가 없기를 학수고대하신다. 그리고 우리가 사랑의 공동체를 이루라고 하시며 다른 이들, 특별히 가난한 이들과 연대하기를 원하신다. 보잘것없는 이들을 도와주는 이, 이웃의 고통을 함께 아파하는 이, 자신을 낮추어 남을 위해 봉사하는 이가, 참으로 당신이 바라는 ‘제자 모습’이라 이르셨다.
내 안에 아직도 남보다 더 앞서려는 우월 의식이 있다는 건, 다른 이를 무시하며 사는 뜻일 게다. 더군다나 졸부를 뽐내며 높은 자리에 앉으려는 한, 아직도 예수님을 모른다는 뜻이리라. 첫째가 되려면 꼴찌가 되고 모두의 종이 되어야 한다고 예수님은 우리에게도 가르치신다. 지금 나는 낮아질수록 높아지는 삶을 사는지를, 내가 서 있는 자리에서 꼭 둘러 봐야만 할게다.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