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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생활묵상 : 신앙 안에서 내로남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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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강만연 쪽지 캡슐 작성일2025-02-26 조회수92 추천수0 반대(0) 신고

 

최근 6개월 동안 정신의학 분야와 심리학 관련 방향으로 번역 일을 했습니다. 스웨덴 정신과 의사의 논문이 저한테는 인상적인 내용이 좀 많이 있었습니다. 간혹 제가 번역하면서 저는 신앙을 가지고 있어서 신앙인의 관점으로 색다른 묵상을 많이 했습니다. 어떤 부분은 신부님들께 알려드리고 싶은 내용도 있지만 그건 평신도 입장에서 주제 넘은 이야기일 것 같아 평신도에게 도움이 될 만한 내용을 소개해드리고자 합니다. 세상 학문인데 그걸 신앙인의 눈으로 봤을 때 생각할 점이기 때문에 아마 도움이 될 것입니다. 제가 묵상 제목을 내로남불이라고 했습니다. 일단 제목을 무엇으로 정할까를 고민했는데 이게 좋을 것 같습니다. 내로남불이라는 말은 다 잘 알 것입니다. 이건 어떨 때 주로 사용하는 말인가요? 똑같은 일인데 자신에게는 좋은 시각으로  해석하고 남에게는 나쁜 시각으로 해석하거나 볼 때 사용합니다. 이런 현상이 신앙에서 있을까요? 없을까요? 

 

우리가 의식을 못 해서 그렇지 신앙 안에서 많이 볼 수 있는 일입니다. 이 표현은 무슨 뜻일까요? 우리는 무의식 속에 내로남불을 의식하고 있다는 뜻입니다. 다만 무의식 속에 잠재해 있어서 드러나지 않아 보이지 않기 때문에 우리는 그런 걸 하면서도 하고 있다고 자신이 인식을 못 한다는 것입니다. 이와 관련해서 제가 다음 묵상글에서 선보일 내용이 있습니다. 자기의 의지와 상관없이 우리가 남에게 대죄를 짓게 되는 경우가 있는데 그건 다음 번에서 글을 올리겠습니다. 그러면 조금전 내용을 좀 더 쉽게 설명하기 위해 예를 들어서 설명해보겠습니다. 설명의 편의를 드리고자 하는 것입니다. 가령 어떤 사람이 저한테 무엇인가 부탁을 했다고 가정을 하겠습니다. 그 사람은 신자라고 가정하겠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제가 어떤 사정이 있어서 그 부탁을 들어줄 수 없는 난처한 사정이 생겨서 도와드리고 싶은 마음은 간절하지만 해드릴 수 없다는 설명을 드리며 이해를 구했다고 하겠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상대방은 상황은 이해가 되지만 한편으로는 내심 서운한 감정을 숨기지 않았습니다. 그걸 어떤 수단으로 표현을 했습니다. 

 

근데 문제는 이런 일이 있기 전에 제가 그 사람에게 과거에 무슨 부탁을 했는데 그 부탁을 마지못해 하긴 했는데(상대방 신자) 그것도 온전하게 한 게 아니고 그냥 하는 시늉만 했던 것입니다. 그렇게 할 수밖에 없는 이유는 그 부탁을 자신이 들어주게 됐을 때 혹시나 모를 불리한 사정이나 또 자신에게 해가 될지도 모른다는 계산을 했던 것입니다. 만약 그런 상황이 벌어지게 된다면 좋지 못하기 때문에 저와의 관계를 단절하지 않으면서 일어나지는 않았지만 일어날 수도 있는 상황을 계산해 두 조건을 나름 충족시키는 최선의 방법은 그냥 하는 어떤 시늉을 취하긴 취하되 온전하게 하지 않으면 두 가지 상황을 다 적절하게 대처할 수 있다는 생각을 해서 그렇게 했던 것입니다. 근데 문제는 이 모든 것이 다 설명의 편의를 위한 가정이라는 사실임을 다시 한 번 더 강조합니다. 이런 상황이 바로 신앙 안에서 일어나는 내로남불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자신이 과거에 한 행동에서 자신은 과연 그런 부탁을 했을 때 진짜 자신이 자신의 일이라고 생각하고 했다면 순수한 뜻에서 나도 다음에 이런 일이 일어날지도 모를 일이니 그럴 경우를 대비해서가 아니라도 순수하게 얼마든지 도와줄 수 있는 상황이었음에도 불구하고 혹시 모를 불상사를 염려하다 보니 자기 마음속에 이미 어떤 이해타산을 계산해서 자신에게 유리한 방향으로 어떤 행동을 취한 것이었던 겁니다. 이젠 상황이 역전돼 그와 같은 유사한 상황이 발생했을 땐 우리가 일반적이고 상식적인 사람이라면 나도 과거에 그렇게 행동했는데 지금과 같은 상황에서 내 부탁을 들어주지 못했다면 과거를 회상해서 그 사람도 그때 자신의 어려움을 부탁했을 때 나도 쉽게 내 일처럼 나서서 도와주지 못했다는 걸 생각하면 그 사람이 그렇게 한 행동도 당연한 행동이라고 생각하는 게 그게 정상적인 사고를 가진 사람이라면 그렇게 생각해야 하는 게 정상적인 생각이라면 생각인데 우린 보통 보면 그렇게 생각하지 않은 경우가 많다는 것입니다. 이게 신앙 안에서도 일어날 수 있는 전형적인 내로남불입니다. 

 

여기서 좀 더 깊이 들어가 보겠습니다. 왜 이런 현상이 일어나는지 근본적인 이유를 아는 게 중요합니다. 이걸 이해하려면 정신 의학과 심리학에서 설명하는 이론적인 배경지식이 있어야 합니다. 우리 인간에게는 내로남불이라는 현상이 생길 수밖에 없는 이유가 있습니다. 가장 근원적인 이유는 자기의 잘못과 부정(상대방이 자신에게 가하는 부정)을 인정하고 싶지 않고 또 남들이 그런 상황을 보는 것 자체를 용납하지 않으려고 하는 심리가 내면에 깔려 있기 때문입니다. 이런 심리는 모든 사람이 다 가지는 일반적인 현상인데 문제는 그 정도의 차이에 따라 그게 강한 사람이냐 약한 사람이냐로 결정이 된다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그게 강한 사람일수록 내로남불이라는 의식을 가질 가능성이 많다는 것입니다. 이게 이 단계에서만 그치면 그나마 다행인데 문제는 그런 사람도 있지만 그렇지 않은 사람도 있다는 게 문제인 것입니다. 그렇지 않은 사람에게서 일어나는 전형적인 일은 오히려 상대방에게 신앙인이라는 신분 자체를 망각한 채 신앙인으로서 해서는 안 되는 행동도 한다는 게 문제인 것입니다. 

 

여기서도 또 문제가 있습니다. 뭐가 문제냐 하면 자신 스스로도 이런 행동이 좋지 못한 행동이라는 걸 알고는 있지만 자신의 행동을 합리화시키려고 한다는 것입니다. 왜 그렇게 하느냐면 만약 다른 사람이 자신의 행동을 보게 된다면 좋지 않은 평가를 받을 수 있다고 생각을 하기 때문에 그런 평가를 배제시키기 위한 수단으로 자신을 합리화하려고 한다는 것입니다. 결국 신앙의 눈으로 이 현상을 해석하면 우리가 어떤 죄도 마치 내로남불처럼 생각할 수 있다는 중요한 교훈이 있는 것입니다. 우리가 살면서 도덕적인 현상을 두고 일반적인 걸 말할 때 내로남불을 많이 언급하지만 신앙 안에서는 이게 죄와 관련될 수도 있다는 생각을 해 본 사람은 아마 거의 없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저도 사실 그랬기 때문입니다. 이런 분야 쪽으로 관련 배경 지식을 번역하면서 제가 신앙의 눈으로 봤기 때문에 이런 묵상도 해 볼 수 있었던 것입니다. 이 현상을 좀 더 일반적인 말로 표현한다면 이렇게도 표현할 수 있을 겁니다. 우리 인간은 남을 바라보는 잣대가 자신을 바라보는 잣대로 똑같이 보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내로남불이 일어나는 것입니다. 감사합니다.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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