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 ■ 신앙인은 소유에서만은 정녕 자유로워야 할 이 / 연중 제8주간 월요일(마르10,17-27)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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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박윤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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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2025-03-02 | 조회수55 | 추천수2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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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 신앙인은 소유에서만은 정녕 자유로워야 할 이 / 연중 제8주간 월요일(마르10,17-27) 오늘날 재물 정도에 따라 그 사회적 신분뿐 아닌 인격도 결정될 정도다. 사실 우리 곁에는 같은 부자라도 삶의 가치를 어디에 더 두냐에 따라 허세부리는 천박한 이 있는가 하면, 소박하게 이웃을 도우는 검소한 부자도 있다. 경주의 최 부잣집이 후자로 그 좋은 표본이다. 그 집안은 대대로 여섯 개 가훈이 있다나. 과거를 보되 진사 이상은 말며, 재산을 모으되 만석 이상은 안 되고, 과객은 후하게 대접하고 흉년에는 남의 논밭을 매입하지 말며, 가문의 며느리는 시집온 뒤 3년간 무명옷 입어야 하고, 사방 백 리 안에 굶어 죽는 이 없게 하라는 것이란다. 이렇게 최소한의 집안 신분과 재력은 양반 신분인 진사까지만 하되 필요 이상은 사회에 반드시 환원하는 거다. 또 나그네에게 먹을 것 주고 노잣돈은 꼭 쥐어 보내라나. 그리고 흉년에 가난한 이의 재물 빼앗지 말고 집안 살림은 검소해야 한단다. 끝으로 이웃 굶주림을 함께 책임져야 한단다. 아무튼 부자는 삼 대 잇기 어렵다지만, 이 집은 12대를 만석꾼으로 이어왔다. 오늘 한 부자 청년이 예수님을 찾는다. 그는 하느님 앞에서 정직하고 성실하게 율법을 지켰다고 늘 자부해온 젊은이다. 숱한 재물 유혹에도 율법 지킨 그를 그래도 예수님께서는 사랑스럽게 보셨지만, 그가 추구하는 영원한 생명은 재물만으로는 안 되는 것임을 일깨우시고자 도전적 질문을 주셨다. 넉넉하기에 율법 잘 지키며 평화롭게 살 수 있다고 믿었던 그에게 엄청난 좌절감만 안겼다. 영원한 생명도 지상의 부유함의 일부로 믿고 싶었던 그에게는 절대 따를 수 없는 요청이었기에. 그래서 그는 울상이 되어서 슬퍼하며 떠났다. 그가 많은 재물을 가졌기에. 사실 돈 많은 부자가 되는 걸 싫어할 이는 그리 없으리라. 돈이 살아가는 데 행복의 전부가 아니지만, 일정 수준까지는 그래도 행복에 미치는 영향이 있다 여겨지리라. 그래서 사회는 빈곤을 겪는 이들이 노력하면 필요한 돈 만질 수 있어야 하고 부를 누리는 이들이 정당한 세금을 내면서 자비의 정신으로 부를 나눈다면, 돈이 지배하는 세상도 좀 자유로울 수가 있을게다. “부자가 하느님 나라에 들어가는 것보다 낙타가 바늘귀로 빠져나가는 것이 더 쉽다.” 어쩌면 예수님의 이 말씀에 많은 이가 당황한다. 열심히 돈 벌며 아껴서 절약해도 살기 힘든 마당에, 부자 되기 거부한다는 게 너무나 비현실적이기에. “그러면 누가 구원받을 수 있는가?” 이에 예수님은 분명히 일러 주신다. “사람에게는 불가능하지만 하느님께는 그렇지 않다. 그분께서는 모든 것이 가능하다.” 구원이란 이렇게 사람의 힘이 아닌, 하느님 힘으로만 가능하다는 거다. 우리 시대에 더불어 사는 게 특권이 아닌 의무다. 삶은 결코 나만의 힘으로만 되는 게 아니기에. 서로의 희생과 배려로 얻은 행복을 자신 능력으로만 생각하는 졸부가 많아지는 한 사회는 건강할 수 없다. “하느님과 재물을 함께 섬길 수 없다.” 라는 예수님 말씀이 늘 도전처럼 느껴지지만, 새겨야 하는 게 현실이다. 천박한 부자보다 믿는 이 되는 것이 주님 뜻임을 기억하자. 재물 자체는 분명 악은 아니다. 또 부자라고 다 비난받을 이유도 없다. 부자가 욕심에 사로잡혀 자기 곳간 닫아 놓을 때에야 비난받는다. 이기심으로 닫아 놓은 문은 하느님도 들어가실 수 없다나. 그분께는 가난한 이의 열린 문이 그분 유일한 통로다. 그러니 예수님만을 따른다는 우리도 이 소유에서만은 얼마나 자유로운지를 스스로 곰곰이 새기면서 살피는 신앙인이 되자.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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