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 [연중 제8주간 월요일] | |||
---|---|---|---|---|
이전글 | 겉보다 속을 가꾸는 사람 | |||
다음글 | ◆요셉 신부님의 매일 복음 묵상 - 내가 예수님을 얼마나 사랑하는지 알아보는 법 | |||
작성자박영희
![]() ![]() |
작성일2025-03-03 | 조회수87 | 추천수3 |
반대(0)
![]() |
[연중 제8주간 월요일] 마르 10,17-27 "가서 가진 것을 팔아 가난한 이들에게 주어라.”
많은 재물을 가진 한 젊은이가 예수님을 찾아가 그분 앞에 무릎을 꿇습니다. 그리고는 자기가 영원한 생명을 받으려면 무엇을 해야 하느냐고 묻지요. 먹고 사는 일만으로도 벅차서 병을 고치거나 배불리 먹는 일에만 관심을 두는 여느 백성들과는 달리, 영적 가치를 얻고자 하는 모습이 사뭇 진지해 보입니다. 이에 예수님께서는 그에게 우선 하느님께 받은 계명들을 철저히 지키라고 말씀하십니다. 그러자 그는 자신만만한 태도로 ‘그런 것들은 자기가 어려서부터 다 지켜왔다’고 답하지요. 아마도 그는 경제적으로 모자랄 것 없는 바리사이 집안에서 태어나고 자라면서 엄격한 신앙교육을 받았을 겁니다. 율법을 어기면 큰 일 나는 줄 아는 그들의 특성상 계명을 어기는 일은 당연히 없었을 것이고, 사람들 앞에서 자신의 의로움과 거룩함을 드러내보이기를 좋아하는 것이 바리사이이니 나름대로 극기와 자선도 열심히 실천했겠지요. 사람들 눈에는 팔자 좋아보이는 그 모습이 얄미워보였겠지만, 예수님 눈에는 나름대로 하느님의 뜻을 따르기 위해 노력하는 그 모습이 대견해보였기에, 그에게 영원한 생명에 더 가까워질 수 있는 길, 그러나 그만큼 더 어려운 길을 알려주십니다.
“가서 가진 것을 팔아 가난한 이들에게 주어라.”(마르 10,21)
예수님은 그에게 무조건 가난하게 살라고 말씀하시는 게 아닙니다. 절대 아무 것도 가져서는 안된다는 ‘무소유’를 명령하시는 것도 아니지요. 재물 역시 하느님께서 창조하시어 인간에게 주신 선물이고, 재물을 잘 활용하는 것은 우리가 생명을 유지하기 위해 필수적인 일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재물에 대한 도를 넘은 탐욕과 집착 때문에 무엇이 옳은 길인지를 알면서도 실행에 옮기지 못할 정도가 되면, 그건 분명 하느님 나라에 들어가지 못하게 그래서 영원한 생명을 누리지 못하게 가로막는 장애물이 되고 맙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자기도 모르는 사이 재물에 의지하는 마음이 커져버린 그가 재물에 집착하는 마음을 돌려 하느님을 향할 수 있도록 이끌어 주시는 것이지요.
그 부유한 젊은이가 예수님을 부른 호칭은 ‘선하신 스승님’이었습니다. 예수님께서 사람들을 자주 가르치셨으니 그분을 ‘스승님’이라고 부른 것은 이해가 되지만, 그분에 대해 잘 모르면서 그분이 ‘선하다'고 단정지은 것이 이상하지요. 그 모습에서 자기 나름의 기준으로 ‘선과 악’을 판단하려는 마음이 드러납니다. 그는 아마 자기 스스로를 선하다고 생각했을 겁니다. 특별하게 율법을 어긴 적도 없고, 나름대로 극기와 자선도 실천하고 있으니 그 정도면 영원한 생명을 얻을만한 충분한 자격을 갖추었다고 여겼겠지요. 그럼에도 영원한 생명을 얻으려면 무엇을 해야 하느냐고 물은 것은, 예수님께 ‘누가 내 이웃입니까’라고 물었던 율법학자처럼 짐짓 자기 의로움을 과시하려는 교만 때문이 아니었을까 싶습니다. 그런 그 젊은이의 모습은 나름대로 의롭게 살고 있다 자부하지만 하느님의 기준에는 한 없이 부족한 모습으로 사는 우리를 상징하지요. 영원한 생명의 본질은 주님과 올바른 관계를 맺는 일입니다. 사랑과 신뢰를 바탕으로 주님과 깊은 일치를 이루는 일입니다. 그렇기에 영원한 생명을 얻고자 한다면 작고 약한 이의 모습으로 오시는 주님을 사랑과 봉사로 섬겨야 합니다. 세상 종말의 날에 하느님의 준엄한 심판대 앞에 섰을 때 하느님 나라를 눈앞에 두고도 ‘울상이 되어 슬퍼하며 떠나가는’ 비참한 신세가 되지 않으려면 더 늦기 전에, 지금 즉시 그래야만 합니다.
* 함 승수 신부님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