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 ■ 버리면 더 많이 얻는다는 진리를 / 연중 제8주간 화요일(마르 10,28-31) | |||
---|---|---|---|---|
이전글 | 내세 에서는 영원한 생명을 받을 것이다 (마르10,24-31) |1| | |||
다음글 | 어머니나 아버지, 자녀나 토지를 버린 사람은?? | |||
작성자박윤식
![]() ![]() |
작성일2025-03-03 | 조회수59 | 추천수1 |
반대(0)
![]() |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 버리면 더 많이 얻는다는 진리를 / 연중 제8주간 화요일(마르 10,28-31) 선물과 뇌물의 차이는? 선물은 주는 이의 기쁨이 담겨야. 환한 얼굴로 상대의 기쁨을 내가 먼저 맛본다. 하지만 뇌물은 상대의 기쁨보다 나의 이기적 욕심이 있다. 행여 기대한 만큼의 돌아올 대가가 작다면 서운함 갖는 게 선물과는 다르리라. 물론 아무 조건 없는 순수한 선물은 없을 수도. 순수하게 전한 것이라도, 언젠가 상대방이 다른 식으로라도 그것에 대한 보답을 줄 것을 기다리는 것이 솔직한 심정이니, 사실 우리는 뇌물 같은 선물을 주고받는지도 모르겠다. ‘베드로가 예수님께 고백했다. “보시다시피 저희는 모든 것 버리고 스승님만 따랐습니다.” 예수님께서 이르셨다. “내가 너희에게 말한다. 나 때문에 집이나 가족, 토지를 버린 이는 현세서 백배 받을 것이고, 내세서는 영원한 생명 누리리라. 또 첫째가 꼴찌 되고 꼴찌가 첫째 되는 이들이 많을 것이다.”’ 제자들은 스승님을 메시아로 확신해 모든 걸 버리면서 에 상응하는 것을 은근히 기대했을 게다. 그래서 스승 예수님께 노골적으로 자신들 요구를 들이대는 것이다. 평생 초등 교사로 봉직한 분이 계셨는데, 중년까지 벽지로만 다녔단다. 도시로 갈 기회가 있었지만 늘 변두리였다. 어느 해에는 본당 교우 협조로 제법 큰 도시 갈 기회였지만 그 발령 역시나 촌이었다나. 그런데 훗날 벽지 근무자에게 우대 제도가 도입되어, 그간의 근무로 동료보다 훨씬 빠른 승진을 하였단다. “주님께서는 우리보다 생각이 훨씬 깊습니다. 지난날 화낸 일들은 너무 부끄럽습니다.” 그분 회고다. 아무튼 그분 속내 미리 아는 이는 과연 몇이나 될지? 사실 집과 가족을 버릴 정도의 신앙생활 해야 한다는 복음에 동의하고 싶지 않아, 매번 미사 때마다 부담 느낀 우리이다. ‘나와 복음을 위한 이는 박해 받겠지만 넘치는 보상도 받으리라.’ 라는 예수님 말씀에서 시련의 의미를 깨닫는다면, ‘꼴찌가 첫째 되는 일’도 의당 겪을 게다. 심지어는 가정과 부를 저버린 현세의 그 고통이 내세에서는 영원한 생명마저 보장 받을 수도. 이처럼 예수님 따르려면 육적인 차원을 떠나 영적인 것에 온 힘 쏟아야만 하리라. 그래서 믿음의 삶을 사는 우리는 많은 걸 포기해야만 한다. 주일 아침 늦잠 포기하고 미사 참례하자. 신앙을 반대하는 부모, 형제 친척들의 눈치도 뒤로하고 십자가만 보고 나아가자. ‘원수마저도 사랑하라.’ 하신 예수님을 따르려면, 믿음의 걸림돌이 되는 그 어떤 유혹도 뿌리쳐야 할 게다. 신앙인이기에 삶에서 해야 할 것과 말아야 할 행위의 선택에는 많은 고민이 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는 내세의 영원한 생명의 원하는 이들에게 지금은 꼴찌지만 첫째 되는 멋진 복음을 주셨다. 누구든지 당신과 복음 때문에 모든 것을 버린 이에게는 정말 놀라운 선물이다. 이는 예수님만을 바라보며 그분의 십자가와 멍에를 지고 따르는 우리에게 약속하시는 큰 축복이다. 지금 우리의 신앙생활도 너무 많은 욕망을 가졌는지 점검할 필요가. 혹시 우리 기도와 봉사에 때로 너무 많은 조건을 기대하는 뇌물은 아니었는지? 우리와 하느님 셈법에서 ‘첫째가 꼴찌, 꼴찌가 첫째 되는 이들’ 가운데 우리는 과연 어느 쪽인지? 예수님 따르고자 천추의 원수지간인 이에게 다가가 신앙으로 하나가 된 우리이다. 오랜 불화로 멀리한 이에게 같은 믿음에 영적인 굶주림을 마음껏 달래며 자존심마저 내던진 처지다. 이것이 바로 예수님만을 믿고 바라보면서 얻는 보상이리라. 버리면 더 많이 얻는다는 예수님의 이 말씀은 꼭 새길만한 진리이다.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