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 재의 수요일 | |||
---|---|---|---|---|
이전글 | 송영진 신부님_<누구든지 ‘위선’이라는 ‘함정’에 빠질 수 있습니다.> | |||
다음글 | 엘리사의 매일말씀여행(마태 6,1-6.16-18 / 재의 수요일) | |||
작성자강만연
![]() ![]() |
작성일2025-03-05 | 조회수57 | 추천수3 |
반대(0)
![]() |
오늘은 재의 수요일입니다. 전례력으로 사순이 시작되는 시기입니다. 재의 수요일은 어느 정도 신앙생활을 한 사람은 이날 하는 특별한 예식이 무엇인지 그리고 또 어떻게 하는지 다 알고 있습니다. 머리에 재를 얹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때 이 재의 의미는 다 잘 알고 있습니다. 죽음을 상징하기도 합니다. 그렇다면 죽음을 상징한다고 할 때 단순히 죽음만을 의미할까요? 이 죽음은 생명이 단절되는 죽음을 말하는 것일까요? 물론 이 죽음도 맞지만 단순히 이 죽음만을 본다면 참으로 슬픈 죽음이 될 것입니다. 슬픈 죽음이라고 표현을 했는데 이 슬픔은 슬픔 그 자체만을 놓고 봤을 땐 슬픔이겠지만 이 슬픔 너머에 있는 다른 숨어 있는 의미를 보는 사람에게는 그 죽음이 또 다른 탄생이 될 수 있습니다. 이걸 탄생이라는 개념으로 생각하는 사람은 딱 한 부류의 사람만 이렇게 생각합니다. 바로 부활 신앙을 가진 사람만이 가진 생각입니다. 죽음이라는 것은 솔직히 아무리 부활신앙을 가지고 있고 또 신앙생활을 하는 신앙인이라고 한다고 해도 두려운 존재라는 사실은 분명합니다. 이 자체를 부인하겠다는 사람이 있다면 그 사람은 거짓말을 하는 것입니다. 이건 그 사람의 신앙을 무시해서 그런 게 아니고 죽음이라는 것은 죽음 이후의 사건을 직접 경험해서 알 수 있는 게 아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죽음이 두려운 것입니다. 그렇다고 마냥 죽음이 두려운 존재인 것만은 아닙니다. 누군가는 말합니다. 이 세상에 죽음만큼 공평한 게 없다고 말합니다. 부유한 사람이라고 해서 더 많은 생명을 누릴 수 있느냐 하면 그런 게 아니기 때문입니다. 정도의 차이는 있겠지만 죽음을 맞이한다는 그 결과만은 누구도 피할 수 없는 사실입니다. 그렇다면 피할 수 없는 죽음이라면 이 죽음을 어떻게 대처하고 또 어떻게 받아들여야 하는가 그게 더 중요한 것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부활과 영혼의 세계를 믿지 않는 사람이라면 모를까 그렇지 않으면 이 죽음을 잘 준비해야 할 것입니다. 그렇다고 죽음을 준비한다고 해서 죽음 그 자체에 매몰돼 죽음을 준비하는 것은 좋지 못한 태도이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이 말을 잘못 해석하면 사순시기에는 죽음을 묵상하는 시기인데 하고 이렇게 반문을 한다면 그렇습니다. 하지만 이것과는 조금은 다른 개념입니다. 지엽적으로 생각을 한다면 우리가 사순시기에 죽음을 생각하자고 하는 의도는 이 시간만이라도 한번 죽음을 생각하며 남은 삶도 생각하면서 지나간 삶도 반성과 성찰의 시간을 가지자는 의미이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만약 그런 의미가 없다면 오히려 신앙이라는 게 행복한 삶을 살아야 하는 한 인간의 삶에 족쇄와 같은 역할을 하게 된다면 하느님이 과연 그걸 원하실까요? 제가 답을 드리지 않아도 어떤 답일지 나올 것입니다.ㄷ 만약 만에 하나 그게 이와 반대되는 생각이 하느님이 원하시는 것이라면 그건 있을 수 없는 일일 것입니다. 그건 한 인간인 인간을 피조물로 봤을 때도 그렇습니다. 하느님께서 인간을 창조하셨을 때 그런 걸 생각하시지 않고 창조하셨다면 어쩌면 이런 '사람' 같은 존재만큼 이 세상에 허무한 존재도 없을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죽음을 잘 준비하고 기억을 한다는 것은 그 실존적인 의미도 중요하지만 그 이전까지의 삶인 이 지상에서의 삶과도 조화를 잘 이루어야 하는 것을 의미할 수도 있습니다. 죽음 이후의 삶은 누구나 다 잘 모릅니다. 하지만 하느님의 말씀인 성경에 기초하면 분명한 사실 하나는 있습니다. 이 세상에서 잘 살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게 어떤 부와 명예 이런 게 아닐 것입니다. 그럼 어떻게 사는 게 잘 사는 것일까요? 단순하게 생각했을 때 저는 정직하게 사는 것만큼 잘 사는 게 없다고 생각합니다. 정직하게 사는 사람은 자기의 내면 의식과 상관없이 그 사람은 항상 하느님을 의식하며 사는 사람입니다. 이때 이 의식은 자기가 의식하지 않아도 의식이 되는 의식입니다. 이때 정직은 단순히 거짓말을 하지 않는 그런 의미의 정직이 아니고 하느님을 믿는 사람이라면 또 당연히 해서는 안 될 일은 하면 되지 않을 것이고 해야 할 일이면 당연히 해야 할 것이라는 의식이 지배하는 사람이 정직한 사람이 될 것입니다. 우리는 이렇게 살기 위해서 하느님을 믿는 것입니다. 이렇게 살기 위해서는 하느님을 사랑해야 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이것도 원래부터 선천적으로 이런 경향이 강한 사람이 있습니다. 그런 사람은 이미 하느님의 은총을 많이 받은 사람이라고 할 수 있을 겁니다. 그렇지 않은 보통의 사람은 신앙이라는 도구로 자신을 연마해야 할 것입니다. 이와 같은 훈련으로 무장된 사람은 마지막 죽음의 시간이 온다고 해도 담대히 받아들일 마음의 준비가 된 사람일 것입니다. 이 준비 과정 일환 중 하나가 회개입니다. 우리는 그런 의미에서 이 사순이라는 전례의 시간을 자신의 영혼을 정화하는 시간으로 생각해 좀 더 의미 있는 시간을 보내야 할 것입니다. 세상에서도 불변의 진리가 하나 있습니다. 무엇이든지 어떤 일을 하기 위해 그 일을 성공적으로 성취하려고 준비를 철두철미하게 한 사람이 좋은 결과물을 얻는 것은 분명한 사실입니다. 무거운 주제로 흐른 것 같아 잠시 세상 밖으로 화제를 돌려서 이 의미를 좀 더 이해하면 좋을 것 같습니다. 권력을 가진 사람이든지 유명인이든지 그런 사람도 간혹 포털에 보면 부고 소식이 나오는 걸 볼 수 있습니다. 그런 소식을 볼 때마다 드는 생각이 있습니다. 그 어떤 유명한 사람도 길다면 긴 생애 같지만 하느님의 시간으로 보면 한여름 밤의 꿈 같은 일장춘몽과도 같은 삶일 수 있습니다. 그렇다고 한 번의 우리의 이 생을 듯없는 삶처럼 생각하자는 게 아니라 그런 헛된 것에 망상을 두지 말고 남은 삶을 좀 더 가치롭게 보내는 데 전력을 다해 나중에 언젠가 그 마지막 시간이 왔을 때 한 세상 힘들고 고단한 삶을 살았다고 해도 그래도 나름 충실하게 잘 살다가 간다는 생각은 할 수 있는 그런 삶은 살아야 하지 않을까 합니다.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