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 이수철 프란치스코신부님 -주님이 좋아하시고 원하시는 “참된 단식” | |||
---|---|---|---|---|
이전글 | 이전 글이 없습니다. | |||
다음글 | 이수철 프란치스코신부님 -더불어(together) 추종의 여정 “부르심 |1| | |||
작성자선우경
![]() ![]() |
작성일2025-03-07 | 조회수88 | 추천수6 |
반대(0)
![]() |
2025.3.7.재의 예식 다음 금요일
이사58,1-9ㄴ 마태9,14-15
주님이 좋아하시고 원하시는 “참된 단식”
일기쓰듯하는 강론입니다. 어제는 제 인생중에 획기적인 날이었습니다. 오랫동안 수도사제생활하다보니 참 부끄럽게도 받는 일에 익숙해졌고 받은 것에 감사함을 거의 잊고 지냈으며 주는 것을 거의 잊고 지냈다는 사실입니다. 어제는 봄소식을 전하는 마음으로, 봄을 선물하는 마음으로 늘 고맙게 생각하던 차에 치과병원에 용기를 내어 소박하고 품위있어 보이는 꽃한다발을 사들고 방문했습니다. 생전 처음이요 제 자신 품격도 높아지는 듯 참 흐뭇했습니다.
“꽃같은 하루 꽃같이 살자”
문득 이런 사랑의 꽃선물이 단식보다 백배는 좋겠다는, 주님이 원하시는 참된 단식이 아니겠나 하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詩같은 하루 詩같이 살자”
예수님처럼, 성인들처럼 꽃같은 삶, 시같은 ‘사랑의 삶’이 정말 주님이 원하시는 참된 단식일 것입니다. “주님 앞에 빈손으로 나타나지 마라”(집회35,6)는 얼마전 말씀이 생각났고, 이웃을 방문하거나 만날 때는 빈손으로 가지 말아야 겠다는 마음다짐도 새로이 했습니다. 더불어 생각난 것은 결코 값으로 환산할 수 없는 ‘꽃’이나 ‘시’를 선물하기 위해 꽃다발이나 시집을 살 때는 절대로 값을 깎는 불경不敬을 저질러서는 안되겠다는 생각도 순간 들었습니다. 오늘 옛 현자의 충고도 좋습니다.
“타인의 결을 받아들이는 능력을 감수성이라고 한다. 감수성은 지식이 아니기에 남에게 귀 기울이는 태도로 나타난다.”<다산> “사람이 어질지 못하다면 예를 지켜서 무슨 소용인가? 사람이 어질지 못하다면 음악을 한들 무슨 소용인가?”<논어>
경청과 어짐의 자세가 바로 참된 단식의 정신일 거란 생각도 들었습니다. ‘너그럽고 인정이 많으며 슬기롭고 덕이 있다(Generous, humane, wise, and virtuous)’라는 순수한 우리말 ‘어질다’의 뜻도 어감도 참 좋습니다. 오늘 말씀 주제는 단식입니다. 단식을 해서 구원이 아니라 사랑을 많이해서 구원입니다. 단식은 상대적일뿐 절대적 가치는 사랑입니다. 배고픈 이는 먹어야 하고 비만하고 배부른 이는 단식이 필요합니다. 말많이 하는 직업의 사람들은 침묵해야 하고 침묵이 일상화된 독거노인은 말해야 합니다. 단식도 침묵도 상대적 수행일뿐입니다.
예수님은 단식을 권하거나 평가절하하지 않습니다. 이웃에게 감쪽같이 숨겨진 하느님만이 아시는 자발적 겸손한 사랑의 단식, 자유롭게 하는 단식을 바라십니다. 아무 때나 단식이 아니라 단식의 때에 단식할 것이고, 한번뿐인 귀한 혼인잔치 같은 인생! 고해인생이 아닌 행복한 축제인생을 누리시길 바라십니다. 예수님의 다음 복음 말씀이 이를 입증합니다.
“혼인잔치 손님들이 신랑과 함께 있는 동안에 슬퍼할 수야 없지 않느냐? 그들이 신랑을 빼앗길 날이 올 것이다. 그러면 그들도 단식할 것이다.”
슬픔이나 우울, 심각함은 결코 참된 영성의 표지가 아닙니다. 감사와 기쁨, 유우머가 참된 영성의 표집입니다. 왜 축제인생을 고해인생으로 만드는 지요. 굳이 단식을 하려거든 나팔을 불지말고 마태복음의 예수님 가르침처럼 하느님만 알고 감쪽같이 아무도 모르게 머리에 기름을 바르고 얼굴을 씻고 기쁜 마음으로 축제인생 분위기에 추호도 손상을 주지 않도록 함이 하느님과 인간에 대한 예의입니다.
예수님이 원하시는 참된 단식의 정신은 아마도 예수님의 롤모델로 삼으셨을 이사야 예언자가 보여줍니다. 자유롭게 하는 사랑의 실천이 바로 참된 단식의 진수임을 밝히는 하느님 마음에 정통한 오늘 이사야의 말씀이 참 통쾌합니다. 단숨에 읽히는 전문을 그대로 인용합니다. 사랑의 실천이 빠진 소극적이고 피동적인 우리의 창백한 단식 수행을 참으로 부끄럽게 하는 죽비같은 말씀입니다.
“주님인 내가 좋아하는 단식은 이런 것이 아니겠느냐? 불의한 결박을 풀어주고, 멍에 줄을 끌러 주는 것, 억압받는 이들을 자유롭게 내보내고, 모든 멍에를 부수어 버리는 것이다. 네 양식을 굶주린 이와 함께 나누고, 가련하게 떠도는 이들을 네 집에 맞아들이는 것, 헐벗은 사람을 보면 덮어주고, 네 혈육을 피하여 숨지 않는 것이 아니겠느냐?”
이런 참으로 자유롭게 하는 사랑의 실천이 참된 단식이요 이런 정심으로 사순절을 지내라는 말씀입니다. 이런 사랑의 실천에 쏟아지는 주님의 축복 말씀이 우리 마음을 환히 밝히며 용기백배 힘을 줍니다. 사랑의 혁명적 예언자이자 신비가요 영성가인 이사야는 불멸의 시인입니다. 이사야의 말씀 전부가 살아 약동하는 시요, 우리를 깨달음과 자유로움으로 이끄는 이런 생명과 빛과 희망이 넘치는 시가 참 좋은 시입니다.
“그리하면 너의 빛이 새벽빛처럼 터져나오고, 너의 상처가 곧바로 아물리라. 너의 의로움이 네 앞에 서서가고, 주님의 영광이 네 뒤를 지켜주리라. 그때 네가 부르면 주님께서 대답해 주시고, 네가 부르면 ‘나 여기 있다.’하고 말씀해 주시리라.”
얼마나 멋지고 아름다운 살아있는 시인지요! 수천년전 이스라엘의 예언자 시가 시공을 초월하여 역설적 문명의 야만시대에도 그대로 통하니 하느님의 선견지명이 놀랍습니다. 주님의 이 거룩한 미사은총이 이 거룩한 사순시기 우리 모두 참된 단식의 정신으로 자유로운 축제인생을 살게 하십니다.
성 베네딕도회 요셉수도원 이수철 프란치스코신부님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