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 유혹과의 처절한 싸움에서 어떻게 하면 이길 수 있을까?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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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강만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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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2025-03-09 | 조회수48 | 추천수3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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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복음을 만약 원론적인 틀 안에서 신부님이 강론을 하신다면 그 강론의 핵심은 유혹을 이기는 방법은 여러 가지가 있겠지만 예수님께서 하신 방법은 말씀으로 유혹으로 물리치셨기 때문에 우리도 항상 말씀을 가까이 해서 말씀으로 유혹을 물리쳐야 할 것입니다. 이 말씀이 가장 대표적인 교과서 같은 강론입니다. 이것을 토대로 해서 나름 신부님들의 경험이나 아니면 그동안 사목하시면서 다른 간접 경험을 토대로 해서 다양한 성경의 내용을 가미해서 강론을 하실 것입니다. 이게 가장 전형적인 오늘 복음에 대한 설명일 것입니다. 그럼 도전적인 질문을 하나 하겠습니다. 그렇다고 오늘 복음 말씀을 부정하는 건 전혀 아닙니다. 다만 생각의 관점을 좀 달리 해서 폭넓은 관점으로 시야를 넓혀보자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예수님이셨기 때문에 말씀으로 악마의 유혹을 물리치셨을 수 있었던 것입니다. 이렇게 말을 한다고 했을 때 전적으로 신성만을 가지고 계셨다는 전제를 깔고 이렇게 말하는 것은 아닙니다. 왜냐하면 예수님께서는 인성도 또한 가지고 계셨기 때문입니다. 예수님과 같은 신성을 가지고 있지 않은 우리와 같은 일반 범인과 비교했을 때 상대적으로 우리는 완전 인성만 가지고 있지만 그래도 예수님께서는 하느님의 본성도 가지고 계셨기에 우리보다는 아무래도 상대적으로 비교해보면 좀 더 유혹을 이길 수 있는 근원적인 힘을 가지고 계셨기 때문에 그게 가능하지 않으셨을까 하는 추론을 한다면 능히 말씀으로 유혹을 물리칠 수도 있었다는 것도 터무니없는 말씀은 아닐 것입니다. 이런 논리로 접근을 한다면 우리가 감히 예수님과 같은 능력으로 우리도 어떤 유혹이 있게 되면 아무리 평소 말씀을 잘 가까이 하고 기억을 잘 한다고 해서 그렇게 할 수 있을까 하는 질문을 던진다면 그렇게 할 수 있을 거라고 자신 있게 말할 수 있는 사람이 과연 얼마나 될까요? 아마 극소수의 일부의 사람만 해당할 것입니다. 사실 정확하게 말한다면 몇 번은 어떻게 그래도 말씀으로도 이겨낼 수 있다고 해도 오늘 복음에서는 승률로 따지면 예수님은 백전백승을 하셨습니다. 왜냐하면 확률적으로는 한 번도 패하지 않으셨기 때문입니다. 우리 같은 사람은 예수님처럼 그렇게 될 수가 없습니다. 오늘 복음에 나오는 악마가 예수님께 한 유혹은 수많은 유혹 중 그냥 어떤 하나에 불과한 것입니다. 우리 주변엔 수많은 유혹이 있습니다. 이와 같은 논리로 오늘 복음을 보게 되면 말씀이 유혹을 물리칠 수 있는 무기가 될 수 있다는 것은 분명하지만 다만 그 효력은 사람에 따라 효력이 날 수 있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거의 발휘를 하지 못하는 사람도 있을 것입니다. 이렇게 접근을 한다고 해서 오늘 복음이 과연 이상적인 하나의 이상에 불과한 것이라고 치부할 수만은 없습니다. 그렇다면 오늘 복음에는 언급이 된 것이 없지만 그럼 어떻게 하면 오늘 복음이 우리에게도 유효한 복음이 될 수 있을지 하는 걸 한번 묵상해보는 것도 좋을 듯합니다. 이러한 것에는 여러 가지가 있을 수 있겠지만 제가 평소 항상 고민하고 고민한 묵상 하나를 소개해드리고자 합니다. 우리는 유혹이라는 어떤 존재를 하나의 전쟁 상대로 비유했으면 합니다. 전쟁에서 승리하는 병법은 여러 가지가 있을 수 있습니다. 손자병법에도 있지만 먼저 적을 알고 나를 알아야 합니다. 지피지기면 백전백승이라는 말은 초등학생도 아는 말입니다. 유혹도 우리가 싸워야 하는 대상이라면 이런 관점에서 유혹이라는 놈의 실체를 알게 되면 유혹을 좀 더 잘 이겨낼 수 있는 방법도 찾을 수 있을 겁니다. 광의적인 입장에서 봤을 때 사람은 만약 모든 유혹의 어떤 대상에 넘어갔을 때 아니면 빠졌을 때라고 표현을 하면 언제 그렇게 되는가 하는 것을 잘 분석을 해 볼 필요가 있습니다. 유혹에 넘어가도 그냥 쉽게 넘어가는 경우도 있을 수 있고 또 아니면 넘어가지 않으려고 발버둥을 치다가 치다가 어떻게 마지막 순간에 그만 그 유혹에 넘어가는 수도 있을 수 있습니다. 유혹을 이겨보려고 하는 노력은 가상하지만 결과적으로는 넘어간 것은 마찬가지입니다. 당장의 결과는 동일하지만 후자와 같은 사람은 언젠가는 어떤 유혹에도 흔들리지 않는 강한 사람으로 성장할 수 있다는 사실입니다. 이렇게 하는 사람은 유혹에 넘어가도 항상 그 임계점에서 이기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이 말이 조금 이해가 되지 않을 분이 계실 것 같다면 쉽게 이런 비유를 들겠습니다. 어떤 자격시험이 있습니다. 합격점은 90점입니다. 평균적인 점수입니다. 합격점수에 근접해 아슬아슬하게 계속 낙방하는 사람과 아예 30점대 점수에서 낙방하는 사람과 비교해보면 불합격이라는 결과는 동일하지만 계속 도전한다는 가정을 하면 짧은 시간 내에 합격점수에 근접에서 불합격한 사람이 상대적으로 합격을 할 확률이 더 높을 것입니다. 유혹도 마치 이와 같을 것입니다. 유혹에 넘어가는 그 임계점을 넘지 못하기 때문에 자기가 패한 지점과 임계점과의 거리는 아주 작은 거리입니다. 물리적으로는 작지만 사실 그 차이가 실제 체감하는 점수는 높은 것은 사실입니다. 하지만 극복할 수 있다는 희망은 많습니다. 이와 같은 상황에서는 그냥 무엇을 도전하는겠다는 방식으로 그냥 한다고 해서 좋은 결과를 낼 수 있는 게 아닙니다. 전쟁과 같은 개념에서는 굳이 전쟁이 아니더라도 스포츠 같은 것도 마찬가지입니다. 모든 승패가 좌우하는 시스템에는 패했다면 패인을 분석해야 합니다. 패인을 모르고서는 절대 승산이 없습니다. 정확한 패인을 알게 되면 물로 이 패인도 단순한 패인은 해당 사항이 없을 것입니다. 이 패인도 반복되는 패인처럼 패인의 빈번한 요인으로 작용하는 그런 패인을 잘 분석해야 할 것입니다. 보통 보면 사실 우리도 죄를 짓게 되도 반복되는 죄를 잘 짓기 때문입니다. 이런 패인 분석과 함께 또 하나 더 추가적으로 하면 좋은 게 있습니다. 항상 그렇습니다. 이건 거의 진리와도 같은 것입니다. 심리학에서도 이런 게 학문적으로 접근을 한 게 있습니다. 종교와도 상관없이 모든 인간이라면 그런 게 있다고 합니다. 만약 유혹에 넘어가 졌다고 한다면 누구에게 항변을 하지 않는다고 해도 스스로에게 이렇게 말할 것입니다. 조금만 더 참았더라면 하는 후회를 한다는 것입니다. 그럼 이런 후회를 했다고 했을 때 다음에 또 이런 유사한 상황에서는 그럼 이기는가 하면 또 그런 것도 아닙니다. 그런데 여기서 중요한 반전이 있을 확률이 있습니다. 비록 넘어가 또 후회를 할망정 또 이겨보려고 도전하는 것입니다. 이런 과정이 반복되다보면 어느 시점에 가서는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그냥 이기려고 힘쓰지 않아도 자연스럽게 그 유혹을 이기는 그런 상태가 되는 날이 오는 것을 경험하게 될 것입니다. 이건 저의 경험입니다. 생생한 경험입니다. 고해성사도 이 원리가 적용된다는 걸 저는 확신합니다. 지금 고해를 하고 또 이런 죄를 짓고 또 고해하고 짓고 이게 무슨 짓인지 하고 이렇게 생각해 고해를 하는 걸 주저하는 사람은 평생 그렇게밖에 살지 못할 것입니다. 하지만 인간적으로는 창피하고 부끄러울 수 있지만 그래도 언젠가는 이 죄를 극복해 자유로운 영혼이 되겠다는 굳은 의지를 가지고 하다보면 자기도 모른 사이에 자기가 그 죄에서 자유로운 몸이 됐다는 걸 체험하실 수 있을 것입니다.
저는 왜 이런 현상이 일어날 수 있을까 하는 것을 또 묵상해봤습니다. 이건 하느님의 은총임에는 분명하지만 이런 은총을 하느님께서 주시는 것은 죄와 싸워 이겨내려고 하는 인간의 의지를 하느님께서는 후하게 평가하실 것이라는 생각입니다. 마치 야곱이 하느님과 겨루어 싸워 하느님을 이겼듯이 말입니다. 사실 야곱이 이겨서 이긴 게 아니지 않습니까? 하느님과 싸워 끝끝내 포기하지 않으려고 하는 그 마음을 보시고 하느님께서 져주셨던 것 아니겠습니까? 유혹과의 전쟁도 마치 이렇게 한다면 그때 비로소 하느님께서 유혹을 이길 수 있는 함을 은총으로 함께해 주셔서 이길 수 있으리라고 저는 확신합니다. 이제 다시 원점으로 돌아가겠습니다. 이렇게 할 수 있는 힘의 원천이 바로 하느님의 말씀을 사모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이런 단계까지 왔을 때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 악마의 유혹을 물리칠 수 있었던 힘이 말씀이라고 강조하신 말씀이 우리에게도 적용이 될 수 있을 겁니다. 이 단계까지 갈 수 있으려면 낙수가 바위에 구멍을 내듯이 알아도 알아도 계속 반복해서 말씀을 보는 것입니다. 이 말씀이 낙수의 효과처럼 됐을 때 비로소 그때 우리는 그 어떤 유혹도 말씀으로 물리칠 수 있을 것입니다.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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