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 악의 세상에서도 용서만이 행복을 / 사순 제1주간 화요일(마태 6,7-15)

한때 버려진 아이임을 알고는 어머님에 대한 미움으로 자살을 결심한 한 여인이 눈 덮인 언덕길을 오른다. 언덕배기에 도착해 온 길 보면서 생각에 잠긴다. 자신은 바로 걸었는데 눈 자국은 이리저리 비뚤어져 있다. 그녀는 깨닫는다. 인생이 얼마나 불완전한 것인지를. 그리고 어머니를 용서한다. 그 이후 그녀가 새롭게 변신한다는 게 일본작가의 소설 ‘빙점(氷点)’ 줄거리다.

믿는 우리도 자주 비틀거리며 산길 오른다. 그분께서 그토록 바라셨던 정의와 평화, 사랑이 넘치는 나라를 갈망하며 거기에 참여한다지만 흠투성이다. 분노가 치밀고 치가 틀리는 게 한두 가지가 아니다. 일용할 양식을 주심에 감사하며 용서로 세상 유혹에 빠지지 않기를 기도하지만 웬걸 복수의 끈은 더 단단해진다. 그래서 옛날 임금들은 현자들을 곁에 두고 의견을 들었다. 유비는 제갈공명을 모셨다. 예수님은 ‘하느님’이야말로 누구보다도 바른 길 보여 주신단다.

‘주님의 기도’는 하느님의 뜻을 첫자리에 놓아야 한다는 가르침이 담긴 기도다. 당신 십자가 죽음도 그분 뜻으로 받아들이셨다. 부활은 그 믿음에 대한 결실이다. ‘하늘에 계신 저희 아버지, 아버지의 이름을 거룩히 드러내시며, 아버지의 나라가 오게 하시며, 아버지의 뜻이 하늘에서와 같이 땅에서도 이루어지게 하소서. 오늘 저희에게 일용할 양식을 주시고 저희에게 잘못한 이를 저희도 용서하였듯이 저희 잘못을 용서하시고, 저희를 유혹에 빠지지 않게 하시고, 저희를 악에서 구하소서.’ 이 기도는 예수님께서 손수 제자들에게 가르친 것이기에 늘 되새기자.

이 기도의 핵심은 아버지의 뜻이 이루어지게 해 주십사는 것인데도, 정작 우리는 오히려 자신의 뜻이 이루어지게 해 주십사고 청한다. 하느님께서는 서로 용서하면서 세상의 온갖 유혹에 빠지지 않도록 살기를 기도하라지만, 보복의 악순환만 더해가기만 한다. 이렇게 서로 다른 지향을 두고 기도하다보니까 속된 말로 ‘빈말 되풀이’하는 것일 뿐 참다운 기도가 아닌 것 같다.

예수님은 우리가 청하지 않는다 해도 하느님께서 미처 생각지 못하실 일은 하나도 없단다. 전능하시기에 당신이름을 거룩하게 드러내시고 당신나라가 오게 하시며, 우리에게 필요한 양식을 주시고 우리 잘못을 용서하시리라. 이 기도의 가장 큰 뜻은 참 주인이신 하느님께서 이 땅에서도 주인이 되시라는 것일 게다. 그래서 내 뜻만이 아닌 하느님의 뜻으로 청해야만 한단다.

그분의 뜻은 첫째도 용서고 둘째도 용서다. 사실 용서해야할 우리 역시 용서받아야 할 죄인이리라. ‘저희를 용서해 주시고, 저희를 유혹에 빠지지 않게 악에서 구하소서.’ 이렇게 예수님께서는 가장 아름답고 완전한 기도를 주셨다. 핵심은 그 어려운 용서이리라. 사실 용서만큼 어려운 게 없다. 용서하려면 먼저 자신이 끊임없이 용서받고 있는 존재라는 걸 인식해야만 할게다.

사실 우리는 늘 누군가로부터 용서받으면서 산다. 또 많이 용서받는 이가 많이 사랑한다는 말도 있다. 남을 용서할 마음 없이 건성으로 이 기도만 바치면서 하느님 나라가 오기를 청한다면 무슨 소용이? 그래서 주님의 기도를 바치는 우리는 무엇을 해야 할지를 되새기자. 주님께서 친히 가르쳐주셨기에 그분 뜻에 따라 바치면 그 어떤 유혹도 뿌리치는 놀라운 은총이 있으리라. 마음에 쌓았던 분노와 복수심까지도 용서하는 거룩한 사랑이 솟아날 게다. 악의 세상에서 그래도 용서만이 행복을 안기어 줄게다. 이게 주님의 기도를 드리면서 새길 참 묵상거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