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 이수철 프란치스코신부님 -회개의 여정 “무지의 병病에 대한 약藥은 회개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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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선우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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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2025-03-12 | 조회수73 | 추천수6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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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3.12.사순 제1주간 수요일
요나3,1-10 루카11,29-32
회개의 여정 “무지의 병病에 대한 약藥은 회개뿐이다”
“부서지고 뉘우치는 마음을, 하느님, 당신은 업신여기지 않으시나이다.”(시편51,19ㄴㄷ)
화답송 후렴처럼, 주님은 회개하는 영혼을 용서하시고 품에 안아 위로와 치유를 주십니다. 아주 예전 제 강론에 대한 두분의 평이 고무적이라 잊혀지지 않습니다. 삶도 그랬으면 좋겠다 싶었습니다.
“신부님 강론은 쉽고, 깊고, 아름답고, 울림(감동)이 있습니다.” 어느 평신도 신학자의 평이었는데 끊임없는 회개를 통해 이뤄지는 삶이 이렇지 않겠나 하는 생각도 듭니다. “신부님 강론은 단순simple하고 다채롭고colorful 현실적practical이요 좋은 메시지good message를 줍니다.”
20여년전 로마에서 수도자 모임시 호주 수녀님이 수 차례 제 영문 강론을 들은 후 평을 지금도 기억합니다. 저의 삶 역시 이랬으면 좋겠습니다. 역시 끊임없는 회개의 삶이 그렇게 만들겁니다.
밖으로는 산같은 정주요 안으로는 강같은 내적여정의 삶이 우리 베네딕도회 수도자의 삶입니다. 늘 맑게 흐르는 강같은 내적여정의 삶은 그대로 끊임없이 새로워지는 회개의 여정이기도 합니다. 회개와 함께 가는 자기를 아는 겸손의 지혜로운 삶이 바로 무지에 대한 답입니다. 명상기도시 자주 되뇌는 “강”이란 자작시가 있습니다.
“강이 강에 가다니요? 그냥 있으세요. 당신은 늘 맑게 흐르는 강이에요.”
정주의 산처럼 반가부좌 자세로 앉아서 끊임없이 호흡에 맞춰 성구를 반복하는 명상기도를 바치다 보면 내면은 늘 맑게 흐르는 강같다는 생각이 듭니다. 물도 고이면 썩습니다. 삶도 고이면 썩습니다. 안으로 끊임없이 맑게 흐르는 강같은 살아 있는 삶은 바로 끊임없는 회개의 여정을 통해 실현됩니다.
끊임없는 기도와 더불어 끊임없는 회개이니 흡사 수도원의 기도를 중심한 일과표가 ‘회개의 일상화’를 이뤄주는 ‘회개의 시스템’같다는 생각도 듭니다. 아무리 강조해도 부족한 것이 회개입니다. 회개한 성인은 있어도 부패한 성인은 없다는 교황님 말씀도 생각납니다. 마음의 부패를 막아주는 회개의 수행이요, 회개와 더불어 마음의 순수와 사랑입니다.
엊그제 말씀의 주제는 “사랑”이었고 어제는 “기도”였으며 오늘은 “회개”입니다. 사랑할 때 기도요 기도할 때 회개이니 셋은 하나로 연결되었음을 봅니다. 오늘 제1독서 요나는 주님의 부르심에 거역하여 도주하다 사로잡히자 회개하여 살아나 니네베에서 회개를 선포합니다. 앞서 2장은 요나의 긴 회개의 기도가 자리하고 있습니다.
“일어나 저 큰 성읍 니네베로 가서, 내가 너에게 이르는 말을 그 성읍에 외쳐라.” 주님의 명령에 즉시 응답하여, 요나는 외칩니다. “이제 40일이 지나면 니네베는 무너진다.”
사순시기 40일과 일치합니다. 사순시기 우리 대한민국에 주시는 말씀처럼 들립니다. 좌우의 내전적 대결로 격화되어 있는 대한민국 국민들의 거국적인 회개와 화해가 절실한 시점입니다. 니네베 사람들은 하느님을 믿었고 위의 임금으로부터 시작하여 전주민은 물론 짐승까지 회개의 대열에 합류합니다.
“사람이든 짐승이든 모두 자루옷을 걸치고 하느님께 힘껏 부르짖어라. 저마다 악한 길과 제 손에 놓인 폭행에서 돌아서야 한다. 하느님께서 다시 마음을 돌리시고 그 타오르는 진노를 거두실지 누가 아느냐? 그러면 우리가 멸망하지 않을 수도 있다.”
임금의 호소에 그들이 악한 길에서 돌아서는 모습을 보시고 하느님께서는 마음을 돌리시어 그들에게 내리겠다던 재앙을 거두십니다. 정말 니네베 주민들처럼 그리스도교 신자들은 물론 사순시기 대한민국 전국민이 회개의 삶에 동참했으면 좋겠습니다. 명실공히 사순시기는 회개와 정화, 화해의 시기입니다.
오늘 복음 장면도 인상적입니다. 예수님의 기적에 모여드는 군중들은 예수님의 인기에 따른 호기심 때문이지 결코 스승을 따르는 제자들이 되기위함은 아니었을 것입니다. 이들에 대한 경각심을 일깨우는 주님의 질타는 시공을 초월하여 오늘의 우리를 향합니다.
“이 세대는 악한 세대다. 이 세대가 표징을 요구하지만 요나 예언자의 표징밖에는 어떠한 표징도 받지 못할 것이다.”
무지의 악, 무지의 죄, 무지의 병입니다. 마음의 병病 무지에 대한 치유제인 약藥은 회개뿐입니다. 예수님은 현자 솔로몬을 찾았던 남방 여왕을 예로 들면서, 또 요나의 선포에 회개로 응답한 니네베 사람들을 예로 들면서 우리 악한 세대의 사람들에게 회개를 촉구합니다.
무엇보다, 누구보다 예수님의 삶전체가, 사람들을 가르치시고 고치시고 먹이시고 살리신 예수님 자체가 빛나는 회개의 표징인데, 또 눈만 열리면 도처에 주님의 빛나는 회개의 표징들인데, 가톨릭교회내의 무수한 성인들, 주변의 거룩하고 착하게 살아가는 무수한 신자들 역시 빛나는 회개의 표징들인데, 도대체 무슨 표징이 필요하겠는지요! 저에게는 충실히 살아가는 여기 수도공동체 형제들 하나하나가 회개의 표징이 됩니다.
“그러나 보라, 솔로몬보다 더 큰 이가 여기에 있다.” “그러나 보라, 요나보다 더 큰 이가 여기에 있다.”
바로 예수님 그분이, 예수님을 모시는 이 거룩한 미사 역시 참 좋은 회개의 표징이 됩니다. 이 거룩한 미사은총이 우리 모두 “회개의 여정”에 충실하게 하시고, 회개의 표징이, 희망의 표징, 구원의 표징이 되어 살게 하십니다.
“하느님, 제 마음을 깨끗이 만드시고, 제 안에 굳건한 영을 새롭게 하소서.”(시편51,12). 아멘.
성 베네딕도회 요셉수도원 이수철 프란치스코신부님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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