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 사순 제2 주일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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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조재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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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2025-03-15 | 조회수138 | 추천수8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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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에는 없는데, 한국에 있는 주거 방식이 있습니다. ‘전세(傳貰)’ 제도입니다. 임대인은 일정 금액을 지급하고 임차인의 주택을 계약기간 동안 사용하는 제도입니다. 계약기간이 끝나면 임대인은 임차인의 결정에 따라서 다른 곳으로 옮겨가야 합니다. 계약기간이 끝났을 때 임차인이 전세 금액을 올리면 임대인은 올린 금액을 더 지급하고 재계약을 하든지, 아니면 다른 곳으로 옮겨가야 합니다. 제가 어릴 때는 ‘내 집 마련’은 서민들에게는 ‘꿈’과 같았습니다. 제 기억에 어린 날 이사를 자주 가야 했습니다. ‘쌀가게, 미진이네, 담배 가게, 재웅이네, 쌍둥이네, 할머니 집’까지 6번을 이사했습니다. 그리고 제가 6학년이 될 무렵 비로소 더 이상 이사 가지 않아도 되는 집이 생겼습니다. 어머니는 무척 기뻐하였습니다. 알게 모르게 주인집 아이들의 눈치를 보았던 저도 기분이 좋았습니다. 어릴 때, 매주 ‘주택복권 추첨’이 있었습니다. 1등에 당첨되면 주택을 살 수 있을 만큼의 당첨금이 지급되었습니다. 달라스 성 김대건 안드레아 성당은 2년 후면 설립 50주년이 됩니다. 지금 성당이 3번째 성당입니다. 첫 번째 성당은 ‘다운타운’에 있었다고 해서 다운타운 성당이라고 불렀다고 합니다. 독일인 이민 공동체가 세운 성당인데 독일인 이민이 줄면서 한인 공동체가 다운타운 성당에서 미사를 봉헌했다고 합니다. 다운타운 성당이 좁고, 주차장이 협소하여서 교우들은 더 넓고 큰 성당을 원했습니다. 다운타운 성당에서 지내면서 교우들은 지금의 자리에 성전 대지를 마련했습니다. 새로운 성전을 세우기 전에 임시로 옮겨간 성당이 있었습니다. 창고 건물이었기에 교우들은 그 성전을 ‘창고 성전’이라고 불렀다고 합니다. 새로 마련한 땅에 성전을 세우자는 의견이 있었고, 지금의 성전 위치가 달라스 중심에서 서쪽으로 치우쳐 있기에, 이민 오는 분들이 북쪽에 세워지는 새로운 도시로 오기에, 북쪽에 성전을 세우자는 의견이 있었다고 합니다. 몇 번의 진통 끝에 지금, 우리가 있는 이 자리에 아름다운 성전이 세워졌습니다. 교우들의 땀과 눈물로 세워진 성전입니다. 2017년 3월에 새 성전이 완공되었고, 축성식이 있었습니다. 어느덧 8년이 지났습니다. 오늘 제1독서에서 아브람은 하느님께 2가지 축복을 받았습니다. 하나는 땅의 축복입니다. 다른 하나는 자식의 축복입니다. 어렵게 자기 집을 마련하는 것도 큰 기쁨이고 축복입니다. 40년 만에 아름다운 성전을 세우고 축성하는 것도 큰 기쁨입니다. 그러나 더 중요한 것이 있습니다. 그 집에서 사는 가족들의 삶입니다. 넓고 큰 집에 살면서도 사랑이 없으면, 믿음이 없으면, 희망이 없으면 그 집은 하느님의 뜻이 이루어지는 행복한 집이 될 수 없습니다. 6번이나 옮겨 다니면서 이사를 할지라도 그 집에서 사랑이 꽃이 피면, 믿음이 자라나면, 희망이 열매 맺으면 하느님의 뜻이 이루어지는 행복한 집이 될 수 있습니다. 새로 신축된 아름다운 성당에 있으면서도 공동체에 사랑이 없으면, 믿음이 없으면, 희망이 없으면 그 성당은 하느님의 뜻이 이루어지는 행복한 성당이 될 수 없습니다. 다운타운에서 힘들게 미사를 봉헌했어도, 창고에서 공동체를 이루었어도 그 성당에서 사랑이 꽃이 피면, 믿음이 자라나면, 희망이 열매 맺으면 하느님의 뜻이 이루어지는 행복한 성당이 될 것입니다.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 거룩하게 변모하셨습니다. 모세와 엘리야가 예수님과 대화하였습니다. 베드로 사도는 천막 3개를 만들어서 함께 지내자고 하였습니다. 베드로 사도는 해석을 잘 못하였습니다. 예수님께서 거룩하게 변모한 것은 구약의 율법과 예언서에 기록된 대로 수난을 통해서만 영광스러운 부활이 있음을 알려 주신 것입니다. 베드로는 예수님의 수난과 고통을 이해하지 못하였고, 그런 일은 없어야 한다고 하였습니다. 예수님께서는 그런 베드로를 꾸짖으면서 이렇게 말하였습니다. “사탄아, 물러가라! 너는 하느님의 일은 생각하지 않고, 사람의 일만 생각한다.” 종교는 삶을 해석하는 것입니다. 종교는 삶의 길을 알려 주는 것입니다. 삶을 해석하고, 삶의 길을 충실하게 따라가는 것이 신앙입니다. 우리는 하느님에게서 왔으니, 하느님께로 가야 하는 존재입니다. 하느님께 가기 위해서는 하느님의 뜻을 따라야 합니다. 오늘 제2독서는 그래서 이렇게 이야기합니다. “다 함께 나를 본받는 사람이 되십시오. 여러분이 우리를 본보기로 삼는 것처럼 그렇게 살아가는 다른 이들도 눈여겨보십시오. 그리스도께서는 만물을 당신께 복종시키실 수도 있는 그 권능으로, 우리의 비천한 몸을 당신의 영광스러운 몸과 같은 모습으로 변화시켜 주실 것입니다.” 아름다운 성전과 공동체도 중요합니다. 그러나 그 성전과 공동체는 하느님의 영광을 위한 것이어야 합니다. “이는 내가 선택한 아들이니 너희는 그의 말을 들어라.”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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