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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김준수 신부님 사순 제2주일: 루카 9, 28 - 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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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이기승 쪽지 캡슐 작성일2025-03-15 조회수83 추천수3 반대(0) 신고

 “예수님과 기도하시는데, 그 얼굴 모습이 달라지고 의복은 하얗게 번쩍였다.”(9,29)


신학생 시절 감명 깊게 읽은 어른 동화책이 있습니다. ‘트리나 포올러스’가 쓴 「꽃들에게 희망을」이란 동화입니다. 그 내용은 애벌레가 나비로 변모하는 과정을 아름답게 표현한 작품입니다. 책의 제목에서 느끼는 것처럼 한 애벌레의 변모로 이 세상의 많은 꽃들에게 희망을 주기 때문입니다. 한 존재의 변모가 다른 모든 존재에게 희망이 된다는 게 놀랍기만 합니다. 그런데 애벌레가 나비로 변모하기 위해서는 애벌레의 상태를 기꺼이 포기할 수 있을 때 가능하다는 게 더 놀랍습니다. 자기의 겉모습이 죽어 없어질 때만이 자기의 참모습이 드러나기 때문입니다. 예전 베트남에 살 때 시청한 드라마 「내 딸 서영이」란 드라마가 아직도 기억에 생생합니다. 그때부터 ‘이보영’이란 배우를 좋아했습니다. 서영이는 물론 서영이 아버지 그리고 서영이 남편 ‘우재’, 시아버지인 ‘강기범’ 등 여러 사람의 변화에 초점이 있습니다. 변하고 싶어도 변할 수 없는 자기 자신 하지만 변화를 사랑으로 기다리는 사람들이 있었기에 결국 자신의 상처를 치유할 때 변화는 일어난다는 메시지를 표현한 드라마였습니다. 

오늘 독서에서 아브라함도 하느님과 계약을 맺음으로써 모든 신앙인의 선조로 변화되어 가는 과정을 보여 주고 있습니다. 하느님께서는 아브라함에게 후손과 땅을 약속하셨습니다. “하늘을 쳐다보아라. 네가 셀 수 있거든 저 별들을 세어 보아라. 너의 후손이 저렇게 많아질 것이다.”(창15,5), “나는 이집트 강에서 큰 강 곧 유프라테스 강까지 이르는 이 땅을 너의 후손들에게 준다.”(15,18) 그런데 많은 후손을 얻기 위해선 자기의 외아들을 하느님께 바쳐야 했고, 약속한 땅을 얻기 위해서는 고향 칼데아의 우르를 떠나 나그네 삶을 살아야만 했습니다. 더 나아가 아브라함의 생전에는 많은 후손도 없었고, 많은 땅도 없었다는 게 더 놀랍습니다. 눈에 보이는 축복이 없어도 끝까지 믿은 신앙이 모두에게 희망이 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오늘 우리가 들은 복음에서, 예수님께서도 산에 오르시어 기도하시는데, 그 얼굴 모습이 달라지고 의복은 하얗게 번쩍였습니다. 거룩한 변모를 하신 것입니다. 아울러 그분은 영광에 싸여 모세와 엘리야와 함께 예루살렘에서 이루실 일을 말하고 있었습니다. 구름이 일더니 그들을 덮었고, 구름 속에서 소리가 났습니다. “이는 내가 선택한 아들이니, 너희는 그의 말을 들어라.”(9,35) 하지만 하느님께서 선택한 아들이 세상의 구원을 위해 자기 목숨마저 바쳤다는 게 놀랍기만 합니다. 더 나아가 제자들이 본 영광된 모습을 아무에게도 알리지 말라고 한 게 더 놀랍습니다. 수난과 죽음을 거쳐야 부활의 희망도 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변화하려고 할 때는 아픔이 따릅니다. 애벌레의 상태를 기꺼이 포기해야 하는 아픔, 자기의 가장 소중한 아들을 바치고 고향 땅을 떠나야 하는 아픔, 자기의 가장 소중한 목숨마저 바쳐야 하는 아픔이 따릅니다. 그래서 우리는 그 아픔을 싫어하고 베드로처럼 주어진 현실에 안주해 버리고자 합니다. 베드로가 예수님께 말했습니다. “스승님, 저희가 여기에서 지내면 좋겠습니다. 저희가 초막 셋을 지어 하나는 스승님께, 하나는 모세께, 또 하나는 엘리야께 드리겠습니다.”(9,33) 이 말은 이곳에 초막 셋을 짓고 그냥 머물러 살자는 말입니다. 하느님께서 베푸시는 축복에 머물면서 고통받는 사람들을 외면하고 영광에 싸여 살자는 겁니다. 그런데 베드로는 자기가 무슨 말을 하는지도 몰랐다는 게 놀랍기만 합니다. 더 나아가 제자들은 “모세와 엘리야가 구름 속으로 들어가자 그만 겁이 났다는 게” 더 놀랍습니다. 이렇게 예수님의 거룩한 변모의 진정한 의미는 수난을 겪은 뒤에야 비로소 그 뜻을 알 수 있기 때문입니다.

거룩하게 변화하기를 원하십니까? 그러면 자기를 포기하는 아픔을 받아들이십시오. 자신의 상처를 놓아버리십시오. 우리도 사도 바오로처럼 십자가의 원수가 아니라 십자가의 어리석음을 선택하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십자가의 원수로 살면 그 끝이 멸망이지만 십자가의 어리석음을 선택하면 그 끝이 구원이기 때문입니다. 사도 바오로는 사랑하는 필리피 교우들에게 말했습니다. “우리는 하늘의 시민입니다. 그리고 그곳에서 구세주로 오실 주 예수 그리스도를 고대합니다. 그리스도께서는 우리의 비천한 몸을 당신의 영광스러운 몸과 같은 모습으로 변화시켜 주실 것입니다. 그러므로 내가 사랑하고 그리워하는 형제 여러분, 주님 안에 굳건히 서 있으십시오.”(3,20.21) 

불가능함이 없으면서도 늘 자기의 능력과 힘을 발휘하지 않으셨던 주님께서 왜 이렇게 느닷없이 영광스러운 모습을 제자들에게 보여 주셨을까요? 예수님은 당신의 죽음을 내다보셨습니다. 제자들의 절망과 방황도 내다보셨습니다. 그때를 대비해서 당신의 천상 모습을 미리 제자들뿐만 아니라 우리에게 보여 주신 것입니다. 이후에 당신이 수난당하고 십자가에서 죽더라도 좌절하지 말고 일어서라는 것입니다. 오늘의 체험을 떠올리며 의심을 버리라는 것입니다. 당신은 사라지는 것이 아니라 모세와 엘리야처럼 생명의 나라에 있을 것이라는 사실을 암시하신 것입니다. 그러니 변모 사건은 주님께서 제자들에게 보여 주시고자 했던 위안과 격려의 행위라고 할 수 있습니다. 예수님 변모의 순간은 한순간이었지만, 제자들은 영원을 목격하고 체험했습니다. 이 사건으로 그들은 스승에 대한 믿음이 더 굳건해졌고, 예수님에 대한 신뢰가 더 깊어졌습니다. 우리에게는 그런 체험이 없었을까요. 우리에게는 그분의 변모 사건이 없었을까요. 신앙 안에서 낙심하지 말라고 그분께서 개입해 오신 사건은 없었을까요. 이것을 찾아내어 묵상하라는 것이 오늘 복음의 교훈입니다. 사람들은 쉽게 잊어버립니다. 고통과 역경 속에 놓이게 되면 좋았던 순간, 행복했던 것을 쉽게 잊어버립니다. 제자들도 그랬습니다. 더구나 그들은 예수님을 따르면서 기적을 체험했던 사람들입니다. 그런데도 수난의 순간이 오자 스승의 죽음을 이해하지 못하고 절망에 빠져버렸습니다. 변모 사건의 기억도 소용없었습니다. 부활하신 주님께서 다시 찾지 않았다면 그들은 어떻게 되었겠는가. 주님께서 다시 찾아가셨기에 제자들은 사도로 바뀔 수 있었던 것입니다. 

우리도 영세 후 많은 은혜를 받았습니다. 신자가 되기 전에도 그분의 도우심을 받으며 살아왔습니다. 진정한 신자는 이러한 은혜를 잊어버리지 않는 사람을 말합니다. 잊어버리면 감사할 수 없습니다. 잊지 않기에 감사할 수 있고 그래야 신앙은 힘이 됩니다. 누구에게나 주님께서 개입하신 사건은 있기 마련입니다. 지난 세월을 되돌아보십시오. 얼마나 위험하고 힘들었던 순간들이 많았던가. 지금 생각해도 아찔한 사건들이 있었을 것입니다. 어떻게 마무리되었습니까. 우연인 듯 느껴져도 누군가의 도움이 있었습니다. 역경을 만나 기도했는데 역경이 끝난 뒤에는 우연으로 여긴다면 얼마나 어이없는 생각입니까. 너무 쉽게 사람들은 그렇게 생각합니다. 이게 바로 현실적인 유혹입니다. 신앙인에게는 반드시 은혜로운 기억이 있습니다. 고통으로 힘들었지만, 지난 다음 은혜와 감사로 충만하고 마감된 사건들 말입니다. 주님의 개입 없이 가능했었을까요. 신앙 안에서 힘을 내라고, 희망으로 견디어 내라고 주님은 변모하셨고, 이 놀라운 체험으로 그분께서 가신 십자가를 통해서 부활의 영광으로 나아오도록 베푸신 은총이 예수님의 변모 사건입니다. 은총은 예고 없이 찾아옵니다. 생각지도 않은 때에 옵니다. 평소의 작은 기도가, 작은 선행이 결정적 순간에 은총이 다가오게 하는 겁니다. 그분께서 눈길 한 번만 주셔도 우리의 삶은 놀랍게도 은총으로 넘쳐납니다. 이처럼 예수님의 변모 사건은 부활하신 예수님을 미리 앞당겨 보여 준 사랑의 계시이며 은총의 사건이었습니다. 사순절을 지내면서 가끔씩 부활을 생각해야 합니다. 무작정 참고 인내하라는 것이 아닙니다. 부활을 위해 그렇게 하라는 것입니다. 우리의 어떤 부분이 부활해야 할지 생각하며 사순절을 보내도록 합시다. “주님, 우리의 마음을 바꿔주시어 현재에 만족하여 안주하지 않,고 당신께서 가신 십자가의 길을 따를 수 있도록 변화를 두려워하지 않게 하여 주십시오. 애벌레가 나비가 되는 과정처럼 저희 또한 기꺼이 변화의 고통을 받아들여 당신 모습 닮게 하여 주십시오. 아멘.”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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