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 [사순 제2주간 화요일]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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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박영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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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2025-03-18 | 조회수58 | 추천수3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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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순 제2주간 화요일] 마태 23,1-12 "누구든지 자신을 높이는 이는 낮아지고 자신을 낮추는 이는 높아질 것이다.”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은 율법의 준수도, 단식 자선 기도 같은 재계의 실천도 다 “사람들에게 잘 보이기 위해서”하는 율법학자들과 바리사이들의 위선을 지적하십니다. 그들이 ‘입술로만 하느님을 섬길 뿐 그 마음은 그분에게서 멀리 떠나있기에’, 하느님께서 주신 계명을 지킬 때에도 본질보다는 형식에, 근본정신보다는 허례허식에 집착하고 있다는 겁니다. 그런 이들이 쉽게 빠지는 유혹이 바로 ‘교만’입니다. 자기들이 고귀한 존재인 양 착각하며 힘들고 어려운 일에는 손가락 하나 까딱하려고 하지 않습니다. 다른 이들이 자기를 우러러 봐주기를 바라기에 높은 자리를 좋아하고, 사람들에게 인사받는 것을, 스승님 소리를 들으며 대우받는 것을 당연하게 여깁니다. 자기들이 앉아있는 ‘모세의 자리’에 합당한 사람이 되려는 노력은 하지 않으면서 그 권위만 누리려는, 심지어 ‘하느님의 자리’까지 자기가 대신 차지하고 앉으려는 모습입니다.
그런 그들에게 예수님은 분명히 말씀하십니다. “너희 가운데에서 가장 높은 사람은 너희를 섬기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 누구든지 자신을 높이는 이는 낮아지고 자신을 낮추는 이는 높아질 것이다.”(마태 23,11-12) 이 세상에 살아가면서 더 나은 존재가 되고 싶다는, 더 높은 차원으로 고양되고 싶다는 열망을 품는 것 자체는 좋은 일이지만, 정말 그러고 싶다면 사람들 눈치를 보며 스스로 자신을 드높이려고 해서는 안된다는 것입니다. 튼튼한 날개도 갖추지 않고 어슬프게 높은 하늘에 올라갔다가는 뜨거운 태양빛에 날개가 녹아내려 추락하고 말지요. 그러니 바닥부터, 기본부터 단단하게 다져가야 하는데 그 방법이 바로 겸손하게 자신을 낮추며 다른 이들을 사랑으로 섬기는 것입니다. 의무감으로 마지못해서가 아니라, 그들 안에 계시는 하느님을 알아보고 하느님을 대하듯이 그들을 대하는 겁니다. 하느님 사랑은 이웃사랑을 통해서만 표현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어떤 사람이 믿을만한 사람인지 아닌지를 판단할 때 그가 평소에 다른 사람들을 어떻게 대하는지를 지켜보는 것처럼, 하느님도 우리가 당신 피조물인 이웃 형제 자매를 어떻게 대하는지를 보시고 우리가 당신을 얼마나 사랑하는지를 판단하시는 겁니다.
벼는 익을수록 고개를 숙여야 하는데, 높이 오를수록 더 멀리, 더 크게 볼 줄 알아야 하는데, 그러지 못한 사람들이 참으로 많은 요즘입니다. 남들보다 뭐 하나라도 나은 게 있으면 목이 잔뜩 뻣뻣해져서 거들먹거리고, 높은 자리에 오르면 당장의 이익을 얻기 위해 과하게 탐욕을 부리다가 자기 자신은 물론 공동체 전체에 해악을 끼치고 말지요. 그렇다고 그런 이들을 비판하고 단죄하려고 들다가는 자기도 모르는 새 ‘욕하면서 닮게’ 될 겁니다. 그러니 우리 천주교 신자부터 변화되면 좋겠습니다. 늘 겸손한 자세로 만나는 모든 사람을 하느님으로 대하면 좋겠습니다. 우리를 구원하시기 위해 한 없이 자신을 낮추시어 사람이 되시고 죽으신 주님의 큰 사랑을 생각하며, 감사와 사랑의 마음으로 이웃 형제 자매들을 섬기면 좋겠습니다. 힘으로 다른 이를 억누르며 억지로 그 위에 군림하려고 들면 ‘깡패’가 되지만, 겸손으로 다른 이를 귀하게 여기고 존중하면 자연스레 나도 귀한 존재가 된다는 걸 잊지 맙시다. “누구든지 자신을 높이는 이는 낮아지고 자신을 낮추는 이는 높아질 것이다.”
* 함 승수 신부님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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