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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복되신 동정 마리아의 배필 성 요셉 대축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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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박영희 쪽지 캡슐 작성일2025-03-19 조회수63 추천수3 반대(0) 신고

[복되신 동정 마리아의 배필 성 요셉 대축일] 마태 1,16.18-21.24ㄱ “마리아의 남편 요셉은 의로운 사람이었고“


 

오늘은 “복되신 동정 마리아의 배필 성 요셉 대축일”입니다. 우리가 요셉 성인하면 떠올리는 특징은 크게 두 가지이지요. 하나는 ‘의로움’이고 다른 하나는 ‘침묵’입니다. 먼저 요셉 성인의 의로움에 대해 살펴봅니다. 성경에서 말하는 ‘의로움’은 세상이 말하는 ‘정의로움’과는 다릅니다. 세상 사람들은 법과 규율을 어기지 않고 충실하게 잘 지키는 사람, 사회 구성원들이 보편적으로 ‘옳다’고 여기는 가치들을 존중하고 따르는 이들을 정의롭다고 하지요. 하지만 우리가 요셉 성인을 두고 ‘의롭다’고 하는 것은 그분이 율법이나 조상들의 전통을 어기지 않고 철저하게 지켰기 때문만은 아닙니다. 그런 것들은 그저 인간적인 기준을 적용했을 때 드러나는 상대적 의로움일 뿐, 하느님으로부터 나오는 절대적이고 참된 의로움은 아니기 때문입니다.

참된 의로움은 ‘주님 앞에 나설 수 있는 힘’을 가리킵니다. 만약 어떤 사람이 자기 친구로부터 돈을 빌린 후 약속한 때까지 갚지 않으면 그 앞에 떳떳하게 나설 수 없습니다. 그를 볼 때마다 갚지 못한 돈이 생각나서 미안해지고 괜히 마음이 위축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어떻게든 그와 마주치지 않으려고 피해다니게 됩니다. 그런 점은 우리와 하느님 사이의 관계에서도 마찬가지지요. 우리는 하느님께 도저히 갚을 수 없는 큰 빚을 진 존재들입니다. 전능하신 하느님께서 몇 번이나 우리를 용서하시고 자비를 베풀어 주셨을 뿐만 아니라, 우리를 구원하시기 위해 당신 외아들의 목숨까지 내어주셨기 때문입니다. 당신께서 우리에게 해주신 것처럼 우리도 이웃 형제 자매에게 그렇게 하라고 본을 보여 주신 것이지요. 그런데 ‘무자비한 종’이 그랬듯이 나에게 빚을 진 형제에게 자비를 베풀지 않고 꾸어준 것을 끝까지 받아내려 든다면, 그것으로도 모자라 도저히 빚을 갚을 능력이 없는 딱한 형제를 ‘법대로’ 처벌하려고 든다면, 하느님 앞에 나설 힘을 잃게 되는 겁니다.

하지만 요셉은 그러지 않았습니다. 율법대로 했다면 정식으로 같이 살기도 전에 다른 이의 아이를 임신한 약혼녀 마리아가 엄중한 죄값을 치르게 할 수도 있었지만, 그렇게 하는 건 자비로우신 하느님의 뜻이 아님을 알았기 때문입니다. 그걸 알면서도 순간적인 미움과 원망에 사로잡혀 하느님 뜻을 거슬렀다가는 자기 잘못에 대한 후회 때문에, 하느님께 죄송스러운 마음 때문에 그분 앞에 온전히 설 수 없을 것임을 알았던 겁니다. 그래서 마리아의 일을 세상에 드러내지 않고 그녀와 조용히 파혼하기로 결정합니다. 그로인해 본인이 약혼녀를 저버린 ‘나쁜 놈’이라고 욕을 먹게 되더라도, 마리아에게 자비를 베풀기로 한 것이지요.

다음으로는 요셉 성인의 침묵에 대해 살펴봅니다. 잠에서 깨어난 요셉은 “주님의 천사가 명령한 대로” 마리아를 아내로 맞아들였습니다. 하느님의 뜻에 철저히 순명하는 모습입니다. 그렇게 할 수 있었던 힘은 그분의 깊은 침묵으로부터 우러나왔지요. 성경 전반에 걸쳐 요셉 성인은 한 마디도 하지 않고 침묵하십니다. 그저 입을 닫고 말을 하지 않는 소극적인 침묵이 아닙니다. 내 생각과 뜻을 말하고 내세우기보다, 하느님의 말씀을 듣고 그분 뜻을 받아들이는 쪽을 선택하기 위한 적극적인 침묵, 믿음의 침묵이지요. 그 침묵의 힘으로 이해하기 어렵고 납득하기도 힘든 하느님의 뜻을 기꺼이 받아들이고 따르실 수 있었습니다. 그 덕에 참으로 의로우신 분이 될 수 있었습니다. 그것이 바로 요셉 성인의 대축일을 맞아 우리가 본받고 따라야 할 모습입니다. 

 

* 함 승수 신부님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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