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 송영진 신부님_<부자들과 부자가 되고 싶어 하는 이들을 향한 경고입니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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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최원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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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2025-03-19 | 조회수74 | 추천수3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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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자들과 부자가 되고 싶어 하는 이들을 향한 경고입니다.>
“어떤 부자가 있었는데, 그는 자주색 옷과 고운 아마포 옷을 입고 날마다 즐겁고 호화롭게 살았다. 그의 집 대문 앞에는 라자로라는 가난한 이가 종기투성이 몸으로 누워 있었다. 그는 부자의 식탁에서 떨어지는 것으로 배를 채우기를 간절히 바랐다. 그러나 개들까지 와서 그의 종기를 핥곤 하였다. 그러다 그 가난한 이가 죽자 천사들이 그를 아브라함 곁으로 데려갔다. 부자도 죽어 묻혔다. 부자가 저승에서 고통을 받으며 눈을 드니, 멀리 아브라함과 그의 곁에 있는 라자로가 보였다. 그래서 그가 소리를 질러 말하였다. ‘아브라함 할아버지, 저에게 자비를 베풀어 주십시오. 라자로를 보내시어 그 손가락 끝에 물을 찍어 제 혀를 식히게 해 주십시오. 제가 이 불길 속에서 고초를 겪고 있습니다.’ 그러자 아브라함이 말하였다. ‘얘야, 너는 살아 있는 동안에 좋은 것들을 받았고 라자로는 나쁜 것들을 받았음을 기억하여라. 그래서 그는 이제 여기에서 위로를 받고 너는 고초를 겪는 것이다. 게다가 우리와 너희 사이에는 큰 구렁이 가로놓여 있어, 여기에서 너희 쪽으로 건너가려 해도 갈 수 없고 거기에서 우리 쪽으로 건너오려 해도 올 수 없다.’(루카 16,19-26)”
1) ‘부자와 라자로의 비유’는, 부자들을 향한 ‘경고’입니다. “그렇게 살지 마라. 회개하지 않고 계속 그렇게 살다가는 저승에서 정반대의 처지로 떨어질 것이다.” 라는 경고. <지금은 부자가 아니더라도, 부자가 되고 싶어 하는 사람들 모두를 향한, 또 물질적으로 풍요롭고 안락하게 살기를 바라는 사람들 모두를 향한 경고입니다.> 바로 앞의 13절에, “어떠한 종도 두 주인을 섬길 수 없다. 한쪽은 미워하고 다른 쪽은 사랑하며, 한쪽은 떠받들고 다른 쪽은 업신여기게 된다. 너희는 하느님과 재물을 함께 섬길 수 없다(루카 16,13).” 라는 말씀이 있습니다. 그리고 14절에는, ‘돈을 좋아하는 바리사이들’이 예수님을 비웃었다는 말이 있고, 15절에는 예수님께서 그 바리사이들을 꾸짖으시는 말씀이 있습니다. “돈을 좋아하는 바리사이들이 이 모든 말씀을 듣고 예수님을 비웃었다. 그러자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이르셨다. ‘너희는 사람들 앞에서 스스로 의롭다고 하는 자들이다. 그러나 하느님께서는 너희 마음을 아신다. 사실 사람들에게 높이 평가되는 것이 하느님 앞에서는 혐오스러운 것이다.’(루카 16,14-15)” ‘부자와 라자로의 비유’는 바로 그들에게 하신 말씀입니다.
2) ‘돈을 좋아하는’이라는 말과 ‘스스로 의롭다고 하는’이라는 말은, 그들이 ‘위선자들’이라는 것을 잘 나타냅니다. 그들은 세속의 부유함을 ‘하느님의 복’이라고 생각했고, 자기들이 부유하게 사는 것은 하느님께서 의인으로 인정해 주시고 복을 내려 주신 덕분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자기들이 돈을 좋아하는 것에 대해서 아무런 죄의식도 없었고, 스스로 의롭다고 하면서 잘난 체 했고, 가난한 사람들을 무시하고 업신여겼습니다. <그들은, “가난하게 사는 것은 의인이 아니기 때문이고, 하느님께서 복을 안 주셨기 때문이다.” 라는 지독한 편견과 고정관념에 사로잡혀 있었는데, 사실 그것은 당시 유대인들의 일반적인 생각이었습니다. 그러니 부자들은 대부분 스스로 의인이라고 자처한 위선자들이었고, 가난한 사람들은 순전히 가난하다는 이유만으로 죄인 취급을 받았고, 가난한 사람들 자신들도 자기들이 죄인이라는 생각을 버리지 못하고 있었습니다. 오늘날에도 크게 다르지 않은 것 같습니다. 전에 중요한 상들을 많이 받은 유명한 영화에서, “부자인데도 착한 것이 아니라, 부자니까 착한 것이다.” 라는 대사가 있었던 것이 기억납니다.>
3) ‘부자와 라자로의 비유’에 나오는 부자는, 적어도 겉으로 보기에는, 특별히 무슨 죄를 지은 것 같지도 않고, 또 나쁜 사람인 것 같지도 않은데, 그렇지 않습니다. 그는 자기 집 대문 앞에 라자로가 누워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고, 오며가며 먹을 것을 던져 주었습니다(21절). 아마도 그 부자는 그것으로 자기 할 일을 다 하고 있다고, 자기는 사랑 실천을 잘하고 있다고 생각했을 것입니다. 21절의 말을 다시 잘 보면, 부자는 라자로에게 먹을 것을 그냥 준 것이 아니라 개들에게 주듯이 던져 주었습니다. <듣기 거북한 말이지만, 라자로를 ‘개 취급’ 한 것입니다.> “부자의 식탁에서 떨어지는 것으로 배를 채우기를 간절히 바랐다.” 라는 말은, 부자가 라자로에게 무엇인가를 조금씩 던져 주긴 했지만, 그것은 터무니없이 적은 양이었다는 것을 나타냅니다. “개들까지 와서 그의 종기를 핥곤 하였다.” 라는 말은, 표현으로는 개들이 라자로를 괴롭혔다는 말인데, 뜻으로는 라자로가 먹는 것을 개들이 가로챘다는 말입니다. 성경에서 ‘개들’이라는 말이 우상숭배자들을 뜻할 때가 많기 때문에(마태 7,6), 여기서도 ‘개들’을 우상숭배자로 생각할 수 있고, 그렇다면 ‘개들’이 라자로를 괴롭혔다는 말은, 부자의 초대를 받고 온 이방인들이(우상숭배자들이) 라자로를 모욕하고 조롱한 것을 나타낸 말로 생각할 수 있습니다. 그 모든 일들은 전부 다 부자의 죄입니다.
4) 부자가 저승에서 한 방울의 물을 아쉬워하고 애원하게 된 것은 ‘인과응보’입니다. 자기가 뿌린 대로 거둔 것인데, 그것은 이승에서 그 부자가 라자로에게 무엇인가를 주었다 하더라도 실제로는 ‘제대로’ 주지 않았음을 나타냅니다. 그 부자가 자기 형제들을 걱정하는 모습을(28절) 좋은 쪽으로 해석해서, 남을 생각하는 마음이 조금은 남아 있었다고 말할 사람이 있겠지만, 그러나 전체 내용을 보면, 그는 저승에서도 여전히 회개하지 않은 채로 자기 가족만 생각하는 이기심을 버리지 못하고 있는 사람입니다.
송영진 모세 신부 ------------------------------------- [출처] 사순 제2주간 목요일 강론|작성자 송영진 모세 신부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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