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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사순 제2주간 토요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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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조재형 쪽지 캡슐 작성일2025-03-21 조회수86 추천수6 반대(0)

엘파소에서 76세의 자매님이 나물, 대추, 호도, 고춧가루, 버섯을 가지고 왔습니다. 12시간 운전해서 왔습니다. 농산물을 팔아서 본당에 봉헌하고, 어려운 이웃을 도와주겠다고 합니다. 왕복 24시간 운전해야 하는 고된 일정입니다. 달라스 성 김대건 안드레아 성당도 성전 건립할 때 물건을 많이 만들어서 팔았습니다. 76세 어르신이 기분 좋게 엘파소로 갈 수 있도록 도와드리자고 했습니다. 다행히 물건이 잘 팔렸고, 어르신은 환하게 웃으면서 돌아갔습니다. 우리가 살아가면서 듣는 말이 있습니다. "입장 바꿔 생각해 봐!" 가족 간에도, 친구끼리도, 직장에서도 참 자주 하는 말입니다. 그런데, 이 말을 들으면 어떤 기분이 드시는지요? "입장 바꿔 생각해 봐"라는 말은 단순한 생활 속 조언이 아니라, 성경이 가르치는 아주 중요한 신앙의 태도입니다.

 

오늘 복음 말씀에서 우리는 탕자의 비유를 봅니다. 둘째 아들은 자기 몫의 유산을 달라고 해서 먼 나라로 떠나 방탕한 생활을 합니다. 돈이 다 떨어지고, 돼지나 치며 힘겹게 살다가, 아버지를 떠올립니다. "아버지 집에서는 품꾼들도 나보다 잘 사는데, 내가 차라리 품꾼이라도 되어야겠다!" 그리고 아버지께 돌아갑니다. 그런데 아버지는 그를 보자마자 달려가서 끌어안고 환영합니다. 잔치를 벌이고 좋은 옷을 입혀 줍니다. 이 장면만 보면 참 감동적입니다. 그런데, 맏아들의 생각은 달랐습니다. 맏아들은 열심히 일하면서 살았습니다. 한 번도 아버지를 속상하게 한 적이 없었습니다. 그런데, 자기 몫의 재산을 다 써버리고 돌아온 동생이 오히려 더 큰 환대를 받습니다. 형의 입장에서 보면 억울할 것 같습니다. "나는 평생 성실하게 살았는데, 왜 저렇게 쉽게 용서받지?" 하는 마음이 들 수도 있을 겁니다.

 

그런데, 여기서 한 가지 질문을 던져 보겠습니다. 탕자의 입장에서 형을 바라보면 어떨까요? 탕자는 형이 억울할 수도 있다는 것을 생각이나 했을까요? 아버지의 입장에서는 어떨까요? "내 아들이 죽었다가 살아 돌아왔다. 얼마나 기쁜 일인데!" 입장을 바꿔 보면, 같은 상황이라도 보이는 것이 달라집니다. 탕자의 비유뿐만이 아닙니다. 하느님께서는 오래전부터 "입장을 바꿔 생각하는 법"을 우리에게 가르쳐 오셨습니다. 이스라엘 백성이 이집트에서 노예 생활을 할 때를 기억해 보십시오. 그들은 오랫동안 억압받고 힘든 삶을 살았습니다. 그런 그들에게 하느님께서 출애굽을 허락하시고, 자유를 주셨습니다. 그런데 가나안 땅에 정착한 후, 그들은 어떠했습니까? 자신들도 과거에 억압받았던 경험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다른 이방인들을 차별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래서 하느님께서는 그들에게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너희도 이집트에서 노예로 살지 않았느냐? 그러니 너희도 이방인을 따뜻하게 대해야 한다.”

 

이 말씀이 오늘날 우리에게 어떤 의미일까요? 우리는 살면서 "나는 힘든 시절을 다 이겨내고 여기까지 왔어!"라고 자부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우리보다 약한 사람, 어려운 사람을 보면 어떤 태도를 가져야 할까요? 하느님께서는 우리가 과거의 고통을 기억하고, 다른 사람을 이해하기를 원하십니다. 성경의 이 가르침은 단순히 오래된 이야기로 끝나는 것이 아닙니다. 트럼프 행정부는 불법 체류자에 대한 강력한 단속을 강화하였습니다. 이민자들은 미국 사회에 부담을 준다는 이유로 쫓겨나야 했습니다. 그런데, 한번 입장을 바꿔 생각해 보면 어떨까요? 그들은 폭력과 가난을 피해 어렵게 국경을 넘었습니다. 더 나은 삶을 위해서, 탕자처럼 무언가를 찾아 떠났던 것입니다. 그렇다면, 미국 사회가 그들에게 조금 더 따뜻한 시선을 보낼 수는 없을까요? 이스라엘은 2000년 동안 박해받은 민족이었습니다. 홀로코스트라는 끔찍한 경험도 했습니다. 그런데, 지금은 팔레스타인 사람들을 억압하는 입장이 되어 있습니다. 만약 유대인들이 자신들이 한때 박해받던 입장으로 돌아가 생각해 본다면? 팔레스타인 사람들이 겪는 아픔을 이해할 수 있지 않을까요?

 

입장을 바꿔 생각해 보는 것은 단순한 조언의 문제가 아닙니다. 이것은 우리가 하느님의 사랑을 실천하는 방법입니다. 탕자의 비유에서 아버지가 보여준 사랑, 출애굽기에서 하느님께서 이스라엘 백성에게 주신 가르침, 그리고 오늘날 우리 사회에서 요구되는 공감과 배려. 이 모든 것이 결국 같은 맥락에서 이해될 수 있습니다. 우리는 때로는 탕자의 입장에서 용서를 받아야 하는 사람이고, 때로는 맏아들의 입장에서 누군가를 용서해야 하는 사람입니다. 그리고 때로는 아버지의 입장에서 조건 없는 사랑을 베풀어야 할 때도 있습니다. 하느님의 사랑과 공감이 삶 속에서 실천되기를 바랍니다. “얘야, 너는 늘 나와 함께 있고 내 것이 다 네 것이다. 너의 저 아우는 죽었다가 다시 살아났고 내가 잃었다가 되찾았다. 그러니 즐기고 기뻐해야 한다.”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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