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 작은 아들은 무엇을 회개했는가?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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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강만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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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2025-03-22 | 조회수29 | 추천수2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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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복음을 읽고 오늘은 무엇에 초점을 맞추어 묵상할까를 대충 메모를 해보니 선택지가 열 개 정도 되는 것 같은데 그중 하나 자격에 대해 한번 묵상해보겠습니다. 오늘 작은 아들은 아버지 품을 떠나 유산을 다 탕진한 후에 지방에 기근이 들었고 먹을 것 때문에 결국은 회개하는 그런 상황입니다. 이 아들은 언제 회개를 했는가 하는 것과 자신은 아버지께 무엇을 잘못했다고 생각해 회개를 했는지 이 부분을 주목해서 살펴보겠습니다. 먼저 작은 아들이 회개를 한 배경은 먹을 것이 없어서 자칫 잘못하면 죽을지도 모를 상황이 될 수도 있다는 상황에서 제정신이 든 것입니다. 만약 그때 꼬투리 같은 걸로 어떻게 먹고 연명을 할 수 있는 상황이라면 회개를 할 수도 없었을지도 모를 일입니다. 결국 죽게 되는 상황이 됐을 때 정신이 든 것입니다. 이때 복음은 회개를 했다고 하는 직접적인 표현을 하지 않았습니다. 단순히 정신이 들었다고 표현을 합니다. 이 표현이 문맥상 흐름상 회개를 했다는 다른 표현과 같다고 봐도 좋을 듯합니다. 달리 표현하면 제정신인 상태에서는 회개를 할 수 없다는 표현으로 이해를 하면 우리가 만약 회개를 할 수 있는 상황에 있음에도 불구하고 회개를 하지 못한다면 그 이유는 자신이 처한 현실 속에서는 제정신을 유지할 수 없기 때문에 할 수 없다고 봐야 할 것입니다. 여기서 제정신이라는 건 무엇을 의미할까요? 원래 단어가 의미하는 단어 그 뜻 그 자체를 의미하는 게 아닐 것입니다. 복음 안에서 생각해보면 아버지의 품 안에 있었을 때가 얼마나 행복했었던가 하는 걸 깨달았을 때 그때 제정신이 든 것입니다. 이런 관점에서 보면 우리도 지금 우리가 하느님 품 안에 있고 할 때 우리와 다른 세상이 더 멋져보이고 신앙생활을 하는 게 신앙생활을 하지 않는 사람과 비교했을 때 어떻게 보면 제약도 많고 스스로 자신의 생활을 통제도 해야 하니 버거울 수 있다고 생각해 인간적으로 신앙을 가진 걸 후회할 수도 있다는 측면도 있지만 나중에 만약 우리가 우리의 삶이라든지 굳이 꼭 삶을 말하는 것은 아니더라도 모든 인생을 결산하게 됐을 때 그때 좋은 결과가 나온다면 그때 어떤 생각을 하게 될까를 묵상해보면 “그때 내가 세상에 있었을 때 신앙생활을 할 때는 계도 지켜야 하고 뭔가 틀에 매여 힘들었다고 생각했는데 지금 시점에서 보니 그 생활이 얼마나 은총이었는지 생각해보면 정말 감사한 일이었는지” 하는 고백을 할지도 모를 일입니다. 마치 작은 아들이 오늘 제정신이 들어 표현한 것처럼 말입니다. 제정신이 든 것은 좋은 일이지만 그 상태로만 머물러 있다면 아무런 유익이 없습니다. 발심을 했으면 그 발심이 표현돼야 합니다. 여기서 발심을 했을 때 이 아들은 자신이 무엇을 잘못했다고 하는 그걸 표현한 게 없습니다. 다만 하늘과 아버지께 죄를 지었다고 하는 것과 함께 자신은 단순히 자격이 없다고만 표현을 했습니다. 이 부분을 주목해 볼 필요가 있습니다. 자격과 회개의 상관관계를 한번 살펴 보고 싶습니다. 우리는 단순히 어떤 죄가 있다면 그 죄를 저지른 결과를 보고 그 죄를 뉘우칠 수 있다고 보는 게 일반적입니다. 자격이라는 걸 죄라는 시각으로 보려고 하는 사람은 아마 거의 드물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극단적인 표현을 하자면 자격이 없는 것도 회개를 해야 한다는 그런 논리도 성립할 수 있습니다. 우리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는 세례를 받고 하느님과의 새로운 계약을 설정했습니다. 다시 하느님 자녀로서의 신원이 회복된 것입니다. 그와 같은 자격이 주어진 것입니다. 우리는 이 계약관계가 계속 유지를 해야 하는데 주로 계약 자체를 위반하는 건 주로가 아니라 사실은 전적으로 일방인 우리 측에서 다 계약을 위반한다는 것입니다. 오늘 우리는 다시금 생각해봐야 할 것입니다. 나는 개인적으로 하느님과 계약을 했다면 어떤 계약을 했고 나는 과연 하느님의 자녀로서 지켜야 하는 품위 바로 하느님의 자녀가 되는 자격 그 자체를 잘 유지하고 있는가 하는 점입니다. 저는 이런 관점으로 오늘 복음을 묵상해보는 것도 좋을 듯합니다. 자격은 다양할 것입니다. 수도자는 수도자로 서원했을 때 그때 그 마음을 돌아봐야 할 것이고 서품 받으신 신부님은 서품 때 서약을 또 우리 평신도는 세례 때 한 계약입니다. 과연 우리는 그 계약을 잘 실천하고 있는지 말입니다. 다 좋은 점수를 받기는 힘들 것이라는 고백을 하지 않을 수 없을 것입니다. 왜 그럴까요? 사람은 초심을 유지한다는 게 힘들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오늘 이 복음을 묵상하면서 우리가 하느님과의 계약을 맺었을 때 그때 그 마음으로 잠시 되돌아가 지금의 모습을 재점검해봐야 할 것입니다. 감사합니다.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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