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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이영근 신부님_“주인님, 이 나무를 올해만 그냥 두시지요. 그동안에 제가 그 둘레를 파서 거름을 주겠습니다.”(루카 1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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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최원석 쪽지 캡슐 작성일2025-03-23 조회수36 추천수4 반대(0) 신고

<사순 제3주일 강론> : 목포 삼호성당 사순특강

* 제1독서 : 탈출 3, 1-8ㄱㄷ. 13-15

* 제2독서 : 1코린 10, 1-6. 10-12.

* 복음 : 루카 13, 1-9

오늘은 사순 제3주일입니다. 오늘 ‘사순 특강’은 다른 특별한 것을 보기보다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 말씀하고 계신 “회개”의 뜻을 오늘 <말씀전례>를 통해 좀 더 깊이 들여다보는 것입니다.

오늘 <복음>은 예수님께서 예루살렘으로 가시는 길에 여러 고을을 들러 가르치실 때의 있었던 일을 전해줍니다. 그때 어떤 사람이 예수님께 와서, 빌라도가 갈릴래아 사람들을 죽여 그들이 바치려던 제물을 피로 물들게 한 일을 알렸습니다. 그러자 예수님께서 이르셨습니다.

“내가 너희에게 말한다.

너희도 회개하지 않으면 모두 그처럼 멸망할 것이다.”(루카 13,3.4.)

여기서, “회개”가 강조됩니다. 사실, ‘회개’란 먼저 “죄”를 지었음을 알아야 가능합니다. 그런데 갈릴래야 사람들은 대체 무슨 죄를 지었고, 왜 그것을 회개하지 않았을까요?

대체 ‘회개’란 무엇을 말하며, ‘죄’란 무엇을 말할까요?

오늘 <제1독서>는 이를 밝혀줍니다. 다시 말해, 우리는 <제1독서>의 맥락 안에서 ‘죄의 본질’‘회개의 본질’을 알아들을 수 있습니다.

먼저, ‘죄’란 무엇을 말하는가? 대체무엇이 죄인가?

<성경>에서 ‘죄’는 본질적으로 하느님과 관련하여 크게 ‘두 가지’라 할 수 있습니다. <하나>는 ‘무지의 죄’이고 <또 하나>는 ‘망각의 죄’입니다.

오늘 <제1독서>에서는 ‘무지의 죄’를 깨우쳐줍니다. 곧 ‘하느님을 모르는 죄’입니다.

사실, <탈출기>에서 하느님이 누구신지를 알려주시기 전까지는 그들은 하느님이 누구신지 몰랐습니다. 자신들의 성조들과의 약속을 맺으신 하느님으로 어렴풋이 알고 있었지만, 아직 그 후손들과는 인격적인 만남이 없었고 그들은 하느님을 몰랐던 것입니다. 그런데 모세가 이집트인을 살해하고 미디안으로 도피해서 양을 치고 있을 때, 호렙 산에서 나타나신 하느님께서는 타지 않는 떨기나무 불꽃 한 가운데서 부르셨습니다. “모세야, 모세야!”(탈출 3,4)

(얼마나 놀랬을까? 불안하고 두려운 살 떨리는 일이었을 것이다. 자신이 모세인 줄을 아무도 모르는 이곳에서, 피하여 도망해 온 이곳에서, 일종의 수배자 신세인 자신을 아는 이가 있다니! 더구나, “네가 서 있는 곳은 거룩한 땅이니, 네 발에서 신을 벗어라.”(탈출 3,5)니, 참으로 황당하고 기절초풍할 일이 아닌가? 이 귀양지가 무슨 거룩한 곳이라니, 말이다.)

그리고 그분께서 말씀하십니다. “나는 네 아버지의 하느님, 곧 아브라함의 하느님, 이사악의 하느님, 야곱의 하느님이다.”(탈출 3,6). 그러니 그분은 아직 성조들의 하느님이실 뿐, 그 후손들과는 직접 관계를 맺고 있지 않았던 것입니다. 곧 그들은 아직 하느님을 모르고 있었던 것입니다. 그런데 ‘그분이 그들이 울부짖는 소리를 들으시고 이집트인들의 손에서 구하여 젖과 꿀이 흐르는 땅으로 데리고 가려고 내려왔다.’(탈출 3,7-8)고 하십니다. 그리고 이름을 묻는 모세에게 대답하십니다.

“나는 있는 나다.(탈출 3,14)

...이것이 영원히 불릴 나의 이름이며, 이것이 대대로 기릴 나의 칭호이다.”(탈출 3,15)

여기에서, ‘하느님의 이름’은 우선 세 가지를 밝혀줍니다. <첫째>는 하느님은 없는 허상이나 환상이 아니라 ‘실재 하신 분’이라는 것이요, <둘째>는 이방인들의 신처럼 이름의 한계 안에 갇히는 그런 존재가 아니라 ‘이름을 붙일 수 없는 무한하신 분’이라는 것이요, <셋째>는 과거에도 있었고 현재에도 있고 미래에도 있을 하느님으로 ‘늘 계시는 분’임과 동시에 ‘장차 보게 될 분’이라는 것을 말해줍니다.

그리고 실재로 파라오에게 행한 열 재앙을 통해서 당신이 누구신지를 알게 하시고, 또한 홍해를 건네는 탈출을 통해 당신께서 구원자 하느님이심을 보여주시고 체험시켜주십니다. 나아가, 손을 잡아 붙들어 주시고 계약을 맺으시고 함께 동행 하십니다.

그렇게 해서, 이제 그들은 하느님을 알게 되고, ‘무지의 죄’로부터 벗어나게 됩니다. 그렇지만, 그 후에도 이미 체험하고 알게 된 그분을 끊임없이 망각하고 배신합니다. 그래서 이집트에서 빠져나온 이들 중에서는 칼렙과 여호수아만이 약속의 땅 가나안에 들어가고 모두 광야에서 죽게 됩니다. 그리고 그 후손들 역시 가나안 땅에 들어가서도 여전히 하느님을 섬기지 않고 우상숭배에 빠졌으며, 마침내는 이방민족들처럼 왕을 세우고 하느님을 잊어버리고 떠나갔으며, ‘망각의 죄’에 떨어졌던 것입니다. 결국 바빌론에서 유배생활을 하게 됩니다.

특별히, 우리는 <제1독서>의 ‘하느님 이름의 계시’를 통해 알아들어야 할 중요한 사실은 ‘우리가 하느님의 계시를 받은 대상으로 선택되었다’는 사실입니다. 그러기에 하느님의 신비에 대한 무엇인가를 보여줄 수 있어야 할 일입니다. 그 신비는 다름 아닌, ‘주 하느님께서 저희와 더불어 관계를 맺고 저희와 함께 계시며, 저희에게 호의와 자비를 보이시며 사랑하시는 분이심을 드러내는 것’입니다. 마치 하느님의 신비를 간직하게 된 모세가 더 이상 자기 스스로 행동하지 않고, 하느님께서 자신 안에서 역사하시도록 자신의 몸을 하느님께 맡겼듯이, 우리도 하느님을 주님으로 모시고 섬기는 일입니다. 그리하여 주님께서 구원하시는 하느님이심을 드러내는 일입니다.

그래서 오늘 <제2독서>에서 바오로 사도는 ‘그리스도’라는 바위에서 영적 양식과 음료를 마시고 그리스도인이 된 ‘코린토인들’에게. 조상들이 모세와 함께 바다를 건너는 세례를 입고 구원자이신 주 하느님을 알게 되어 하느님의 백성이 되었으나 또 다시 광야에서 하느님을 망각하고 죄를 지어 죽어 널브러졌던 사실을 본보기로 주었음을 환기시키며, 종말에 다다르기까지 죄에 떨어지지 않도록 경고합니다.

그리고 <복음>에서는 예수님께서 말씀하십니다.

“내가 너희에게 말한다.

너희도 회개하지 않으면 모두 그처럼 멸망할 것이다.”(루카 13,3.4.)

이는 우리가 멸망하게 되는 것은 지은 ‘죄’ 때문이 아니라, 죄를 ‘회개’하지 않았기 때문이라는 말씀입니다.

우리는 앞에서, 이미 ‘죄가 무엇인지’를 보았습니다. 곧 그것은 하느님께서 ‘구원자 주님’이심을 모르는 ‘무지의 죄’와 그것을 알고도 무시하고 배척했고 거부한 ‘망각한 죄’임을 보았습니다. 렇다면, ‘회개’란 무엇인가?

사실, 예수님께서는 공생활을 시작하시면서 갈릴래아에서 맨 처음으로 ‘복음’을 선포하실 때 동시에, ‘회개’를 촉구하셨습니다. 바로 여기에서 ‘회개란 무엇인지’를 알려줍니다.

예수님께서는 그들에게 말씀하셨습니다.

“하느님의 나라가 가까이 왔다. 회개하고 복음을 믿어라.”(마르 1,15)

그렇습니다. 여기에서 ‘회개’‘믿는 일’입니다. 곧 ‘믿음으로 받아들이는 일’입니다. 그런데 대체 무엇을 믿고, 누구를 믿는 일인가? 그것은 우선, ‘복음을 믿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복음(기쁜 소식)’은 무엇인가?

바로 “하느님 나라가 가까이 왔다”‘복음’입니다. 그러니 “하느님 나라가 가까이 왔다”‘복음을 믿는 것’입니다. 곧 ‘우리를 구원하신 주 하느님께서 다스리는 나라가 가까이 왔다’는 것을 믿고 받아들이는 일입니다.

왜, 이 선포가 ‘복음’(기쁜 소식)이 되는가?

그것은 구체적으로, 우리 자신이나 세상이 다스리는 나라, 곧 죄와 속박으로 굴레에서 해방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동시에, 에덴에서 벌어진 축복(원복)의 상태로의 회복을 의미합니다. 따라서 세상의 죄와 압제로부터의 ‘해방의 기쁜 소식’임과 동시에 그 ‘축복의 기쁜 소식’입니다.

여기서, “가까이 왔다”는 말의 원어의 뜻은 ‘손아귀 안에 있다. 손에 들려 있다’는 뜻이라고 합니다. 그러니, ‘하느님의 나라는 예수님의 손에 들려 예수님과 함께 왔다’는 의미를 품고 있습니다.

이는 참으로 놀라운 선언이었습니다. 혁명적인 전환을 촉구하는 선언이었습니다. 사실 그 당시에 유대인들은 메시아와 메시아가 가져올 ‘하느님 나라가 올 것’이라는 것을 기대하고 희망하고 있었습니다. 흔히 말하는 ‘메시아 대망사상’이 팽배해 있었습니다.

그런데 이제, 이제 놀라운 일이 벌어진 것입니다. 당시의 선구자들은 ‘하느님 나라가 올 것’이라고 선언하고 있었으나, 예수님은 그 ‘하느님 나라가 왔다’고 선포하신 것입니다. 그것은 그 누구도 감히 할 수 없는 선언이었습니다. 자신이 하느님이 아니고는 말입니다.

따라서 ‘하느님 나라가 왔다’는 선언은 그 나라를 들고 온 예수님 당신 자신이 ‘메시아’라는 선언이었습니다. 그러니 바로 당신을 구원자 메시아로 믿고 받아들이라는 말씀입니다. 바로 이것이 바로 “회개”입니다. 곧 ‘하느님 나라가 왔다’는 이 ‘복음(기쁜 소식)을 믿고 받아들이는 것’, 곧 ‘예수님이 구원자 주 하느님이요, 동시에 당신 손에 들려 함께 가져온 ‘하느님 나라’를 받아들이고 믿는 것이 ‘회개’입니다.

그렇습니다. 이는 참으로, 놀라운 “기쁜 소식(복음)”이었던 것입니다. 그러나 그들은 이를 믿지 않았고 받아들이지 않았던 것입니다. 이는 바로 오늘날 우리에게도 마찬가지일 것입니다.

따라서 오늘 <복음>의 “회개하지 않으면 멸망할 것이다.”(루카 13,3)라는 말씀은 우리가 지은 윤리적인 죄 때문에 멸망하는 것이 아니라, ‘하느님 나라가 가까이 왔다는 복음’을 믿고 받아들이지 않으면 멸망할 것이라는 말씀입니다. 곧 자신의 완고함과 고집으로 이미 온 하느님 나라를 믿지 않고, 이미 베풀어진 하느님의 사랑을 받아들이지 않기에 멸망할 것이라는 말씀입니다.

그러니 우리 역시 이 “복음”을 믿고 받아들이지 않거나 망각하게 되면, 그렇게 될 것이라는 말씀입니다. 나아가서, 우리는 “하느님 나라가 가까이 왔다.”“복음”만이 아니라, 예수님의 죽음과 부활을 통하여 이 “복음”이 이루어졌음을 믿는 이들입니다. 곧 “예수님께서 부활하셨다”는 ‘사도들의 복음’을 믿는 이들입니다. 그러니 부활하신 주님의 현존을 망각하지 말아야 할 일입니다.

결국, “회개”란 무지의 죄를 뉘우치고 하느님의 사랑으로 돌아옴을 말합니다. 그것은 ‘내면적, 정신적 뉘우침’과 ‘행위의 실천적 돌아옴’을 통해 드러납니다. 그러기에, “회개”는 단순한 죄의 인식이나 자기 성찰 혹은 자기반성, 또는 단지 죄가 없는 ‘죄의 공백 상태’나 ‘죄의 진공상태’를 말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주 하느님의 용서와 사랑을 받아들이고 자신을 그 다스림으로 채우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리하여 용서하신 하느님의 사랑으로 돌아와 하느님과 올바른 관계를 회복함을 말합니다.

그리고 오늘 복음에 나오는 ‘열매 맺지 못하는 무화과나무 비유’(6-8절)는 ‘시급히 회개할 필요성’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곧 ‘열매 맺지 않는 무화과나무’는 회개한 자에 합당한 행동과 생활을 보이지 않는 사람들을 가리킵니다. 그런데 과수원 주인이 열매 맺지 않는 나무를 잘라내라고 하자, 과수원 재배인은 말합니다.

“주인님, 이 나무를 올해만 그냥 두시지요. 그동안에 제가 그 둘레를 파서 거름을 주겠습니다. 그러면 내년에는 열매를 맺겠지요.”(루카 13,8)

그렇습니다. 범한 죄로 본다면, 저희는 이미 뽑혀도 수백 번 뽑혀지고 말았을 ‘열매 맺지 않는 쓸모없는 나무’에 지나지 않을 것입니다. 그러나 아직 여기 ‘주님의 정원에 심겨져 있다는 것’은 이미 용서받았다는 표시요, 자비를 입고 있다는 표시요, 또한 주님께서 저를 사랑하고 희망하고 기다려주고 믿고 계신다는 표시입니다.

그렇습니다. 이토록, 우리 주님께서는 온갖 정성과 사랑으로 우리의 둘레를 파고 축복과 말씀의 거름을 주시며, 열매 맺도록 기다리고 돌보고 희망하시고 계십니다.

하오니, 참으로 감사합니다. 주님!

오늘 저희가 뉘우치고 당신의 사랑으로 돌아오게 하소서.

당신의 그 크신 사랑을 망각하는 일이 없게 하소서.

그 사랑을 거부하는 일이 없게 하소서.

저희가 당신의 그 사랑을 베풀며 증거 하게 하소서. 아멘. 

 

“주인님, 이 나무를 올해만 그냥 두시지요.

그동안에 제가 그 둘레를 파서 거름을 주겠습니다.”(루카 13,8)

주님!

당신께서는 열매 맺지 못하는 저를 그냥 버려두지 않으시고

손수 저의 둘레를 파고 축복의 거름을 주셨습니다.

지금도 당신께서는 여전히 말씀의 거름을 주시고

믿고 사랑하고 돌보아 주시며, 기다리고 희망하고 계십니다.

하오니, 주님! 당신의 향기 담은 열매를 맺게 하소서. 아멘.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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