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 회개와 열매 어떤 상관관계가 있는가요?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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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강만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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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2025-03-23 | 조회수27 | 추천수3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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몸살을 좀 해서 오늘 미사를 하고 난 후에 묵상글을 올립니다. 사실 금요일 토요일 이틀을 틈틈히 오늘 복음을 묵상했는데 전반부와 후반부를 나누어 보면 전반부는 별 어려운 내용이 아닌데 사실 두 부분이 조화라는 측면에서 보면 논리적인 연결고리가 좀 부자연스런 느낌이 없지 않아 있습니다. 오늘 아치에스를 전 본당에 가서 했습니다. 본당은 아니지만 다시 돌아갈 생각이고 그래서 협조단원으로 존속을 시켰습니다. 아치에스 마친 후에 책 좀 보려고 스터디카페에 와 최종 고민을 하다가 정리를 한 내용입니다. 간략하게 올린 후에 나중에 생활묵상에서 좀 재미도 있으면서 중요한 의미도 전할 수 있는 소스가 생겼습니다. 사실 이걸 올리려고 하다가 고민한 게 좀 아까워서 올립니다. 원래 중학생은 카페 출입이 안 되는데 한 여중생과 뭔 일이 며칠 전에 있었습니다. 그리고 이 애가 계속 제 옆에만 앉는 것입니다. 늙다리 아저씨까지는 아닌데 재미있는 일입니다. 이 애 때문에 하느님의 마음도 생각해 본 적이 있었습니다. 그 묵상은 내일쯤에 한 번 올리겠습니다.
오늘 주일복음으로 들어가겠습니다. 원래 열매라는 것은 무엇을 상징하는가요? 어떤 결과물을 상징합니다. 시간이라는 게 필요합니다. 성급한 시간과 관련된 재미난 속담도 많이 있습니다. 제가 조금 변형을 재미있게 하자면 선보자마자 기저귀 마련한다는 것처럼 말입니다. 회개하지 않으면 멸망을 할 것이라는 예수님의 말씀과 함께 포도재배인 이야기가 나옵니다. 주인은 나무를 심었으면 열매가 맺혀야 하는데 어찌 된 판인지 3년이 지나도록 열매가 열리지 않았습니다. 근데 주인은 열매가 맺히지 않은 사실을 통해서 땅을 버린다는 표현을 사용했습니다. 여기서 버린다의 의미는 가치가 없어서 버린다의 그 의미가 아니고 정확한 의미는 땅으로서의 효용가치가 없다는 그런 의미입니다.
실제 열매는 나무가 맺지만 땅이 없으면 열매 그 자체를 맺을 수 없기 때문에 땅의 입장에서는 자신의 가치가 무가치하고 주인 입장에서도 경제적인 이익을 창출하지 못하기 때문에 무익한 존재로 남게 된 것입니다. 어떻게 다른 방법을 취해 수익이 나올 수 있게 하려면 변화를 주어야 한다는 판단을 했을 겁니다. 땅도 땅이지만 나무 그 자체는 나무로서의 경제적 가치도 없기 때문에 더 이상은 기다릴 수만은 없었기 때문에 없애버릴 생각을 했던 것입니다. 여기서 주인과 재배인은 마지막, 협상 아닌 협상을 합니다. 1년이라는 시간을 번 것입니다. 재배인은 그냥 주인이 시키면 시키는 대로 했으면 될 건데 왜 그런 협상을 했을까요?
이런 내용을 복음에서 언급한 것은 어떤 의미를 우리에게 시사하는지 그것도 중요할 것 같습니다. 조건은 재배인이 거름을 주고 해서 관리를 좀 더 잘 하게 되면 혹시 열매를 맺을 수도 있지 않으까 하는 생각입니다. 안 되면 할 수 없지만 그래도 한번 시도는 해보려고 했던 것입니다. 재배인은 말은 복음에서 하지 않았지만 내심 이런 생각을 하지 않았을까 생각합니다. 경제적인 손익과 기회비용을 따져봤을 때 물론 열매가 내년에도 맺지 않을 수가 있지만 만약에 1년이라는 시간을 투자해서 자기의 노력도 더해져 열매를 맺게 될 것 같으면 없애버린 것과 수익비교를 했을 때 경제적으로 그 가치가 더 높다는 계산을 했을지도 모릅니다. 그게 경제적인 관점에서 훨씬 현명한 판단입니다. 만약 이런 추론이 가능할 수 있다면 오늘 복음이 시사하는 중요한 의미가 있습니다. 하느님은 우리에게 늘 회개를 촉구하십니다.
그 회개도 하나의 열매와 같습니다. 왜냐하면 회개 이전과 회개 이후의 내용만 놓고 본다면 당연히 좋은 현상으로 변화가 된 것입니다. 원래 열매라는 것은 넓은 의미로는 변화의 결과를 말하는 것입니다. 여기서 1년이라는 이 시간은 단순히 수치적인 1년을 의미한다기보다는 마지막 회개를 할 수 있는 기회를 의미한다고 보는 게 좋을 듯합니다. 마지막 회개의 시간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하느님 입장에서는 1년이라는 회개의 시간을 줘 개전의 정이 좋은 결과가 나온다면 손해볼 게 없기 때문입니다. 어차피 멸망하느니 하느님 입장에서는 1년이라는 시간이 어디 시간이겠습니까? 우리 인간의 시간으로는 그것도 많은 시간일 수도 있지만 말입니다. 물론 복음은 재배인의 말을 통해 기회를 주시는 형태로 나오지만 사실 내심 하느님도 재배인의 마음과 같을 것 같지 않을까 하는데 여러분은 어떤 생각을 하시는지요?
이제 다시 좀 더 살을 붙여 정리를 하자면 우리는 회개를 한다고 해도 회개의 시간은 무한정 있지 않다는 걸 복음은 말하고 싶지 않았을까 생각합니다. 이 내용을 전제로 했을 때 다시 오늘 복음 전반부에 나오는 그 내용이 선명하게 이해가 될 것입니다. 사람의 생명은 어떤 예기치 못한 사건으로 유명을 달리 할 수 있습니다. 그런 것처럼 만약 그런 사건이 일어났다면 그 사건이 있기 전에 회개를 하지 않았다면 그 사람은 그 일로 회개를 할 기회를 잃게 된 것입니다. 그럴지도 모르기 때문에 꼭 그렇게 된다고 해서가 아니라 사람의 앞일은 생각지도 못한 일이 일어나기 때문에 나중에 회개를 할 수 있다고 해서 미루면 이런 결과도 있을 수 있다는 걸 복음은 알려주고 싶은 게 아닌가 하는 묵상을 해봅니다. 감사합니다.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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