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 [사순 제3주간 목요일] | |||
---|---|---|---|---|
이전글 | 이전 글이 없습니다. | |||
다음글 | 반영억 신부님을 위해 기도 드립니다. | |||
작성자박영희
![]() ![]() |
작성일2025-03-27 | 조회수33 | 추천수2 |
반대(0)
![]() |
[사순 제3주간 목요일] 루카 11,14-23 “내 편에 서지 않는 자는 나를 반대하는 자고, 나와 함께 모아들이지 않는 자는 흩어버리는 자다.”
오늘의 제1독서인 예레미야서는 유다인들 사이에서 오랜 세월동안 꾸준히 반복되며 이어져온, 하느님께 대한 배신과 불충의 역사에 대한 요약입니다. 하느님께서 끝없이 참아주시고 수없이 용서하셨음에도 불구하고 이스라엘은 같은 잘못을 반복하였습니다. 하느님께서 예언자들을 통하여 하시는 구원의 말씀에 귀를 기울이지 않고, 이미 익숙해지고 편안해져버린 타락의 길, 멸망의 길로 나아갔던 겁니다. 자기들 앞에서서 구원으로 이끄시는 하느님을 따라갔어야 하는데, 그분 뜻을 따르는 것이 불편하고 힘들다며 자꾸만 다른 곳을 기웃거리고 하느님으로부터 뒷걸음질을 치곤 했지요. 그러다 제 발에 걸려 넘어진다고, 넘어지면 크게 다친다고 애타게 말리시는데도 그런 하느님 사랑의 손길을 뿌리치고 툭하면 우상숭배에 빠지기도 했습니다. 이에 하느님께서 눈물을 머금고 그들에게 진노를 쏟아내십니다. 그들의 배신과 불충에 대한 복수나 징벌이 아닙니다. 그들이 잘못된 길에서 돌아서서 다시 당신을 향하도록, 그렇게 당신과 함께 올바른 길을 나아가도록 이끄시기 위한 ‘사랑의 매’인 셈이지요.
하느님께서 우리에게 바라시는 것은 엄청나게 어렵거나 대단한 것이 아닙니다. 이제부터라도 당신께서 바라시는 올바른 길을 꾸준히 걷는 것입니다. 당신께서 우리를 위해 건네시는 진리의 말씀을 귀기울여 듣고 받아들이는 것입니다. 교만과 고집으로 인해 뻣뻣해진 목을 겸손과 순명으로 부드럽게 만들어, 이웃과 형제들을 사랑으로 섬기는 것입니다. 그것이 바로 예수님께서 하느님 나라의 복음을 선포하시면서 사람들 앞에서 반복하여 강조하셨던 핵심 내용이지요. 그런데 유다인들은 그런 예수님의 말씀을 받아들이려고 하지 않습니다. 그분께서 일으키시는 기적들 안에 숨어있는 구원의 표징들을 알아보려고 하지 않습니다. “저자는 마귀 우두머리 베엘제불의 힘을 빌려 마귀들을 쫓아낸다”고 예수님을 모함함으로써, 그런 예수님의 뜻과 가르침대로 따르지 않아도 되는 이유와 핑계를 만들려고 듭니다. 자기들이 한 그 말이 마귀들에게 큰 힘과 능력이 있다고 인정하는 것임을, 그렇게 되면 자기들 스스로 사탄을 숭배한다고 인정하는 꼴임을 미쳐 깨닫지 못한채로 말이지요.
이에 예수님은 당신의 상대편에 서서 하느님 뜻과 정 반대되는 길을 걷고 있는 그들에게 분명히 경고하십니다. “내 편에 서지 않는 자는 나를 반대하는 자고, 나와 함께 모아들이지 않는 자는 흩어버리는 자다.” 구원의 문제에 있어 어중간한 태도로 서 있으면 아무 것도 얻지 못합니다. 힘들고 어려워도 주님 뜻에 맞는 쪽을 선택해야 하고 일단 선택했으면 반드시 실행해야만 하지요. 그런데 많은 신자분들이 그러지 못하십니다. 절대 사탄의 편에 서서는 안된다는 것을, 반드시 주님의 편에 서야 한다는 것을 머리로는 이해하면서도, 정작 삶 속에서 실질적으로 선택을 해야 할 때에는 ‘이해타산’을 따지느라 선택하기를 주저하고 망설이는 겁니다. 그런 자기 모습이 자꾸만 양심을 찔러서 하느님의 뜻에 무관심하고 세상의 문제를 외면하려고 들지요. 그런데 바로 그것이 사탄이 바라는 일입니다. 우리가 굳이 사탄의 추종자가 되지 않더라도, 그냥 가만히 있는 것만으로 자기 목적을 충분히 달성하기 때문입니다. 그 무관심이 우리를 하느님의 사랑과 자비로부터 멀어지게 만드니 더 바랄 게 없는 것이지요. 그러므로 ‘좋은 게 좋은 거’라는 식의 ‘애매한 중립’에서 빨리 벗어나야겠습니다. 중립을 지킨다며 선한 일을 하지 않는다면 그건 악을 행하는 것과 다를 바 없습니다. 우리가 하느님의 뜻에 순명하며 따르는 그분의 참된 자녀라면 고통과 어려움을 겪는 이웃 앞에서 냉정하게 중립을 지킬 수는 없을 겁니다.
* 함 승수 신부님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