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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송영진 신부님_<알면서도 실천하지 않으면, 아는 것이 아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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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최원석 쪽지 캡슐 작성일2025-03-28 조회수25 추천수4 반대(0) 신고

<알면서도 실천하지 않으면, 아는 것이 아닙니다.>

“율법학자 한 사람이 예수님께 다가와, ‘모든 계명

가운데에서 첫째가는 계명은 무엇입니까?’ 하고

물었다. 예수님께서 대답하셨다. ‘첫째는 이것이다.

′이스라엘아, 들어라. 주 우리 하느님은 한 분이신

주님이시다. 그러므로 너는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정신을 다하고 힘을 다하여 주 너의 하느님을 사랑해야

한다.‵ 둘째는 이것이다. ′네 이웃을 너 자신처럼

사랑해야 한다.‵ 이보다 더 큰 계명은 없다.’ 그러자

율법학자가 예수님께 말하였다. ‘훌륭하십니다, 스승님.

′그분은 한 분뿐이시고 그 밖에 다른 이가 없다.‵ 하시니,

과연 옳은 말씀이십니다. 또 ′마음을 다하고 생각을 다하고

힘을 다하여 그분을 사랑하는 것‵과 ′이웃을 자기 자신처럼

사랑하는 것‵이 모든 번제물과 희생 제물보다 낫습니다.’

예수님께서는 그가 슬기롭게 대답하는 것을 보시고 그에게,

‘너는 하느님의 나라에서 멀리 있지 않다.’ 하고 이르셨다.

그 뒤에는 어느 누구도 감히 그분께

묻지 못하였다(마르 12,28ㄱㄷ-34).”

1) 하느님을 사랑하는 것과 이웃을 사랑하는 것이 모든

번제물과 희생 제물보다 낫다는 율법학자의 대답은, 사무엘

예언자가 사울 왕을 꾸짖을 때 했던 말을 인용한 것입니다.

“주님의 말씀을 듣는 것보다 번제물이나 희생 제물 바치는

것을 주님께서 더 좋아하실 것 같습니까? 진정 말씀을

듣는 것이 제사 드리는 것보다 낫고, 말씀을 명심하는 것이

숫양의 굳기름보다 낫습니다. 거역하는 것은 점치는 죄와

같고, 고집을 부리는 것은 우상을 섬기는 것과 같습니다.

임금님이 주님의 말씀을 배척하셨기에, 주님께서도 임금님을

왕위에서 배척하셨습니다(1사무 15,22-23).”

주님 말씀에 순종해야 한다는 말이 ‘사랑’으로 바뀌었지만,

율법학자의 대답과 사무엘 예언자의 말은, ‘같은 말’입니다.

순종은 무서워서 복종하는 일이 아니라

사랑으로 응답하는 일이기 때문입니다.

2) 사무엘 예언자가 사울 왕을 꾸짖었을 때, 사울 왕은,

“제가 죄를 지었습니다. 군사들이 두려워서 주님의 분부와

어르신의 말씀을 어기고 그들의 말을 들어 주었던

것입니다.” 라고 변명했습니다(1사무 15,24).

임금이 부하들을 두려워했다는 말은 이상한데,

그 말은 그냥 핑계일 뿐이고, 하느님의 말씀은 안 듣고

부하들의 말만 들어 준 것은, 사울 왕이 하느님을

사랑하지도 않고 제대로 섬기지도 않았음을 나타냅니다.

바로 그 일 때문에, 하느님께서는 사울을 버리셨고,

다윗을 임금으로 새로 뽑으셨습니다(1사무 16,1).

하느님을 사랑하지 않는 자는 하느님 백성의

지도자가 될 자격이 없습니다.

3) 예수님께서는 그 율법학자의 대답을 들으시고 그를

칭찬하셨는데, 예수님께서 칭찬하신 율법학자가

그 한 사람만 있었던 것은 아니고, 한 명 더 있습니다.

요한복음 1장에 나오는 ‘나타나엘’이 그 사람입니다.

“예수님께서는 나타나엘이 당신 쪽으로 오는 것을 보시고

그에 대하여 말씀하셨다. ‘보라, 저 사람이야말로 참으로

이스라엘 사람이다. 저 사람은 거짓이 없다.’(요한 1,47)”

예수님 말씀은, “나타나엘은 진실하고 충실한 신앙인이다.

그는 위선자가 아니다.” 라는 칭찬입니다.

예수님께서 율법학자들과 바리사이들을 ‘위선자들’이라고

꾸짖으신 일이 많은데, 이렇게 율법학자들 가운데에도

칭찬을 들은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따라서 대부분의 율법학자들이 위선자들이긴 했지만,

‘모든 율법학자들’이 다 위선자였다고 말할 수는 없습니다.

<그것과 마찬가지로, 당시의 세리들이 대부분 죄인들이긴

했지만, ‘모든 세리들’이 죄인이었다고 말할 수는 없습니다.>

4) 모든 것을 다하여 한 분이신 주 하느님을 사랑해야

한다는 말씀은, 신명기 6장 4절-5절을 인용한 것입니다.

이웃을 자신처럼 사랑해야 한다는 말씀은,

레위기 19장 18절을 인용한 것입니다.

이처럼 예수님과 율법학자의 대화는 서로 자기 의견을 말한

대화가 아니라, 성경 말씀을 인용하면서 나눈 대화입니다.

5) 그런데 사무엘 예언자가 했던 말을 다른 사람들은

모르고 있었고 그 율법학자만 알고 있었을까?

아닙니다. 유대인들은 모두 알고 있었습니다.

사실 율법학자들만 구약성경을 읽고 있었던 것이 아니라,

유대인들이라면, 특히 성인 남자라면 모두 다 읽고 있었고,

성경의 가르침들을 알고 있었습니다.

알고 있었지만, 잊어버렸거나, 덜 중요하게 생각하면서

무시하고 있었거나, 실천하지 않고 있었습니다.

‘아는 것’이 아는 것으로만 그치고 그것을 ‘삶으로’

실천하지 않으면 ‘안다는 것’은 아무 소용이 없습니다.

알면서도 ‘실천’하지 않으면, ‘아는 것’이 아닙니다.

그렇다면, “너는 하느님의 나라에서 멀리 있지 않다.” 라는

말씀은, 분명히 칭찬이긴 한데, “알고 있는 것을 잘

실천한다면”이라는 조건이 붙은 칭찬으로 생각해야 합니다.

<루카복음을 보면, 칭찬이 아니라 “그렇게 하여라.

그러면 네가 살 것이다.”로 기록되어 있습니다(루카 10,28).

이 말씀을 반대로 표현하면, “실천하지 않으면,

너는 영원한 생명을 받지 못한다.”입니다.>

성경은 지식을 쌓기 위한 책이 아니라, 읽고 묵상하고

삶으로 실천해서 구원과 생명을 얻는 책입니다.

사랑이 무엇인지 표현하는 것은 중요하지 않고,

실제로 사랑을 실천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하느님을 사랑하는 것과 이웃을 사랑하는 것이

가장 큰 계명이고, 모든 계명들의 근본정신이라는 것을

아는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실제로 사랑을 실천하면서 사는 것이 중요합니다.

송영진 모세 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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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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