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 큰아들에 대한 새로운 해석을 할 필요가 있습니다. | |||
---|---|---|---|---|
이전글 | ††† 097. 하느님 자비심의 5단기도를 바치자 암흑의 영들은 도망갔다. [하느님 자비심 ... |1| | |||
다음글 | 빈첸시오 신부의 그림묵상 - 백 일흔 여덟 |1| | |||
작성자강만연
![]() ![]() |
작성일2025-03-29 | 조회수35 | 추천수1 |
반대(0)
![]() |
오늘 주일복음은 탕자의 비유입니다. 저는 오늘 복음에 대해 전통적으로 교회가 해석하는 해석에서 좀 탈피해서 묵상해봤습니다. 오늘 낮에 주일복음이 탕자 이야기라 무엇에 중점을 두고 묵상할까 주제를 고민하다가 큰아들에 중점을 두고 묵상하자고 마음먹고 묵상했습니다. 여기서 좀 더 나아가 전통적으로 보면 교회는 큰아들에 대해 부정적으로만 해석했습니다. 지금까지 강론이나 다른 영성서적에 탕자의 비유를 해석한 어떤 자료에도 큰아들에 대해 좋은 시각으로 해석한 걸 한 번도 보질 못했습니다. 저는 이건 좀 너무한 게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발상의 전환이 필요합니다. 우리는 복음이나 성경 자료 해석을 할 때 고정적으로 해석한 틀 안에서만 해석을 하려고 합니다. 저는 교회의 해석에 반기를 들자고 하는 건 아닙니다. 만약 이런 방식으로 해석을 하게 된다면 우리는 복음을 바라보고 해석하는 시야가 제한적일 수밖에 없습니다. 이건 교육학 학문에서 바라보면 획일적인 사고만 주입하는 결과를 낳을 수 있고 창의적인 생각을 원천적으로 막는 결과밖에 되지 않습니다. 쉬운 비유 하나 들겠습니다.
어떤 죄수가 형사법정에 있습니다. 누가 봐도 형법상 죄를 범한 게 명백합니다. 우리는 단순한 사실관계로만 가지고 판결을 하지 않습니다. 또한 최종 상급심에서 판결이 선고될 때까지 피고인의 이익으로라는 법익의 관점에서도 무죄추정의 원칙의 법리가 적용됩니다. 왜 이런 제도가 있겠습니까? 한 명의 억울한 피고인을 만들지 않기 위한 법적인 장치입니다. 그래서 검사와 변호사 간 치열한 법리 공방을 통해 모든 소송자료를 참고해 법관이 공정하게 판결하는 게 일반적인 소송 원리입니다. 만약 큰아들이 우리가 해석하는 방식으로 자신을 해석하니 좀 억울하다는 생각에 소송을 제기했다는 가정 하에 큰아들의 입장에서 한번 들어보는 것도 좋을 듯합니다.
만약 교회가 전통적인 해석으로만 해석을 한다면 이런 오류도 발생할 수 있습니다. 극단적인 해석입니다. 작은 아들에 대해 호의적인 시각으로만 해석하면 그럼 오히려 계명과 율법을 지키지 않아도 큰 문제가 되지 않는다는 인식을 가지게 할 우려가 있는 것입니다. 큰아들처럼 성실히 사는 게 오히려 바보 같은 삶이 되는 것처럼 비춰질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렇치 않습니까? 저는 절대 큰아들을 옹호하는 건 아닙니다. 만약 이걸 액면 그대로 교회가 해석하는 전통적인 면을 고수한다면 어쩌면 성실하고 신실하게 하느님을 섬기는 사람도 바보 아닌 바보가 되는 것입니다. 하느님의 자비를 무시하는 것이 아닙니다. 큰아들에 대한 교회의 시각도 인정을 하지만 너무 획일적으로 해석하는 건 좀 아니지 않나 하는 생각입니다.
허랑방탕하게 살다가 하느님은 대자대비하신 분이니 회개한 죄인 한 명이 회개하지 않은 아흔아홉 의인보다 더 낫다고 해서 그렇게만 본다면 누가 하느님을 신실하게 따르려고 하겠는가 하는 것입니다. 이런 게 없어도 하느님을 따르는 사람은 많습니다. 세상에서도 법이 있어서 준수하는 사람도 있지만 법이 없어도 상식과 도덕이 충만한 사람은 자신의 양심에 비추어 사회상규라는 틀 안에서 세상법을 지키고 사는 사람도 상당히 많이 있습니다. 그런 면에서 이제는 이런 면을 절충해서 복음을 해석해 균형적인 시각으로 복음을 바라봐야 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매날 전통적인 해석만 고수해서 해석하는 걸 하느님께서 이 현상을 바라보신다면 과연 어떤 생각을 하실 것 같은가요? 하느님께서는 사람의 생각을 공장에서 물건 만들어 생산하듯이 우리의 사고방식을 획일적으로 하게끔 창조하시지 않았다는 걸 생각해본다면 이젠 우리는 오늘 복음에 나오는 큰아들을 바라보는 시각을 큰아들 입장에서 어느 정도는 큰아들을 두둔하는 면도 있어야 되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