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 [사순 제4주간 월요일]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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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은 이들이 하느님 아들의 목소리를 듣고 또 그렇게 들은 이들이 살아날 때가 온다. 지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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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박영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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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2025-03-31 | 조회수50 | 추천수4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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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순 제4주간 월요일] 요한 4,43-54 "그 사람은 예수님께서 자기에게 이르신 말씀을 믿고 떠나갔다."
오늘 복음은 주님께 대한 굳은 믿음을 통해서만 얻을 수 있는 참된 희망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병들어 죽어가는 아들 때문에 시름과 걱정에 빠져있던 왕실 관리가 예수님을 믿고 따름으로써 참된 희망을 발견한 것이지요. 그는 처음에 예수님을 찾아가 자기 아들이 죽게 되었으니 카파르나움에 가시어 아들을 고쳐주십사고 청했습니다. 물론 세속의 부귀영화를 쫓는 헤로데 임금 밑에서 일하는 그가 예수님을 찾아가 도움을 청했다는 것 자체가 그가 예수님을 믿고 있음을 드러내는 행동이었습니다. 예수님께서 자기 아들을 치유해주실 수 있다고 믿지 않았다면 애초에 그분을 찾아가지도 않았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그의 믿음은 아직 불완전한 것이었습니다. 자기도 모르게 믿음에 조건을 달고 제한을 두었던 것이지요. 조건은 예수님께서 자기 집까지 함께 가시어 병든 아들을 직접 만나셔야 한다는 거였고, 제한은 아들이 죽기 전에만 치유가 가능하다는 거였습니다. 믿는 대상이 자기 눈 앞에 있어야만 겨우 믿는 수준이 그의 믿음이 지닌 한계였던 겁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그가 청하는 그대로 들어주지 않으십니다. 카나에서 카파르나움까지는 하루 종일 쉬지 않고 걸어도 이틀은 가야 되는 먼 길인데, 그의 집까지 갔다가는 시간이 많이 지체될테고 그만큼 아들의 병도 위중해질 것을 아셨기에 그 상황을 미리 헤아리고 배려하신 것이지요. 그리고 그분의 배려는 그 아버지를 위한 것이기도 했습니다. 표징과 이적을 눈으로 보아야만 인정하는 수준에 머물러 있는 그의 믿음이 결과를 보지 않고도 믿을 수 있는 참된 신앙으로 고양되기를, 그리고 그 신앙을 통해 구원받기를 바라셨던 겁니다. 그래서 그를 집으로 돌려보내며 말씀하십니다. “가거라. 네 아들은 살아날 것이다.”(요한 4,50)
그는 불안하고 두려웠지만 주님의 말씀대로 따릅니다. 집으로 가는 길은 말 그대로 좌불안석이었겠지요. 아들이 죽거나 잘못되면 어쩌나 하는 걱정과 불안감이 계속 그의 마음을 엄습했을 것입니다. 그런 인고의 시간을 보낸 후 집 가까이 이르렀을 때 그의 종들이 와서 아들의 병이 나았음을 알려주었고, 그는 예수님께서 ‘가거라’하고 말씀하신 바로 그 때에 아들의 병이 나았음을 확인하고는 그분이야말로 진정한 그리스도이시자 주님이심을 믿게 됩니다. 결국 예수님은 이 치유 기적을 통해 몸이 병든 아들과 마음이 병든 아버지 두 사람의 영혼을 구원하신 셈이지요. 비록 그 아버지의 믿음이 아직 불완전하고 약한, 겨자씨만도 못한 수준이었지만 그런 보잘 것 없는 믿음도 소중히 여기시며 응답해주시는 주님의 큰 사랑과 자비에 감사하게 되는 장면입니다.
만약 그 왕실관리가 계속해서 자기가 원하는 방법대로 해주시라고 요구하며 버텼다면 기적은 일어나지 않았을 것입니다. 혹은 기적이 일어났더라도 그가 그 안에 숨은 의미를 깨닫지 못했을 겁니다. 기적은 내가 원하는대로 되지 않는다고 해서 실망하거나 의심하지 않고 주님께서 원하시는 때에 원하시는 방법으로 나를 가장 좋은 길로 이끄심을 믿어야만, 그리고 믿는대로 따라야만 내 삶 속에서 온전히 실현됩니다. 그러니 “아무것도 걱정하지 마십시오. 어떠한 경우에든 감사하는 마음으로 기도하고 간구하며 여러분의 소원을 하느님께 아뢰십시오. 그러면 사람의 이해를 뛰어넘는 하느님의 평화가 여러분의 마음과 생각을 지켜줄 것입니다.”(필리피4,6-7).
* 함 승수 신부님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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