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 생활묵상 : 신앙의 눈으로 본 대통령 파면 선고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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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강만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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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2025-04-04 | 조회수45 | 추천수2 |
반대(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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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대통령 파면 선고 결정문을 보고 또 인터넷에서 출력해 꼼꼼하게 읽어봤습니다. 평범한 국민의 한 사람으로서 결과만 알면 됐지 하고 생각할 수도 있지만 저는 다른 목적 때문에 판결문을 여러 번 읽었습니다. 그 목적은 이 판결문을 통해서 신앙에 접목해 묵상할 게 있는지를 파악하고 싶었기 때문입니다. 저는 약 11시 7분쯤부터 유튜브로 봤습니다. 그러니까 판결문 낭독 시간을 들은 건 15분 정도됩니다. 저는 5분 정도 듣고 바로 인용이 되겠다는 확신이 왔습니다. 헌법학자는 아니지만 과거에 오랜 시간 법을 공부한 적이 있었기에 이미 판결문 자체에 인용할 수밖에 없는 논리로 전개된 걸 보고 박근혜 대통령 판결문 때와는 확연히 다르다는 걸 알았습니다. 오늘 파면 선고 결정을 보며 묵상한 게 있습니다. 바로 복음의 한 장면이 떠올랐습니다. 최후의 심판과 또 한 곳이 있었습니다.
오늘 판결문 전체를 신앙의 눈으로 분석해봤습니다. 먼저 이걸 분석하기에 앞서 저는 재판관들이 소추 사유에 대한 쟁점에 대한 시각을 어떤 방식으로 전개하려고 하는지 그걸 보는 데 주안점을 두었습니다. 이번 판결문에는 일반 보통 판결문에서 사용하는 사법부 특유의 서술 방식의 패턴도 있긴 했지만 법리해석을 떠나 외적인 관점, 단순히 언어적인 논리로 접근해봤을 때 특이하게 자주 등장하는 논리전개 방식이 있는 것을 발견했습니다.
유튜브로 들을 때 이미 들으면서 그걸 파악하긴 했지만 들을 때랑 다시 인쇄물을 통해 보면서 앞뒤 문장을 서로 관찰하며 사유할 수가 있기에 발견할 수 있었습니다. 단 한 마디로 표현하면 이중부정의 논리구조를 많이 사용하지 않았다는 건 사안과 쟁점이 구체적이기 때문에 그렇게 전개한 것입니다. 모든 법이 마찬가지입니다만 쟁점이 많으면 쟁점을 반박하면서도 인정을 하지 않을 수밖에 없다는 논리 구조로 판결문을 작성하는 경우가 많은데 이번 헌제 결정문은 다른 판결문과는 이런 점에서는 많이 달랐습니다. 특히나 이번 판결은 그 자체가 헌법에 기반을 두었기 때문이라는 점을 인정은 한다고 하더라도 방금 제가 '하더라도'라는 양보구문으로 표현했듯이 오늘 판결문에도 양보구문을 사용한 게 좀 나옵니다. 왜 양보구문을 사용했는가를 치밀하게 법리적인 관점에서 분석해보면 다음과 같이 추론할 수 있습니다.
이건 바로 피청구인의 입장에서 변호한 주장과 사실이 사실관계에 부합하고 인정을 어느 정도 받아들인다고 해도 그 사실을 실현하는 게 국민을 보호해야 하는 헌법 수호권자의 입장에서 한 개인의 통치수단으로 얻게 되는 국익 내지는 법익을 비교했을 때 다시 말해 그로인해 또한 국민 전체가 입게 되는 이익과 손실을 서로 이익형량을 해봤을 때 그래도 그 이익은 국민이 잃게 되는 이익보다 더 클 수가 없다는 대의명분을 분명하게 적시한 것입니다.
박 대통령 판결문에서도 이런 원칙이 있긴 했지만 그때 판결문에는 그런 논리가 최종 파면 선고 결정 주문에 근접했을 때 언급을 한 후 바로 최종 파면 선고로 이어진 것입니다. 이런 측면에서 이젠 이 사안을 우리 신앙의 눈으로 한번 보겠습니다.
만약 하늘나라에서도 파면이라는 규칙이 있다고 본다면 어떨까요? 광의적으로 해석하면 파면 결정이나 선고가 있습니다. '불법을 행하는 자들이라고 하면서 물러나라'고 하는 게 바로 이 장면과 같다고 보시면 될 것입니다. 이때 성경은 '불법'이라고 나오지만 원래 원문에는 '무법'으로 나옵니다. 이때 무법은 바로 법이 없다는 뜻이지만 이건 액면적인 뜻이고 실제 뜻은 쉽게 표현해 법을 지키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좀 더 세밀하게 들어가면 단순히 우리가 말하는 계명을 지키지 않았다는 그 의미보다는 같은 의미이지만 미세한 뉘앙스는 그 말이 그 말이네 하실지 모르지만 하느님께서 설정해 주신 대원칙과 같은 사실이 있는데 그 원칙 바로 '계약을 어긴 것'입니다. 이때 이 계약은 바로 위임계약이고 신뢰를 저버리는 것입니다.
우리는 세례를 통해 새로운 신분으로 태어났고 그 신분 설정 계약으로 하느님 자녀가 된 것입니다. 하느님의 자녀로 삼아주셨고 그렇게 해서 영원한 영벌을 받을 죄인이었지만 그로 인해 우리는 그 영벌에서 벗어날 수 있었고 다시는 그 영벌 속으로는 가지 않기 위해 하느님의 자녀로서 그에 합당한 생활을 하며 잘 살겠다고 묵시적으로 하느님과 합의 계약을 한 것과 같은 위치에 있었던 것입니다. 이건 마치 세상에서 대통령이 대통렁에게만 있는 사면권을 이용해 사면을 시켜주는 것과 같은 것입니다. 이 계약은 하느님께서 그냥해 주신 것 같지만 그렇지 않습니다. 하느님께서는 저희를 신뢰하신 것입니다.
마치 죄를 용서하시면서 예수님께서 다시는 죄를 짓지 말라고 말씀하신 것처럼 말입니다. 그렇게 신뢰를 하셨는데 그 신뢰를 깨고 어기게 되면 바로 불법을 저지른 자가 되어 이를 갈며 쫓겨나가는 게 오늘 윤 대통령의 마치 파면과 같은 복음의 모습이 실제 일어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사실 이때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불법을 저지른 사람'은 모든 사람이라고 말할 수 있을지는 모르지만 정확하게 말하면 '교회의 지도자'입니다. 복음에서 그 사람들이 하는 말을 잘 보시면 바보가 아닌 이상 교회의 지도자임을 알 수 있습니다. 사실 오늘 우리나라에 있었던 이런 일은 국가적으로는 비극적인 일이기는 하지만 우리는 이런 역사를 통해서 역사적인 교훈 하나를 배워야 될 것입니다.
비록 세상 법정에서 일어난 일이지만 바로 우리가 마지막 '하느님 심판대'라는 하늘나라 법정에 서게 될 죄인이라는 사실을 잊지 않고 우리도 하느님을 잘못 믿고 하느님 말씀대로 잘 살지 못 하면 오늘 윤 대통령처럼 하느님의 자녀라는 신분이 파양될지도 모른다는 것입니다. 설마 설마 하면 그렇게 될 수 있습니다. 윤 대통령도 파면이 될 거라고 예상했다면 지금 이 지점까지 왔겠습니까? 설마 설마 하다가 바로 이렇게 된 것입니다. 세상 말이지만 한번 새겨볼 필요가 있는 말이 있습니다. '설마가 사람 잡는다'는 말입니다. 바로 그 말처럼 만약 그게 하늘나라에서 현실이 된다면 그 사람은 복음에서 말하는 것처럼 이를 갈며 후회를 할 것입니다.
지금 우리는 사순을 보내고 있습니다. 오늘 대통령 탄핵 사건을 통해 우리와 하느님과의 마지막 모습이 이런 모습은 되지 말아야 하지 않겠습니까? 감사합니다. 폰 카톡에서 작성해도 근 두 시간 소요됐습니다. 이제 굿뉴스로 옮기면 끝납니다. 감사합니다.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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