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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송영진 신부님_<무죄선고가 아니라 집행유예 선고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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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최원석 쪽지 캡슐 작성일2025-04-06 조회수44 추천수3 반대(0) 신고

 

“예수님께서는 올리브산으로 가셨다.

이른 아침에 예수님께서 다시 성전에 가시니 온 백성이

그분께 모여들었다. 그래서 그분께서는 앉으셔서 그들을

가르치셨다. 그때에 율법학자들과 바리사이들이 간음하다

붙잡힌 여자를 끌고 와서 가운데에 세워 놓고, 예수님께

말하였다. ‘스승님, 이 여자가 간음하다 현장에서

붙잡혔습니다. 모세는 율법에서 이런 여자에게 돌을

던져 죽이라고 우리에게 명령하였습니다. 스승님 생각은

어떠하십니까?’ 그들은 예수님을 시험하여

고소할 구실을 만들려고 그렇게 말한 것이다.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몸을 굽히시어 손가락으로 땅에 무엇인가

쓰기 시작하셨다. 그들이 줄곧 물어 대자

예수님께서 몸을 일으키시어 그들에게 이르셨다.

‘너희 가운데 죄 없는 자가 먼저 저 여자에게 돌을 던져라.’

그리고 다시 몸을 굽히시어 땅에 무엇인가 쓰셨다. 그들은

이 말씀을 듣고 나이 많은 자들부터 시작하여 하나씩

하나씩 떠나갔다. 마침내 예수님만 남으시고 여자는

가운데에 그대로 서 있었다. 예수님께서 몸을 일으키시고

그 여자에게, ‘여인아, 그자들이 어디 있느냐?

너를 단죄한 자가 아무도 없느냐?’ 하고 물으셨다.

그 여자가 ‘선생님, 아무도 없습니다.’ 하고 대답하자,

예수님께서 이르셨다. ‘나도 너를 단죄하지 않는다. 가거라.

그리고 이제부터 다시는 죄짓지 마라.’(요한 8,1-11)”

1) 여기서 “너희 가운데 죄 없는 자가 먼저 저 여자에게

돌을 던져라.”는, 사실상 “돌을 던지지 마라.”입니다.

하느님 앞에서 “나는 죄가 없다.”고 말할 수 있는 사람은

없으니, 다른 사람에게 돌을 던질 수 있는 사람도 없습니다.

그리고 이 말씀은, “처벌만 생각하지 말고, 회개할 기회를

먼저 주어라.” 라는 뜻이기도 합니다.

회개할 기회를 주었는데도 끝끝내 회개하지 않으면?

그러면 그 죄인을 심판하고 처벌하는 일은

하느님께서 하실 것입니다.

인간에게는 남을 심판하고 처벌할 권한이 아예 없습니다.

<성모님이라면, 죄 없으신 분이니까 돌을 던질 자격이

있다고 말할 수 있지만, 성모님이 과연 돌을 던지실까?

아닙니다. 성모님은 죄인의 회개를 위해서

눈물로 기도하시는 분입니다.

우리는 성모님의 눈물을 묵상하면서, 함께 회개하려고

노력해야 하고, 함께 구원받으려고 노력해야 합니다.>

“너희 가운데 죄 없는 자가 먼저 저 여자에게 돌을 던져라.”

라는 말씀은, “남을 단죄하기 전에 먼저 너희 자신의 죄를

깨닫고 회개하여라.” 라는 뜻이기도 합니다.

<이 이야기는 ‘남의 일’이 아니라 ‘나의 일’입니다.>

“너는 어찌하여 형제의 눈 속에 있는 티는 보면서, 네 눈

속에 있는 들보는 깨닫지 못하느냐? 네 눈 속에는 들보가

있는데, 어떻게 형제에게 ‘가만, 네 눈에서 티를 빼내

주겠다.’ 하고 말할 수 있느냐? 위선자야, 먼저 네 눈에서

들보를 빼내어라. 그래야 네가 뚜렷이 보고

형제의 눈에서 티를 빼낼 수 있을 것이다(마태 7,3-5).”

<예수님께서 손가락으로 땅에 무엇인가 쓰신 일을, 여자를

고발한 자들의 죄를 쓰신 일로 해석하기도 합니다.

예레미야서에, “이스라엘의 희망이신 주님, 당신을 저버린

자는 누구나 수치를 당하고, 당신에게서 돌아선 자는

땅에 새겨지리이다(예레 17,13).” 라는 말이 있습니다.>

2) “나도 너를 단죄하지 않는다. 가거라. 그리고 이제부터

다시는 죄짓지 마라.” 라는 말씀은,

‘무죄선고’가 아니라, ‘집행유예 선고’입니다.

죄를 지은 것은 분명한 사실이지만, 처벌하지 않고

회개할 기회를 먼저 주겠다는 뜻입니다.

만일에 그 여자가 “다시는 죄짓지 마라.” 라는 말씀을

어기고 다시 죄를 짓는다면, ‘가중처벌’을 받게 될 것입니다.

처벌하지 않는 것도 ‘용서’이긴 한데, 무죄선고가 아니라

집행유예 선고라는 점에서, 우리가 일반적으로 생각하는

그 용서는 아니고, 조건부로 주어진 용서,

또는 ‘용서의 시작’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주신 ‘용서의 은총’을 받아서

완전히 자기 것으로 만드는 방법은 ‘회개’입니다.

회개가 완성될 때, 그때 비로소 용서의 은총도 완성됩니다.

만일에 회개하지 않으면, 그것은 이미 주신 은총을

안 받겠다고 거절하는 것과 같습니다.

<‘용서의 은총의 완성’은, 죄가 완전히 지워지는 일입니다.

그렇게 죄가 지워지면, 더 이상 죄인이 아닙니다.

하느님 나라에 들어간 이들은, 태어나서 죽을 때까지

죄를 하나도 안 지은 사람들이 아니라, 회개를 완성함으로써

용서의 은총이 완성된 이들, 즉 죄 자체가 완전히 지워져서

의인으로 변화된 사람들입니다.>

3) 6절의 “그들은 예수님을 시험하여 고소할 구실을

만들려고” 라는 말은, 예수님을 함정에 빠뜨리려는 의도로

여자를 끌고 왔다는 뜻이고, 여자를 처벌하는 일보다

예수님을 고발하는 일이 그들에게는 더 중요한

일이었다는 뜻입니다.

만일에 예수님께서 율법대로 돌을 던지라고 말씀하셨다면,

로마법을 위반했다고 고발했을 것이고, 또 그동안 자비와

사랑을 강조한 설교와 다른 말을 했다고 선전했을 것입니다.

<로마법에서는 간음죄는 사형죄가 아닙니다.

또 로마제국은 유대인들에게 사형 권한을 주지 않았습니다.>

반대로 예수님께서 돌을 던지지 말라고 말씀하셨다면,

유대교 율법을 어겼다고 유대교 당국에 고발했을 것입니다.

<죄 없는 자가 먼저 돌을 던지라는 말씀은, 인간 세상의

악과 불의와 부정부패를 못 본 척 하라는 뜻은 아닙니다.

우리는 악에 맞서서 싸워야 하고,

악을 물리쳐서 없애려고 노력해야 합니다.

‘자비’의 실천은 ‘정의’의 실현과 함께 이루어져야 합니다.>

송영진 모세 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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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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