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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금요일 복음묵상 : 언행일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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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강만연 쪽지 캡슐 작성일2025-04-11 조회수31 추천수0 반대(0) 신고

 

 

사람이 하기 어렵고 실천하기도 어려운 것 중 하나가 자기의 말에 책임을 지는 것입니다. 왜 이게 어렵냐고 역으로 질문을 해보면 답은 무엇일까요? 입은 그냥 혀를 잘 움직여 입술로 내어 뱉기만 하면 돼서 그만큼 쉽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대개 보면 남과의 약속을 했다면 그건 지킬 수도 있고 못 지킬 때도 있습니다. 누구나 가능하면 이건 지키려고 하는 방향으로 노력을 할 겁니다. 왜 그럴까요? 그건 남을 의식하기 때문입니다. 여기서 한번 생각해볼 게 있습니다. 물론 이런 노력은 좋은 일입니다. 근데 우리는 남과의 약속이라든지 이런 것에는 그나마 신경을 써서 자신의 말에 책임을 지려는 노력을 하는데 왜 정작 자신과 한 약속은 이만큼 잘 지키려고 하지 않을까요? 

 

 

우리는 약속이라고 해서 꼭 일방과 일방이 서로 어떤 약정을 맺었다면 그 약정을 이행하는 걸 일반적으로 약속이라고 합니다. 약속이라는 말 속에는 쌍방이라는 두 변수가 자리잡고 있는 것입니다. 모든 약속이라는 게 쌍방으로만 이루어지는 게 아닌 경우도 있습니다. 자기와 자기, 두 당사자가 쌍방이 될 수 있습니다. 흔히들 자기와의 약속입니다. 우리는 이런 표현도 하지 않습니까? '자기와의 싸움' 재미있게 뜯어보면 어떻게 싸울 사람이 없어 자기와 싸우냐고 말할 사람이 있겠는지요? 우리는 실제 물리적으로는 하나의 개체이지만 이 개체는 또 '또 다른 나'라는 이 '나'를 갖고 있습니다. 이건 심리학과 종교에서는 '내면의 나'라고 하는 표현을 사용하기도 합니다. 왜 이런 철학적인 표현을 언급하느냐 하면요, 우리는 이런 나에게 한 말이 있다면 그 말에 스스로가 책임을 지는 사람도 있고 안 되면 "그냥 안 지킬 수도 있지" 하고 넘어가는 경우도 많이 있습니다. 바로 그 이유는 그런 약속은 설령 지키지 않는다고 해도 그건 자신만 알지 그 어떤 누구도 모를 거란 생각을 하는 경우가 많이 있습니다. 

 

그럼 우리는 신앙을 가지고 있으니 이제 신앙 안에서 이 문제를 한번 살펴보겠습니다. 방금 말씀드린 걸 신앙 안에서 생각해보면 바로 이런 사실이 우린 하느님을 의식하는 습관에 잘 노출되지 않다는 하나의 방증이 될 수 있습니다. 갑자기 하느님 하니 의아해하실 수도 있을 겁니다. 만약 방금 이 사례에서 이런 사람이 항상은 아니지만 그래도 가능하면 매사에 자기의 행동이나 자신이 평소 하는 말 이런 행동 따위를 하느님께서 우리 눈에는 보이지 않지만 이런 모습을 은연중에도 지켜보시고 계시다는 걸 의식하는 사람이라면 과연 그런 사람은 어떤 행동 유형을 가지고 있을까요? 

 

그 사람은 항상은 아니지만 그래도 자신은 부족하긴 해도 하느님의 자녀라면 하느님의 자녀답게 최소한 그 어떤 곳에서도 하느님이 지금 현재의 자신을 보고 계신다고 생각하면 서두에 제가 말씀드린 것처럼 우리가 남을 의식해 그나마 자신이 한 말이나 행동에 대해 책임을 지려고 하는 것처럼 그렇게 하는 그 원인 제공이 바로 '남의 눈'을 의식하는 것 때문에 그렇게라도 하려고 한다고 했을 때, 그렇다면 우리는 왜 이처럼 하느님을 의식하려고 하지 않는가 하는 점에 대해 깊게 생각해 볼 필요가 있습니다. 

 

물론 이게 말처럼 쉽지는 않습니다. 하지만 이것도 어렵긴 하지만 이렇게 해보려고 하는 습관을 들여보겠다고 하면 하지 않는 것보다는 좀 더 나은 방향으로 나아질 수 있다는 사실은 분명할 겁니다. 만약 이게 이런 방식으로 되기만 한다면 굳이 우리가 삶속에서 어떤 특정 시기나 절기처럼 연례행사하듯이 하는 '회개와 성찰'을 따로 굳이 형식에 매여 하지 않아도 되지 않겠는가 하는 것입니다. 오늘 복음으로 이제 돌아가 이와 같은 일련의 일을 가지고 예수님의 말씀을 한번 묵상해보겠습니다. 

 

오늘 복음 37절 말씀을 한번 잘 보셨으면 합니다. "내가 내 아버지의 일들을 하고 있지 않다면 나를 믿지 않아도 좋다."고 하셨습니다. 이 말씀은 어떤 의도를 갖고 말씀하셨을까요? 앞에서 예수님께서 하신 다른 말씀도 다 포함하는 공통의 사실이 있습니다. 바로 예수님은 "정, 내 말이 믿어지지 않고 신뢰가 너희 머리로는 용납이 되지 않는다는 것도 내가 백번 양보해서 인정도 해 줄 수 있겠지만, 그보다도 어찌 내가 하는 일들을 보게 된다면 어떻게 그런 말과 행동을 취할 수 있는지 도무지 이해가 가지 않는다"고 마치 말씀하시는 것 같습니다. 달리 말하면 말은 누구나 쉽게 내뱉어서 하기는 쉽다고는 하지만 그 말을 행동으로 보여주는 건 쉽지 않기 때문에 "너희는 그런 나의 모습을 보고도 과연 내가 하느님을 모욕했다고 어찌 말할 수 있단 말인가?" 말씀하시는 것 같습니다.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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