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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주님 수난 성지주일 다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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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글 매일미사/2025년 4월 15일 화요일 [(자) 성주간 화요일]  
작성자박영희 쪽지 캡슐 작성일2025-04-13 조회수65 추천수3 반대(0) 신고

[주님 수난 성지주일 다해] 루카 22,14-23,56 "너는 오늘 나와 함께 낙원에 있을 것이다.”

 

 

 

 

오늘은 예수님께서 인류 구원이라는 당신 사명을 완수하시기 위해 예루살렘에 입성하신 사건을 기념하는 ‘성지’주일입니다. 동시에 우리를 위해 기꺼이 ‘고통의 잔’을 받아들이시고 죽으신 주님의 사랑과 희생을 기억하는 ‘수난’주일이기도 합니다. 그렇기에 오늘의 전례독서에서는 주님을 대하는 사람들의 태도가 급격하게 변하는 모습을 볼 수 있습니다. “호산나”라고 환호하며 이스라엘의 임금으로 오시는 예수님을 환영하고 뒤따르던 축하 행렬은 자기들 기대를 저버린 ‘무능한 그리스도’에 대한 비난과 배척의 십자가 행렬로 바뀝니다. 양손 높이 들고 흔들던 영광과 축복의 팔마가지는 예수님의 등을 무자비하게 찢어발기는 모욕과 고통의 채찍으로 바뀝니다. 예수님을 위해 자신의 하나뿐인 겉옷마저 벗어 기꺼이 내놓던 사람들이 이제는 그분의 하나 남은 속옷까지 벗겨가고, 결국엔 자기들의 ‘왕’으로 모셔들인 예수님께 ‘죄인’이라는 낙인을 찍어 강도들과 함께 십자가에 매달아 죽이기에 이릅니다. 사람이 어떻게 그럴까 싶지만 바로 그런 게 사람입니다. 화장실 들어갈 때와 나올 때가 판이하게 다르고, 욕망의 바람이 어느 쪽으로 부는가에 따라 갈대처럼 이리저리 심하게 흔들리지요. 오늘날 신앙생활 하는 우리도 마찬가지입니다. 제 기분과 상황에 따라 주님께 대한 환호와 찬미, 원망과 배척 사이를 하루에도 수십 번씩 왔다갔다 하는 겁니다.

 

하지만 우리를 대하시는 주님의 모습은 언제나 한결 같습니다. 고통과 시련, 죽음에 대한 두려움을 마주한 상황에서도 흔들림 없이 자비와 사랑의 눈으로 우리를 바라보시는 것이지요. 그분은 고통과 시련을 담담히 받아들이시면서도 무력하시지 않았고, 당신을 향한 비난과 배척에도 주눅들지 않고 당당하셨습니다. 그럴 수 있는 힘은 하느님 아버지와 우리를 향한 지극하고 완전한 사랑에서 우러나왔지요. 그런 예수님의 사랑을 극적으로 확인할 수 있는 두 장면이 있습니다. 첫번째는 예수님께서 체포당하시고 심문 당하시는 장면입니다. 스승이신 예수님께서 사람들로부터 모욕과 폭행을 당하시고 있는데도 그분의 수제자라는 베드로는 제 한 목숨 살리겠다고 그분과의 관계를 부정하기에 바빴습니다. 결국 예수님이 예고하셨던대로 그분과의 관계를 세번이나 부정하고 난 후, 베드로는 자기를 바라보시는 예수님과 정면으로 눈이 마주치지요. 그분의 눈빛에는 당신을 배반한 제자에 대한 비난과 원망이 아니라, 그럴 수 밖에 없었던 베드로의 부족함과 약함을 헤아리시는 용서와 자비가 담겨 있었습니다. 또한 언젠가 당신과 같은 길을 걷게 될 제자에 대한 안쓰러움이 짙게 배어 있었습니다. 그것을 뼈저리게 느낀 베드로는 깊은 슬픔 속에서 통회의 눈물을 흘리며 회개했지요. 두번째 장면은 당신을 십자가에 못 박은 이들을 위해 기도하시는 부분입니다. 극심한 고통 중에도 인간을 향한 예수님의 사랑은 식을 줄을 모릅니다. 죄 없는 분을 십자가에 못박은 것으로도 모자라 조롱하고 모욕까지 하는 그들을 용서해달라고, 그들은 자기들이 지금 하는 일이 무슨 의미인지조차 모르는 철부지들일 뿐이니 탓하려면 차라리 당신을 탓하시라고 아버지께 간절히 기도하시지요. 그런 주님의 가슴 절절한 사랑을 뼈저리게 느낀 이는 베드로처럼 통회의 눈물을 흘리며 회개할 것입니다. 그러나 그런 주님의 사랑을 나몰라라 하는 이는 잘못된 길을 고집스럽게 걸으며 멸망을 향해 나아갈 겁니다.

 

오늘 복음을 묵상하며 나는 주님의 수난기에 등장하는 여러 등장인물들 중 누구의 모습으로 살고 있는지를 돌아봅니다. 무엇이 하느님 뜻에 맞는 옳은 일인지는 생각하지 않고 사람들 눈치를 보며 분위기에 휩쓸려 주님을 십자가에 못 박으라고 외치는 군중의 모습인지, 주님께서 나를 통해 이루고자 하시는 뜻은 생각하지 않고 그분을 통해 내 뜻을 이루기 위해 주님을 팔아넘긴 유다의 모습인지 돌아봅니다. 자기 혼자 살기 위해 체포당하시는 주님을 내버려두고 도망쳤던 제자들처럼 내 안위와 이익을 지키기 위해 작고 약한 이의 모습으로 오시는 주님을 모른 척 하고 있지는 않은지, 자신도 체포당하고 죽임당할까 두려워 세 번이나 주님을 모른 척 했던 베드로처럼, 살면서 주님 때문에 작은 불이익이나 희생도 감당하기 싫어서 자신이 그리스도 신앙인임을 꽁꽁 감추고 있지는 않은지 반성해봅니다. 키레네 사람 시몬처럼 예수님을 위해서라면 갑작스레 찾아오는 십자가라도 기꺼이 지고 갈 수 있는 내가 되기를, 예수님의 뒤를 따라가며 통곡하던 여인들처럼 그분의 수난과 고통에 진정으로 마음 아파하며 온전히 동참하는 내가 되기를, 아리마태아 사람 요셉처럼 사람들의 시선과 세속적인 불이익을 무릅쓰고 주님을 위해 올바른 일을 하는 용기있는 내가 되기를 소망해봅니다. 그것이 우리를 위한 주님의 사랑과 희생을 참으로 의미있게 만들고 완성하는 길일 테니까요. 우리가 그런 모습으로 살면 주님께서는 우도(성 라트로)에게 그러셨듯 우리에게도 말씀하실 겁니다. “너는 오늘 나와 함께 낙원에 있을 것이다.” 

 

* 함 승수 신부님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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