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 영은 생명을 준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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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최원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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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2025-05-10 | 조회수150 | 추천수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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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오 14세 교황님을 맞이하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흥미로운 부분이 있습니다. 교황님은 성 아우구스티누스 수도회 원장님이라는 소식이 있고 그리고 한국에 방문하셨다는 것을 보았습니다. 방문하셔서 한국의 수도회 식구들과 같이 사진을 찍은 것이 있더라구요 그 사진안에 제게 20대 초반에 많은 영향을 주신 신부님이 계시더라구요. 지금은 고국인 호주로 가셨다는 것을 요 몇칠전에 수도회에 전화 통화에서 알 수 있었습니다. 오부길 신부님 (부라이함) 신부님입니다. 세상이 좁다라는 것을 알 수 있었습니다. 신부님과 같이 여행도 많이 갔습니다. 그리고 신부님은 수영을 좋아하시고 많이 관대하신 분인데 그런데 "예" "아니요"가 분명한 분이었습니다. 그런데 그 소속에서 교황님이 나오셨다는 것이 기쁜일입니다.
요즘 복음에서 생명의 빵에 대해서 말씀하십니다. 생명의 빵은 영을 말합니다. 주님은 영적인 분입니다. 영은 생명을 줍니다. 영원한 생명입니다. 부활은 영원한 생명 그 자체를 보여주신 것입니다. 하느님은 영이라는 것을 알기가 어렵습니다. 손에 잡히는 것도 아니고 눈에 보이는 것도 아닙니다. 잘못 생각하면 영화나 무당들이 푸닷거리로 생각하고 그것을 경계하고 교회 안에서도 영을 경계하는 분들이 있습니다. 그러나 악신은 인정하고 선한 하느님의 영은 왜 부정하는지 모르겠습니다. 묵상의 영역이 감각과 지성의 조합으로 주님을 찾습니다. 그 넘어에 관상으로 넘어가는 것입니다. 빈 마음안에 하느님의 영이 임하셔서 나에게 당신의 영을 부어주시는 공간이 관상입니다. 관상의 영역으로 넘어가면 하느님의 영이 우리 안에 임하셔서 우리를 당신이 원하는 영역으로 이끄십니다. 그리고 우리의 판단과 지성을 초월하셔서 우리를 아버지와 만나게 해주시는 공간입니다. 예수님도 관상의 영역에서 하느님과 하나되신 분입니다. 어느 순간이나 주님은 하느님과 성령, 예수님은 한 공간 ..예수님의 육적인 공간 안에서 하나되신 분입니다. 참 다행스러운 것은 주님이 육적인 모습으로 우리와 대화를 하셨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주님을 만나고 만저보고 이야기하고 주시는 빵을 받아 먹고 포도주를 받아 먹을 수 있게 하심이 너무 감사한 것입니다. 더 넘어 당신이 성체 성사를 제정하셔서 우리 안에 오신다는 것이 너무 행복한 것입니다. 영적인 분을 모실 수 있도록 주님은 자신을 내어 주신 분입니다. 그래서 삼위일체 하느님과 하나될 수 있는 것이 성체 성사입니다. 성사를 통해서 우리는 삼위 일체 하느님과 하나될 수 있습니다. 그것의 축소판이 오늘 복음입니다. 하느님은 영입니다. 라는 말에 ..다들 힘들어 합니다. 성 아우구스티누스도 삼위일체를 이성적으로 파악하기 위하여서 수없이 많이 고뇌를 하였지요. 묵상 혹은 이성의 영역으로 주님의 삼위일체를 안다는 것은 불가능합니다. 다만 하느님은 영이다라는 것이 곧 답입니다. 그 안에 모든 것이 있습니다. 우리가 할 것은 이성과 묵상의 한계를 넘어 관상으로 넘어서 하느님께 내 육과 영을 비우고 의탁하는 것입니다. 그것이 영원한 생명으로 넘어가는 길입니다. 아멘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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