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 이수철 프란치스코신부님 -참 목자이자 생명의 문이신 예수님 “생명 충만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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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선우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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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2025-05-12 | 조회수193 | 추천수6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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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5.12.부활 제4주간 월요일
사도11,1-18 요한10,1-10
참 목자이자 생명의 문이신 예수님 “생명 충만한 삶”
“사슴이 시냇물을 그리워하듯, 하느님, 제 영혼이 당신을 그리나이다.”(시편42,2)
여전히 기상하자마자 열어보는 교황청 홈페이지입니다. 프란치스코 교황님에 이은 레오14세 교황님도 범상한 분이 아님을 직감합니다. 프란치스코 교황님에 이어 훌륭히 일정을 소화하는 장면을 보면서 전임 교황님을 그대로 보고 배웠음을 깨닫습니다. 하느님은 당신의 목자들을 통해 중단없이 일하시는 참으로 신실하신 분임에 다시 감사하게 됩니다. 신임 레오14세 교황님이 하신 말씀을 읽으려 가득 출력해놨습니다.
보고 배웁니다. 어느 분야든 윗 지도자들의 모범적 역할이 얼마나 크고 절대적인지 깨닫습니다. 우리가 모든 지도자들에 앞서 평생 보고 배워야할 분은 우리의 영원한 착한 목자이시며 생명의 문이신 예수님입니다. 오늘 복음의 목자와 양들 비유를 통해 우리의 위치를 새삼 깨닫게 됩니다.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말한다. 양 우리에 들어갈 때에 문으로 들어가지 않고 다른 데로 넘어 들어가는 자는 도둑이며 강도다. 그러나 문으로 들어가는 이는 양들의 목자다.”
인류 역사상 문을 통과하지 않고 불법적으로 담을 넘은 도둑이자 강도들은 얼마나 많았는지요! 지금도 그렇고 앞으로도 그런일이 계속될 것입니다. 어느 주간지 표지에 “권력이 된 종교, 신앙이 된 정치”라는 극우화된 일부 개신교단에 대한 말마디가 착한목자이자 생명의 문이신 예수님으로부터 일탈한 모습을 보여줍니다. 그리스도교의 본질은 지배가 아닌 섬김에 있음을 완전히 잃고 있음을 봅니다. 계속되는 목자와 양들의 관계에 대한 주님의 말씀입니다.
“문지기는 목자에게 문을 열어주고, 양들은 그의 목소리를 알아 듣는다. 그리고 목자는 자기 양들의 목소리를 알아 듣는다. 그리고 목자는 자기 양들의 이름을 하나하나 불러 밖으로 데리고 나간다. 이렇게 자기 양들을 모두 밖으로 이끌어 낸 다음, 그는 앞장서 가고 양들은 그를 따른다. 양들이 그의 목소리를 알기 때문이다.”
목자없는 양, 양들없는 목자는 상상할 수 없습니다. 양들은 목자의 존재이유요 양들없는 목자라면 존재이유의 상실입니다. 역시 양들 역시 겸청과 겸손, 순종의 정신과 자세로 목자의 말을 듣고 따라야 함을 봅니다. 그러나 양들에 대한 책임감없이 무책임하게 살아가는 목자들이나 또, 목자들없이 그냥 생각없이 살아가는 길잃고 방황하는 양들은 얼마나 많은지요!
참으로 목자를 보고 목자의 말을 듣고 따라야 안정과 평화의 삶이겠습니다. 복음을 보면 양들의 참 목자에게 사생활은 전혀 없어 보입니다. 삶전체가 양들을 위한 목자의 삶이요 전임 프란치스코 교황님이나 현임 레오14세 교황님의 분위기가 바로 그러합니다. 비단 교회의 목자들뿐 아니라 공인인 각계 각층의 지도자들 역시 참 목자의 영성을 배워야 함을 봅니다.
참 목자이자 생명의 문이신 예수님입니다. 이어지는 예수님 말씀도 귀한 가르침이 됩니다. 목자이자 문이신 이중신원의 예수님입니다. 참으로 예수님을 닮을수록 목자와 문으로 살 수 있겠습니다.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말한다. 나는 양들의 문이다. 나보다 먼저 온 자들은 모두 도둑이며 강도다. 그래서 양들은 그의 말을 듣지 않았다. 나는 문이다. 누구든지 나를 통하여 들어오면 구원을 받고, 또 드나들며 풀밭을 찾아 얻을 것이다.”
목자인지 도둑이며 강도인지 분별의 잣대는 예수님뿐입니다. 우리를 인도할 목자는 예수님뿐이요, 통과할 생명의 문, 구원의 문 역시 예수님뿐입니다. “나는 문이다(I AM the gate)”, 역시 탈출기에 계시된 하느님 이름의 예수님 신원임을 봅니다. “나는 하느님이다”로 바꿔 읽을 수도 있습니다. 벽이 없고 모두에게 활짝 열린 자유의 문, 평화의 문, 생명의 문, 구원의 문이신 예수님은 바로 하느님같은 분입니다.
참으로 예수님을 닮아갈수록 착한목자 영성에 날로 자아의 두텁고 넓은 벽은 활짝 열린 문으로 변할 것입니다. 날로 주님을 닮아 넓어지는 문인지 주님을 떠나 날로 좁아지는 문에 커지는 벽은 아닌지 살펴봐야 하겠습니다. 오늘 복음의 결론같은 말씀이 참 은혜롭습니다.
“도둑은 다만 훔치고 죽이고 멸망시키려고 올 뿐이다. 그러나 나는 양들이 생명을 얻고 또 얻어 넘치게 하려고 왔다.”
생명을 얻고 또 얻어 넘치는 풍성한 생명의 삶 바로 주님께서 원하시는 바요, 이 거룩한 미사은총입니다. 오늘 사도행전에서 참 목자이신 생명의 문인 예수님을 닮아가는 베드로가 좋음 모범이 됩니다. 이민족들에게 선교의 시발점이 된 환시 체험을 통해 주님은 베드로에게 귀한 깨우침의 은총을 줍니다.
“베드로야, 일어나 잡아먹어라.” “주님, 절대 안 됩니다. 속된 것이나 더러운 것은 한번도 제 입속에 들어오지 않았습니다.” “하느님께서 깨끗하게 만드신 것을 속되다고 하지 마라.”
베드로의 완고했던 마음의 벽이 문으로 변하는 깨달음의 은총입니다. 이런 깨달음의 여정을 통해 비로소 주님을 닮아 날로 너그럽고 자비롭고 지혜로운 착한 목자가 되고, 날로 좁아지는 벽에 넓어지는 생명의 문같은 존재가 될 것입니다. 베드로의 결론같은 참으로 겸손한, 깨달음의 말씀입니다.
“이렇게 하느님께서는 우리가 주 예수 그리스도를 믿게 되었을 때에 우리에게 주신 것과 똑같은 선물을 그들에게도 주셨는데, 내가 무엇이기에 하느님을 막을 수 있었겠습니까?”
예루살렘 교회지도자들은 베드로의 진정성 넘치는 해명에 “이제 하느님께서는 다른 민족들에게도 생명에 이르는 회개의 길을 열어 주셨다!” 고백하며 하느님을 찬양합니다. 이들 역시 참 목자이자 생명의 문이신 주 예수 그리스도이심을 새롭게 체험하며 마음도 많이 넓어졌을 것입니다.
날마다 참 목자이자 생명의 문이신 주님은 당신의 이 거룩한 미사은총으로 생명에 이르는 회개의 길을, 회개의 문을 활짝 열어주시며, 우리 모두 생명을 얻고 또 얻어 풍성한 삶을 살게 하십니다.
“주님, 당신의 빛과 진리를 보내시어, 저를 인도하게 하소서.”(시편43,3ㄱ). 아멘.
성 베네딕도회 요셉수도원 이수철 프란치스코신부님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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