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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요셉 신부님의 매일 복음 묵상 - 예수님을 더 사랑하는 방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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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김백봉7 쪽지 캡슐 작성일2025-05-17 조회수119 추천수3 반대(0) 신고

 

 

  

 

2025년 다해 부활 제4주간 토요일 

 

 

 

<예수님을 더 사랑하는 방법>

 

 

 

복음: 요한 14,7-14

 

 


LORENZETTI, Pietro 작, (1325)  

 

 

    오늘 복음에서 필립보는 예수님께 “주님, 저희가 아버지를 뵙게 해 주십시오. 저희에게는 그것으로 충분하겠습니다.”라고 청합니다. 만약 ‘카시아의 성체 기적’, 혹은 ‘성모 마리아의 성자를 잉태하심’으로 삼위일체를 이해한다면, 그런 질문은 하지 못할 것입니다. 

 

 

    카시아의 성체 기적에서는 성체가 피로 변해서 종이에 스며들었습니다. 그러니까 종이를 보면 성체도 보는 것과 같습니다. 성자를 잉태하신 성모님도 마찬가지입니다. 성모님을 보는 것이 예수님을 보는 것입니다. 이 때문에 예수님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필립보야, 내가 이토록 오랫동안 너희와 함께 지냈는데도, 너는 나를 모른다는 말이냐? 나를 본 사람은 곧 아버지를 뵌 것이다. 그런데 너는 어찌하여 ‘저희가 아버지를 뵙게 해 주십시오.’ 하느냐? 내가 아버지 안에 있고 아버지께서 내 안에 계시다는 것을 너는 믿지 않느냐?”

 

 

    예수님은 이를 통해 당신이 아버지를 어떻게 사랑하시는지 보여주셨습니다. 삼위일체는 사랑의 원리입니다. 사랑은 곧 자신 안에 들어온 분의 마음으로 살아가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말씀하십니다. 

    “내가 너희에게 하는 말은 나 스스로 하는 말이 아니다. 내 안에 머무르시는 아버지께서 당신의 일을 하시는 것이다.”

 

 

    이것이 예수님께서 아버지를 사랑하는 방식이고, 우리가 예수님을 사랑하는 방식이 되어야 합니다. 삼위일체 자체가 사랑의 모델이기에 사랑하고 싶다면 삼위일체를 본받아야 합니다. 예수님께서 아버지를 사랑하시는 이유는 당신 안에 오신 아버지의 뜻을 실현함으로써 당신이 행복해지시기 때문입니다. 나를 행복하기 하지 못하는 것은 사랑할 수 없습니다. 

 

 

    피노키오는 자신을 꾀어 학교에 가지 못하게 하고 서커스에 팔아먹고 당나귀가 되게 만드는 섬에 팔아먹은 늑대를 사랑할 수 있었을까요? 결과가 행복이 아니기 때문에 나중에 제페토 할아버지를 찾기 위해 목숨을 겁니다. 

    ‘베스트 키드’라고 하는 영화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아이는 무술은 안 가르쳐주고 일만 시키는 마야기 선생을 못 믿습니다. 그러나 그 모든 동작이 나중에 자신을 괴롭히는 이들을 혼내주는 무술 동작임을 알았을 때는 미야기 선생을 사랑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성경에 나오는 모든 이야기가 바로 하느님을 사랑하는 방식을 알려줍니다. 하느님은 아브라함에게 떠나라고 명령하십니다. 아들을 바치라고 하십니다. 고난의 일상이지만, 순종하니까 정말 많은 열매가 맺히는 것을 봅니다. 우선 믿고 희망해야 합니다. 그러면 사랑하게 되는 것입니다. 

 

 

    모세는 어땠습니까? 이스라엘 백성을 이집트에서 구하는 엄청난 일을 맡기셨습니다. 목숨을 거는 일이기는 하였으나 막상 해 보니 엄청난 기적들을 볼 수 있었습니다. 자신을 그런 인물로 만들어주신 하느님을 사랑하지 않을 수 있었을까요? 

그래서 우리는 기드온처럼 하느님을 시험해봐야 합니다. 하느님의 뜻이 무엇인지 살핀 다음 그대로 해 봐야 합니다. 이 믿음은 기적을 일으키게 하고 자신을 통해 그런 기적을 일으키시며 자신을 영광스럽게 하시는 하느님을 사랑하지 않을 수 없는 것입니다. 

 

 

    베드로는 사랑할 줄 아는 사람이었습니다. 예수님을 자신에게 이익이 되게 하였습니다. 베드로를 본 것이 곧 예수님을 본 것입니다. 언제요? 바로 물 위를 걸을 때입니다. 예수님은 물 위를 걷는 분이십니다. 베드로는 자신을 보는 것이 곧 그분을 보는 것으로 만들려고 하였습니다. 이것이 그리스도를 더 사랑하는 방식입니다. 

 

 

    우리도 예수님을 사랑하려면 예수님처럼 하면 됩니다. 예수님께서 아버지를 보여주시기 위해 아버지 뜻에 죽기까지 순종하셨듯이, 우리도 그리스도를 성체로 영하고는 그분의 마음으로 장착하여 살아가면 됩니다. 그분의 마음은 온유하고 겸손하여 당신이 가진 모든 것을 다 내어주셨습니다. 아버지는 아드님께 다 주셨고, 아드님은 우리에게, 그리고 우리는 이웃들에게 다 주어야 합니다. 다 준다는 말은 생명을 준다는 뜻입니다. 예수님은 성체에서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그래, 너 나에게 많이 주었니? 난 네게 다~ 주었다.”

이렇게 살았을 때 행복하다면 내 마음에 계신 그분을 사랑하지 않을 수 없는 것입니다. 

 

 

    이 대표적인 모범을 성모 마리아께서 사셨습니다. 성모 마리아는 아드님을 잉태하시고 목숨을 걸고 엘리사벳을 방문하셨습니다. 이것이 다 내어주는 이의 모습입니다. 그랬더니 기뻐서 마니피캇을 노래하게 되셨습니다. 이렇게 행복하게 해 주시는 분을 어떻게 사랑하지 않을 수 있겠습니까?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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