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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송영진 신부님_<“사랑으로써 신앙을 증명하여라.”가 예수님의 계명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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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최원석 쪽지 캡슐 작성일07:28 조회수21 추천수2 반대(0) 신고

“유다가 나간 뒤에 예수님께서 말씀하셨다.

이제 사람의 아들이 영광스럽게 되었고,

또 사람의 아들을 통하여 하느님께서도 영광스럽게 되셨다.

하느님께서 사람의 아들을 통하여 영광스럽게

되셨으면, 하느님께서도 몸소 사람의 아들을 영광스럽게

하실 것이다. 이제 곧 그를 영광스럽게 하실 것이다.

얘들아, 내가 너희와 함께 있는 것도 잠시뿐이다. 내가

너희에게 새 계명을 준다. 서로 사랑하여라.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처럼 너희도 서로 사랑하여라.

너희가 서로 사랑하면, 모든 사람이 그것을 보고 너희가 내

제자라는 것을 알게 될 것이다.’(요한 13,31-33ㄱ.34-35)”

1) 여기서 “이제 사람의 아들이 영광스럽게 되었고” 라는

말씀은, 당신의 십자가 수난이 시작되었다는 뜻입니다.

십자가 수난과 죽음을 ‘영광’이라고 표현하신 것은,

수난과 죽음이 부활과 승천으로 이어지기 때문입니다.

<죽음의 시간이 시작되었다는 것은 곧 부활의 시간이

시작되었다는 뜻이기도 합니다.

예수님의 죽음과 부활은, 죽음을 완전히 정복하신 일이고,

당신의 신성과 영광을 온 세상에 드러내신 일입니다.>

“사람의 아들을 통하여 하느님께서도 영광스럽게

되셨다.” 라는 말씀은, 예수님의 영광은 곧

하느님의 영광이라는 뜻입니다.

<예수님의 십자가는 인간을 구원하기 위한 사랑이었습니다.

구원받은 사람들은 예수님의 사랑을 찬양하게 됩니다.

그 찬양은 예수님의 영광이 되고, 예수님을 세상에 보내신

하느님께도 영광이 됩니다.>

2) 죽음의 시간이 시작되었다고 말씀하신 다음에

예수님께서 ‘마지막 계명’을 주시는데, 예수님께서는

‘새 계명’이라고 표현하십니다.

<계명이란, 신앙인이라면 당연히 지켜야 할

주님의 명령입니다.>

예수님의 ‘마지막 계명’이 ‘새 계명’인 것은,

전에는 없었던 계명이라는 뜻이 아니라,

예수님을 통해서 새롭게 이해되는 계명이기 때문입니다.

‘새 계명’은, 15장에 있는 다음 말씀에 연결됩니다.

“이것이 나의 계명이다.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처럼

너희도 서로 사랑하여라. 친구들을 위하여 목숨을

내놓는 것보다 더 큰 사랑은 없다(요한 15,12-13).”

예수님의 사랑은 ‘벗을 위하여 목숨을 바친’ 사랑입니다.

요한 사도는 이렇게 설명합니다.

“그분께서 우리를 위하여 당신 목숨을 내놓으신 그 사실로

우리는 사랑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도 형제들을

위하여 목숨을 내놓아야 합니다. 누구든지 세상 재물을

가지고 있으면서도 자기 형제가 궁핍한 것을 보고 그에게

마음을 닫아 버리면, 하느님 사랑이 어떻게

그 사람 안에 머무를 수 있겠습니까?(1요한 3,16-17)”

<목숨을 내놓는 것은, 생명을 함께 나누는 것입니다.

먹을 것을 함께 나누어 먹는 것은, 생명을 함께

나누는 일들 가운데에서 가장 기본적인 일입니다.>

3) “서로 사랑하여라.”는, “너희끼리만 서로 사랑하여라.”가

결코 아닙니다.

예수님께서는 산상설교에서 분명히 말씀하셨습니다.

“너희가 자기를 사랑하는 이들만 사랑한다면 무슨 상을

받겠느냐? 그것은 세리들도 하지 않느냐? 그리고 너희가

자기 형제들에게만 인사한다면, 너희가 남보다 잘하는 것이

무엇이겠느냐? 그런 것은 다른 민족 사람들도

하지 않느냐?(마태 5,46-47)”

만일에 교회 문을 닫아놓고서 신앙인들끼리만 사랑한다면,

그것은 사랑이 아니라 집단 이기주의입니다.

35절의 “너희가 서로 사랑하면, 모든 사람이 그것을 보고

너희가 내 제자라는 것을 알게 될 것이다.” 라는 말씀은,

‘사랑으로’ 신앙을 증명하라는 뜻입니다.

이 말씀에서 “모든 사람이 그것을 보고” 라는 말씀은,

신앙인들끼리만 서로 사랑하는 것을 모든 사람에게

보여 주라는 뜻이 아니라, 모든 사람을 사랑하라는 뜻입니다.

4) 사랑은 ‘말’이 아니라 ‘실천’이고, ‘삶’입니다.

“자녀 여러분, 말과 혀로 사랑하지 말고

행동으로 진리 안에서 사랑합시다(1요한 3,18).”

“어떤 형제나 자매가 헐벗고 그날 먹을 양식조차 없는데,

여러분 가운데 누가 그들의 몸에 필요한 것은 주지

않으면서, ‘평안히 가서 몸을 따뜻이 녹이고

배불리 먹으시오.’ 하고 말한다면,

무슨 소용이 있겠습니까?(야고 2,16)”

5) ‘사랑 실천’은 신앙인으로서 당연히 해야 할 일입니다.

자랑하지 말아야 하고, 생색내지 말아야 하고,

대가를 바라지도 말아야 합니다.

‘해야 할 일’을 했을 뿐이라고 생각해야 합니다(루카 17,10).

불우이웃 돕기든지, 무슨 봉사활동이든지 간에, 그런 일을

했다고 홍보하고(자랑하고), 생색내고......

어떤 경우에는 도움을 받은 쪽을 향해서

고마워하라고 강요하는 것 같은 모습을 볼 때가 있습니다.

그런 경우에, 받는 처지에 있는 사람의 입장에서는,

사랑을 받은 것이 아니라 멍에를 받은 것이 되어버립니다.

감사하는 마음이 생기기는커녕 ‘마음의 상처’만 생깁니다.

“네가 자선을 베풀 때에는, 위선자들이 사람들에게 칭찬을

받으려고 회당과 거리에서 하듯이, 스스로 나팔을 불지 마라.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말한다. 그들은 자기들이 받을 상을

이미 받았다. 네가 자선을 베풀 때에는 오른손이 하는 일을

왼손이 모르게 하여라. 그렇게 하여 네 자선을 숨겨 두어라.

그러면 숨은 일도 보시는 네 아버지께서 너에게

갚아 주실 것이다(마태 6,2-4).”

송영진 모세 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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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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