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 송영진 신부님_<참 평화를 세상에서 찾지 말고 주님에게서 찾아야 합니다.> | |||
---|---|---|---|---|
이전글 | 이전 글이 없습니다. | |||
다음글 | 양승국 신부님_우리는 존재 자체로 하느님께 기쁨이요 행복입니다! | |||
작성자최원석
![]() ![]() |
작성일2025-05-25 | 조회수38 | 추천수2 |
반대(0)
![]() |
“누구든지 나를 사랑하면 내 말을 지킬 것이다. 그러면 내 아버지께서 그를 사랑하시고, 우리가 그에게 가서 그와 함께 살 것이다. 그러나 나를 사랑하지 않는 사람은 내 말을 지키지 않는다. 너희가 듣는 말은 내 말이 아니라 나를 보내신 아버지의 말씀이다. 나는 너희와 함께 있는 동안에 이것들을 이야기하였다. 보호자, 곧 아버지께서 내 이름으로 보내실 성령께서 너희에게 모든 것을 가르치시고 내가 너희에게 말한 모든 것을 기억하게 해 주실 것이다. 나는 너희에게 평화를 남기고 간다. 내 평화를 너희에게 준다. 내가 주는 평화는 세상이 주는 평화와 같지 않다. 너희 마음이 산란해지는 일도, 겁을 내는 일도 없도록 하여라. ‘나는 갔다가 너희에게 돌아온다.’고 한 내 말을 너희는 들었다. 너희가 나를 사랑한다면 내가 아버지께 가는 것을 기뻐할 것이다. 아버지께서 나보다 위대하신 분이시기 때문이다. 나는 일이 일어나기 전에 너희에게 미리 말하였다. 일이 일어날 때에 너희가 믿게 하려는 것이다(요한 14,23ㄴ-29).”
1) “누구든지 나를 사랑하면 ...... 우리가 그에게 가서 그와 함께 살 것이다.” 라는 말씀은, 예수님을 사랑하는 사람만이 부활하신 예수님을 만날 수 있다는 뜻입니다. 이 말씀은, “예수님과 함께 살고 있는 사람은 예수님만 사랑해야 한다.” 라는 가르침이기도 합니다. 신앙인은 부활하신 예수님과 함께 사는 사람이기 때문에, ‘예수님만’ 사랑하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마음과 생각이 다른 곳으로 기울어져도 안 되고, 다른 것들에게 시선을 빼앗겨도 안 됩니다. 또 예수님을 사랑한다면, 예수님의 말씀을(계명을) 충실하게 지키려고 노력해야 합니다. 신앙인은 말이 아니라 ‘삶’으로 주님을 사랑하는 사람입니다. “여러분은 세상도 또 세상 안에 있는 것들도 사랑하지 마십시오. 누가 세상을 사랑하면, 그 사람 안에는 아버지 사랑이 없습니다. 세상에 있는 모든 것, 곧 육의 욕망과 눈의 욕망과 살림살이에 대한 자만은 아버지에게서 온 것이 아니라 세상에서 온 것입니다. 세상은 지나가고 세상의 욕망도 지나갑니다. 그러나 하느님의 뜻을 실천하는 사람은 영원히 남습니다(1요한 2,15-17).”
2) “성령께서 너희에게 모든 것을 가르치시고 ...... 모든 것을 기억하게 해 주실 것이다.” 라는 말씀은, “너희가 성령을 받게 되면, 나의 가르침들을 모두 깨닫게 되고 이해하게 될 것이다.” 라는 뜻입니다. 우리는 성령을 받는 일과 예수님의 가르침들을 깨닫고 이해하는 일들이 자동적으로 이루어지는 것으로 오해하면 안 됩니다. 인간 쪽에서 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성령이 자동적으로 내려오시는 것도 아니고, 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성령 덕분에 모든 것을 저절로 깨닫고 이해하게 되는 것도 아닙니다. 성령이 내려오시는 일 자체는 주님께서 하시는 일이지만, 우리 쪽에서도 오시는 성령을 잘 받으려고 노력해야 합니다. 성령을 잘 받기 위한 방법은 ‘기도’입니다. 그리고 성령의 도우심과 인도를 받아서 예수님의 가르침들을 깨닫고 이해하는 일도, 우리 쪽에서 먼저 예수님의 가르침들을 믿으려고 노력해야 하고, 믿는 대로 살아가려고 노력해야만 이루어지는 일입니다. 믿으려고 하지 않는 사람은, 또 믿는다고 말하면서도 믿는 대로 살지 않는 사람은, 성령의 도우심을 헛일로 만들어 버리는 사람입니다. 믿음도 사랑처럼, 말이 아니라 ‘삶’으로 해야 하는 일입니다.
3) “내가 주는 평화는 세상이 주는 평화와 같지 않다.” 라는 말씀은, 원래는 “세상이 주는 평화는 ‘거짓 평화’이고, 내가 주는 평화가 ‘참 평화’다.” 라는 뜻인데, “너희는 참 평화를 세상에서 찾지 말고 나에게서 찾아라.” 라는 가르침으로도 생각할 수 있습니다. 죄와 악과 죽음을 비롯해서 온갖 억압과 압박에서 해방되어서 ‘참 자유’를 누리는 상태가 ‘참 평화’입니다. 그래서 ‘참 평화’는 오직 주님에게서만 옵니다. “믿음으로 의롭게 된 우리는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하느님과 더불어 평화를 누립니다. 믿음 덕분에, 우리는 그리스도를 통하여 우리가 서 있는 이 은총 속으로 들어올 수 있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하느님의 영광에 참여하리라는 희망을 자랑으로 여깁니다(로마 5,1-2).”
4) “‘나는 갔다가 너희에게 돌아온다.’고 한 내 말을 너희는 들었다. 너희가 나를 사랑한다면 내가 아버지께 가는 것을 기뻐할 것이다.” 라는 말씀은, 앞의 18절, “나는 너희를 고아로 버려두지 않고 너희에게 다시 오겠다.” 라는 말씀에 연결됩니다. 여기서 “너희가 나를 사랑한다면”은, “너희가 나를 사랑한다면, 다시 오겠다는 내 말을 알아들을 것이고”입니다. “내가 아버지께 가는 것을 기뻐할 것이다.”는, “나를 사랑하고 내 말을 알아듣는 사람은, 나의 십자가 수난과 죽음이, ‘끝’이 아니라 아버지께 가는 일이고, 구원 사업을 완성하는 일이라는 것을 믿을 것이다. 그래서 나의 수난과 죽음을 슬퍼하지 않고 오히려 기뻐할 것이다.”입니다. “나보다 위대하신 분이시기 때문이다.”는, “나를 영광스럽게 해 주실 것이기 때문이다.”입니다. “나는 일이 일어나기 전에 너희에게 미리 말하였다. 일이 일어날 때에 너희가 믿게 하려는 것이다.” 라는 말씀은, 당신의 수난과 죽음은 힘이 없어서 당하는 일이 아니라, 인간을 구원하기 위해서 당신의 목숨을 내주시는 일이라는 것을 믿어야 한다는 뜻입니다. <그러니까 슬퍼하지만 말고, 예수님께서 부활하셔서 오시기를 기다리고 있으라는 뜻이 들어 있습니다.>
송영진 모세 신부 ------------------------------------- [출처] 부활 제6주일 강론|작성자 송영진 모세 신부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