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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성 필립보 네리 사제 기념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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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조재형 쪽지 캡슐 작성일2025-05-25 조회수139 추천수8 반대(0)

벌써 2년째입니다. 매일 아침 같은 길을 걷고 있습니다. 사제관에서 20분쯤 걸어가면 나오는 그 공원길은 하루를 시작하게 해 주는 길입니다. 새벽 6, 아직 어스름한 어둠이 남아 있는 그 길을 걸으며 묵주기도를 바치고, 성경 말씀을 들으며 하루를 엽니다. 그러다 보면 어느새 한 시간이 훌쩍 지나 있습니다. 매일 똑같은 길이지만, 매일 다른 감동이 있습니다. 어둠을 밀어내며 솟아오르는 태양, 어제보다 더 푸르러진 나뭇잎, 그리고 귀를 기울이면 들리는 새소리, 토끼, 다람쥐, 간혹 아르마딜로나 코요테까지 자연은 오늘도 제게 말을 걸어옵니다. 그리고 또 있습니다. 매일 같은 시간에 만나는 사람들입니다. 종신 부제님 부부, 늘 반갑게 인사해 주시는 자매님, 군 복무로 한국에 다녀왔다는 칸 형제님, 똑바른 걸음으로 묵묵히 걷는 형제님. 그분들과 눈인사만 나누어도 마음이 따뜻해지고, 혼자가 아니라는 안정감이 밀려옵니다. 사람이 혼자서는 살 수 없습니다. 인간은 관계의 존재입니다. 인문학에서는 이걸 호모 릴라티오(Homo Relatio)’, 관계적 인간이라 부르기도 합니다. 마르틴 부버(Martin Buber)는 인간이 비로소 인간다워지는 순간은 -의 만남을 통해서라고 했습니다. 나와 너 사이, 사이는 삶의 의미가 탄생하는 자리라는 것입니다. 그러니 누군가와 눈을 마주치고, 함께 걷는다는 것, 말없이 옆에 있어 준다는 것은 결코 작은 일이 아닙니다.

 

나무는 햇빛을 받아 양분을 만듭니다. 보이지 않는 빛을 보이는 양분으로 만듭니다. 우리는 이것을 광합성(光合成)’이라고 합니다. 신앙인은 하느님의 빛을 받아서 삶을 변화시킵니다. 우리는 이것을 신앙생활이라고 합니다. 하느님의 빛은 어디에나 있지만 모든 사람이 신앙생활을 하는 것은 아닙니다. 하느님께서는 우리가 마음을 열고 하느님의 빛을 받아들일 때까지 기다리시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마음의 문을 열기만 하면 하느님께서는 우리에게 희망의 빛, 믿음의 빛, 사랑의 빛을 주십니다. 오늘 제1독서에서 티아티라 시 출신의 자색 옷감 장수 리디아는 마음을 열고 하느님의 빛을 받아들였습니다. 온 가족이 세례를 받고, 사도들을 집으로 모셨습니다. 신앙생활을 시작하였습니다. 바오로 사도에게는 얼마나 큰 위로가 되었겠습니까? 낯선 땅에서 만난 환대와 동행, 그것은 선교 여정 속 성령의 표징이었을 것입니다. 그리고 복음에서도 예수님께서는 말씀하십니다. “내가 아버지에게서 너희에게로 보낼 보호자, 곧 진리의 영이 오시면, 그분께서 나를 증언하실 것이다.” 성령께서는 어떤 특별한 장면에서만 활동하시는 분이 아닙니다. 매일 걷는 산책길에서 만나는 사람, 눈빛으로 인사하는 이웃, 따뜻하게 건네는 말 한마디 안에도 성령은 살아 계십니다. 그 작은 관계와 만남 안에, 우리는 진리의 영이신 성령의 숨결을 느낄 수 있어야 합니다.

 

우리는 관계의 아름다운 모습을 삼위일체인 하느님을 통해서 볼 수 있습니다. 하느님께서는 이 세상을 창조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우리가 하느님께서 창조하신 이 세상에서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보여 주셨습니다. 우리는 그것을 복음이라고 합니다. 복음은 예수님께서 선포하신 하느님 나라입니다. 복음은 예수님께서 보여 주신 표징입니다. 복음은 죽음을 이기고 부활하신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성령은 은사를 통하여 우리의 신앙생활이 열매 맺도록 이끄십니다. 성령을 받은 제자들은 담대하게 복음을 전하였습니다. 성령을 받은 제자들은 병자를 치유하였습니다. 성령을 받은 제자들은 예언하였습니다. 성령을 받은 제자들은 고통 중에서도 희망을 보았습니다. 우리는 과거와 현재 그리고 미래와 관계를 맺고 살아갑니다. 우리는 하늘과 땅 그리고 이웃이 관계를 맺고 살아갑니다. 가족, 이웃, 자연과 좋은 관계를 맺는 사람은 이 세상에서 하느님 나라를 사는 것입니다. 오늘 기념하는 성 필립보 네리 사제도 그런 분이었습니다. 사람들을 유쾌하게, 따뜻하게 만나 주었고, 그들을 통해 하느님의 뜻을 깨달았습니다. 사람들을 하느님께로 이끄는 가장 좋은 길은 함께 웃고, 함께 걷는 것임을 보여 주었습니다.

 

우리는 혼자이지만 혼자가 아닙니다. 우리가 믿는 하느님은 '삼위일체인 하느님', 관계인 하느님입니다. 이 하느님 안에서 우리는 서로의 삶을 이어주는 동행자가 되어야 합니다. 여러분 곁에도 리디아가 있을지 모릅니다. 또는 여러분이 누군가에게 리디아일 수 있습니다. 오늘 하루, 누군가의 곁에 따뜻한 눈인사 하나, 다정한 말 한마디 건네 보시는 건 어떨까요? 그 안에 성령께서 함께하시리라 믿습니다.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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