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 그들의 때가 오면 내가 너희에게 한 말을 기억하게 하려는 것이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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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최원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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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2025-05-26 | 조회수23 | 추천수3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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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년부터 지금까지 재택 근무를 하고 있습니다. 참 그런데 사람들은 저의 외양만 봅니다. 그리고 이 지면도 저의 백수 비슷한 말씀에 전적으로 그 말만 봅니다. 그러나 기본 생활비는 벌고 있습니다. 집안의 생활비는 제공하고 치매 걸린 부모님을 간병하는 요양사를 두어서 어머님과 아버지 어려움을 덜어 드리고 있습니다. 국가에 세금을 지불하고 나름 나의 생활을 하고 있습니다. 단, 제가 좋아하는 회나 혹은 고급 고기를 못 먹는 것이 좀 어려움입니다. 좋은 영적인 독서를 사서 보지 못하고 있는 실정입니다. 성무 일도도 사서 기도하고 싶지만 그것도 전부 사서 하려면 목돈이 들더라구요. 그래서 지금은 굿뉴스를 활용합니다. 그러나 나름 생활은 하고 있습니다. 이런 외적인 것으로 사람을 판단하는 경우가 좀 ..특히나 저를 보는 사람들은 모두 한발짝 피합니다. 왜냐하면 얼굴도 못생긴대다 몸이 너무 마르고 그리고 하고 다니는 옻 차림도 그렇게 세련되게 입지 않고 소소히 입고 다닙니다. 그러면에서 다들 .. 그런데 말입니다. 앞서 말한 것은 모두 눈에 보이는 육적인 것입니다. 성당 안에서도 육적인 것이 많은 부분을 좌우 합니다. 영적으로 까막눈이 너무 많이 있습니다. 너무 많으니 신부님의 강론을 들어 보면 영적인 부분으로 들어가지 못합니다. 들어가면 미친 사람 취급하니 그렇습니다. 어제 미사에 공지 사항 시간에 이런 말씀이 있었습니다. 성령 쇄신 관련하여서 공지 사항을 전달하시는데 그런데 성령 쇄신하면 천주교 신자라고 해도 이상하게 생각하기 쉽거나 성령 쇄신을 이해를 못하면 신앙에서 내가 무능하게 생각하기 쉽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것을 이상하게 생각하지 말라는 것이 신부님 당부셨습니다. 성령 쇄신도 믿음의 한 부분입니다. 맞는 분도 있고 그렇지 않은 부분이 있다는 것입니다. 옳고 그름 맞고 틀림으로 받아들이지 말라는 말씀입니다. 신앙을 있는 그대로 수용할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7대 3이라는 것이 있습니다. 이성과 감성 조합이 7이라는 부분이고 나머지 게시 혹은 영성 혹은 성령과 관련된 부분이 3입니다. 대부분 7 즉 묵상은 바로 무엇인가 설명이 가능하다는 것입니다. 3에 해당하는 관상 관련된 것이라도 인간의 언어로 바로 설명이 가능하지 않습니다. 내어 맞김입니다. 7다음이 3으로 넘어가는 것입니다. 그러나 그 지점으로 넘어가지 못하였다고 해서 주님이 넌 낙제 그렇게 말씀하지 않습니다. 단, 더 풍성한 영성으로 가는 과정입니다. 묵상에서 관상으로 넘어가는 과정입니다. 이런 일련의 과정을 같이 나누는 것도 쉽지가 않습니다. 비신자가 묵상하는 모습을 보면 "멍" 때린다고 말하는데 그런데 막상 묵상하는 사람 입장에서는 그렇지 않습니다. 그러나 신자중에서도 아마 90% 이상은 성체 앞에서 묵상을 생활화하는 분들이 10%미만입니다. 더 나아가 관상으로 넘어가는 과정은 1%미안입니다. 딴 세상입니다. 그런 묵상과 관상에서 말씀을 나누고 같이 공유한다는 것도 쉬운 것은 아닙니다. 논리 조합이 묵상으로 생각하는 분들이 있습니다. 그렇지 않습니다. 논리 조합을 묵상이라는 분들이 95% 이상입니다. 묵상과 관상의 공통점은 머무름입니다. 머무름의 후의 행동은 간단합니다. 말수가 적어 지고 반복해서 말씀을 나누지 않고 간단하게 글을 쓴다는 것입니다. 신부님들의 강론중에 시로 표현하시는 분들이 있는데 그것이 묵상이요 관상입니다. 신앙의 신비를 인간의 언어로 잘 표현하는 것이 불가능 합니다. 그래서 시를 주로 이용합니다. 그리스도교가 2000년이 넘었습니다. 넘었는데도 불구하고 묵상, 관상, 성령쇄신과 같은 것을 제대로 머무는 사람들이 극히 소수라는 것은 너무 안타까운 것입니다. 이 현상을 2000년 전 예수님 공생활 중에 말씀으로 보면, 대부분 주님의 말씀은 영적인 부분을 시적인 표현하시고 함축적인 표현을 하시는데 당시 사람들이 볼때는 거의 딴나라 사람으로 보입니다. 말은 아람어를 사용하시는데 그런데 그 내용은 도저히 무슨 말인지 깨닫지 못하는 것입니다. 나와 다름을 다름으로 인정할 줄 모르고 틀렸어 라는 것으로 취급하고 틀리면 계급 의식으로 저능아 취급해서 죽음으로 몰아 가려는 것이 당시 상황인것 같습니다.지금도 마찬가지 입니다. 그런 모든 상황을 아시는 주님이 제자들에게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나의 말을 사람들이 알아 듣지 못하고 미개인 취급하거나 혹은 내가 십자가 죽음 이후에 사람들 앞에서 나를 증언할때 사람들이 너희의 증언을 미개인 취급할 것이다 그러나 그것은 그들이 무지하기에 그렇게 반응하는 것이다. 내가 부활 승천 이후에 성령이 증언 할 것이다. 너희도 셩령님의 인도에 따라서 나를 증언할 것이다. 그 말씀입니다. 믿어라 그리고 증언하거라 입니다. 이탈하지 마라입니다. 그러면 영원한 생명으로 넘어갈 것이다. 이 말씀이 핵심입니다. 더 깊이 주님의 말씀 안에서 머물고 그 안에서 구원을 얻기를 간절히 기도드립니다. 아멘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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