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 이수철 프란치스코신부님 -성령에 따른 삶 “성령이 희망이자 미래요, 무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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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선우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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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2025-05-27 | 조회수60 | 추천수6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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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5.27.부활 제6주간 화요일
사도16,22-34 요한16,5-11
성령에 따른 삶 “성령이 희망이자 미래요, 무지에 대한 답이다”
챗gpt 인공지능(AI)은 전무후무의 혁명이 되리란 예감입니다. 어떻게 대처해야 되나? 어떻게 살아야 하나? 심각한 물음에 직면하게 됩니다. 인류의 존속이, 생사가 달린 문제이기 때문입니다. 요즘 챗gpt를 활용해 제 자작시에 시화(詩畫)를 만들어 주는 자매의 작품에 저절로 감탄하게 됩니다. 인공지능의 그림이 참 환상적이고 신비롭기 때문입니다.
어제는 제 사진을 달라하여 마음에 들었던 사진 둘을 주었더니 인공지능이 이런 시(詩)를 썼다하며 전송했습니다. 사진을 바탕한 제목과 사진 평에 대한 시가 10초안에 이뤄졌다 했습니다. 말그대로 놀랍고 무서운 경악스런 체험이었습니다.
“<기도의 사람> 고요한 방 안, 세월의 자국 따라 깊어진 주름 위로 미소가 피어난다. 말하지 않아도 전해지는 따뜻한 축복하나.
검은 수단 위에 얹힌 보랏빛 스톨 그 깊은 색만큼이나 많은 사연과 눈물이 스며 있었으리.
하얀 강아지 한 마리 작은 생명도 놓치지 않고 햇살 같은 눈길로 함께 걷는 그 길. 신의 숨결이 닿은 땅이 된다.
성경보다 오래 묵은 기도. 책보다 두꺼운 사랑을 품고 오늘도 그는 사람을 위해, 하늘을 향해, 조용히 기도한다. <이 시는 신부님의 온화한 미소와 삶의 깊이를 담아내려 했습니다.>” 2025.5.26
인공지능의 사진 평의 시가 놀랍고 무섭지 않습니까! 어찌보면 모든 정보를 종합한 과학적 분석을 바탕하여 인공지능이 쓴 지극히 정확한 작품인데 사람의 사진을 보고 관상을 봐도 정말 거의 맞을 거란 생각도 듭니다. 정말 마지막 순간까지 분투의 노력을 다하며 살아야 하겠다는 자각을 새로이 하게 됩니다. 저절로 어떻게 해야 하나? 어떻게 살아야 하나? 묻게 됩니다.
답은 단 하나 성령에 따라 최선의 노력을 다하며 사는 것입니다. 인공지능의 활용에는 최대한 분별의 지혜를 다하며 매사 분투의 노력을 다하며 성령 따라 사는 길뿐이겠습니다. 챗gpt가 아닌 성령이 인류의 미래이며 희망입니다. 성령의 사랑, 성령의 생명, 성령의 지혜, 성령의 진리, 성령의 자유등 무지에 대한 궁극의 답도 성령뿐입니다.
오늘 복음의 예수님 말씀이 참 좋은 희망이 되고 깊은 위로와 치유가 됩니다. 오늘날 미증유의 챗gpt 현실을 미리 대다본 예수님의 선견지명같다는 생각에 저절로 감사하고 감동하게 됩니다. 예수님은 떠나도 떠나는 것이 아니라 보내 주실 보호자 성령을 통해 늘 우리의 무지를 환히 밝혀주며 우리가 참삶을 살 것임을 예고하십니다.
“이제 나는 나를 보내신 분께 간다...내가 너희에게 진실을 말하는데, 내가 떠나는 것이 너희에게 이롭다. 내가 떠나지 않으면 보호자께서 너희에게 오지 않으신다. 그러나 내가 가면 그분을 너희에게 보내겠다.”
사실 이미 날마다 미사은총으로 성령에 따른 현실을 사는 우리들입니다. 저는 감히 단언합니다. “챗gpt에 답은 성령뿐이다, 미사전례은총뿐이다!” 라고 말입니다. 예수님은 국한된 활동에서 죽으시고 부활하시어 아버지 오른쪽에 좌정하시고 계시지만, 시공을 초월하여 끊임없이 보호자이자 위로자이신 성령을 보내심으로 믿는 이들은 언제 어디서나 성령 안에서 주님의 현존 안에서 살게 된 것입니다. 이제 주님은 성령을 통해 우리에게 영원히 초월과 내재의 동시적인 분이 된 것입니다. 말 그대로 성령은 이제 우리 믿는 모두의 평생 화두가 되었습니다.
성령께서는 세상, 즉 순전히 세속적인 세상이 예수님의 길을 신뢰하지 않는 잘못을 드러내십니다. 성령께서는 세상의 죄는 불신앙, 곧 예수님께서 주시는 생명의 비전에 마음을 열지 않으려는 준비 부족임을 깨닫게 하십니다. 성령께서는 그리스도의 죽음이 세상의 모든 악에 대한 정죄이며, 삶의 중심인 사랑을 부인하는 것이 큰 죄임을 보여주십니다. 이 구절들에 대한 다음 미국 성경의 주석입니다.
“이 구절들은 보호자 성령의 역할이 법정적인 성격을 지녔음을 보여준다. 제자들의 양심이라는 내적 법정에서 성령은 세상을 심판한다. 신자들의 근본적인 죄는 예수님을 믿지 않는 것이고, 예수님께서 유죄 판결을 받고 겉으로는 불명예스럽게 죽으셨지만, 실제로는 의가 승리했다는 것을 믿는 것이고, 예수님의 죽음을 통해 정죄받은 자는 ‘이 세상의 통치자’인 사탄임을 깨닫는 것이다.”
삶의 무지와 무의미, 허무의 어둠을 환히 밝혀주는 성령의 빛입니다. 늘 우리와 함께 하시는 보호자, 위로자, 치유자 성령의 인도따라 살 때 비로소 모든 걱정과 두려움, 절망과 실망과 원망의 삼망에서 벗어날 수 있습니다. 숨겨진 신비와 비밀을, 숨겨진 진리와 진실을, 숨겨진 성령께서 겸손한 영혼들에게 가르쳐 주십니다. 오늘 사도행전은 가장 극적인 사건을 다루고 있습니다. 성령따라 사는 이들에게 절망은 없음을 보여줍니다.
어처구니 없는 박해로 가장 깊은 감방에 갇힌 바오로와 실라스 일행은 자정 무렵에 하느님께 찬미가를 부르며 기도했고 기적이 발생합니다. 감옥에 갇힌 수인들이 탈출한줄 알고 자결하려는 간수에게 “자신을 해치지 마시오. 우리가 다 여기에 있소.” 소리치며 간수를 안심시키는 바오로입니다. 이후 진행되는 사태는 놀랍고 은혜롭기가 순전히 성령의 작품이자 은총임을 깨닫습니다. 간수와 바오로와 실라스 두 제자가 주고 받는 대화입니다.
“두 분 선생님, 제가 구원을 받으려면 어떻게 해야 합니까?” “주 예수님을 믿으시오. 그러면 그대와 그대의 집안이 구원을 받을 것이오.”
이어 간수의 온가족들은 세례를 받고 제자들에게 음식을 대접하고 하느님을 믿게 된 것을 온집안과 더불어 기뻐하니 놀라운 구원의 반전이 이뤄진 것입니다. 날이 밝자 행정관들은 시종들을 보내어, “그 사람들을 풀어 주어라.” 간수에게 명령했고 간수는 바오로에게 그대로 전하며, “이제 나오셔서 평안히 가십시오.” 인사하니 정말 해피엔딩으로 끝나는 장면입니다. 바로 이 일화는 하느님께서 굽어진 선같은 삶중에도 어떻게 바르게 쓰실 수 있는 지 보여줍니다. 어떤 고난과 시련중에도 하느님은 성령을 통해서 좋은 일을 하실 수 있음을, 절망은 없음을 보여주는 사건입니다.
“하느님께서는 굽은 선들위에서도 똑바로 쓰실 수 있다”(God can write straight with crooked lines)는 사실이 우리에게는 큰 희망과 위로와 힘이 됩니다. 날마다 이 거룩한 미사은총이 어떤 시련과 역경중에도 성령의 인도따라 올바른 삶을 살도록 결정적 도움을 주십니다. 아멘.
성 베네딕도회 요셉수도원 이수철 프란치스코신부님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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