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 송영진 신부님_<예수님은 언제나 항상 우리와 함께 계시는 분입니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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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최원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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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2025-05-27 | 조회수46 | 추천수2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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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나는 나를 보내신 분께 간다. 그런데도 ‘어디로 가십니까?’ 하고 묻는 사람이 너희 가운데 아무도 없다. 오히려 내가 이 말을 하였기 때문에 너희 마음에 근심이 가득 찼다. 그러나 너희에게 진실을 말하는데, 내가 떠나는 것이 너희에게 이롭다. 내가 떠나지 않으면 보호자께서 너희에게 오지 않으신다. 그러나 내가 가면 그분을 너희에게 보내겠다. 보호자께서 오시면 죄와 의로움과 심판에 관한 세상의 그릇된 생각을 밝히실 것이다. 그들이 죄에 관하여 잘못 생각하는 것은 나를 믿지 않기 때문이고, 그들이 의로움에 관하여 잘못 생각하는 것은 내가 아버지께 가고 너희가 더 이상 나를 보지 못할 것이기 때문이며, 그들이 심판에 관하여 잘못 생각하는 것은 이 세상의 우두머리가 이미 심판을 받았기 때문이다(요한 16,5-11).”
1) 예수님께서는 승천하시기 전에, “내가 세상 끝 날까지 언제나 너희와 함께 있겠다.” 라고 약속하셨습니다(마태 28,20). 또 마르코복음서 저자는, “주님께서는 그들과 함께 일하시면서 표징들이 뒤따르게 하시어, 그들이 전하는 말씀을 확증해 주셨다.” 라고 기록했습니다(마르 16,20). 따라서 7절의 “내가 가면 그분을 너희에게 보내겠다.” 라는 말씀은, “나의 승천은 ‘너희를 떠나는 일’이 아니라 성령을 통해서 ‘너희와 함께 있는 일’이다.” 라는 뜻입니다. <승천하신 예수님은, 인간의 눈에는 보이지 않게 되셨지만, 성령을 통해서 언제나 항상 우리와 함께 살아계신다는 것이 우리의 믿음입니다. 예수님의 승천은 ‘떠남’이 아니라 ‘함께 있음’입니다.> 그렇다면 “내가 떠나는 것이 너희에게 이롭다.” 라는 말씀은, “내가 떠나도 너희의 이로움은 조금도 줄어들지 않는다.”로 해석됩니다. <이 말씀은, 당신이 떠나지 않는 것이 제자들에게 ‘해롭다.’는 뜻도 아니고, ‘덜 이롭다.’는 뜻도 아닙니다.> 또 “내가 떠나지 않으면 보호자께서 너희에게 오지 않으신다.” 라는 말씀은, “내가 떠나야만 성령께서 오신다.” 라는 뜻이 아니라, “겉으로는 내가 떠나는 것처럼 보여도, 성령을 통해서 너희와 함께 있겠다.” 라는 뜻입니다. <사실 부활하신 예수님께서는 승천하시기 전에 이미 시간과 공간을 초월하시는 모습을 보이셨습니다. 갑자기 나타나셨다가 사라지신 일들도 그렇고, 이곳에 나타나셨다가 다른 곳에 나타나신 일들도 그렇습니다. 그래서 제자들 입장에서는 부활하신 예수님을 찾아다닐 필요 없이, 예수님께서 나타나시기를 기다리기만 하면 되었습니다. 성령강림 후에는, 제자들은 예수님께서 성령을 통해서 언제나 어디서나 항상 함께 계신다는 것을 믿었습니다. “내가 떠나는 것이 너희에게 이롭다.” 라는 말씀의 표현만 보면서, 제자들이 ‘떠나신 예수님’을 ‘회상’하거나 ‘추억’하면서 지낸 것으로 생각하는 것은 너무 단순하게 생각하는 것이고, 부활하신 예수님의 ‘현존’에 대해서 잘못 생각하는 것입니다.>
2) “보호자께서 오시면 죄와 의로움과 심판에 관한 세상의 그릇된 생각을 밝히실 것이다.” 라는 말씀은, “너희가 성령을 받게 되면, 박해자들과 안 믿는 사람들의 생각이 잘못된 것임을 더욱 확실히 알게 될 것이다.” 라는 뜻입니다. <그릇된 생각을 하고 있는 ‘세상 사람들’을 성령께서 직접 꾸짖으신다는 뜻은 아닙니다.> 이 말씀은 예수님에 대한 신앙을 더욱 확실하게 갖게 될 것이라는 뜻이기도 합니다.
3) “그들이 죄에 관하여 잘못 생각하는 것은 나를 믿지 않기 때문이고” 라는 말씀은, “성령께서는 ‘나를 믿지 않는 것’은 죄라고 밝혀 주실 것이다.” 라는 뜻입니다. <9절-11절의 우리말 번역은 좀 이상하고 어색합니다.> “그들이 의로움에 관하여 잘못 생각하는 것은 내가 아버지께 가고 너희가 더 이상 나를 보지 못할 것이기 때문이며” 라는 말씀은, “내가 아버지께 감으로써(승천함으로써) 너희가 더 이상 나를 보지 못하게 되는 것은, 나의 의로움을(죄 없음을) 증명한다.” 라는 뜻입니다. 박해자들은 예수님을 ‘죄인’이라고 생각하지만, 예수님의 승천은, ‘예수님의 죄 없으심’을 증명하는 일이라는 것입니다. 죄인은 승천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예수님의 승천은 제자들만 목격한 일입니다. 박해자들은 승천을 보지 못했고, 예수님께서 승천하셨다는 제자들의 증언을 받아들이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이 말씀은, 당신을 믿는 제자들에게 “너희는 내가 승천하는 것을 보게 되면, 죄 없는 내가 죄인들을 구원하기 위해서, 또 죄인들을 대신해서 나 자신을 속죄 제물로 바쳤음을 깨닫게 될 것이다.” 라는 뜻으로 하신 말씀입니다.> “그들이 심판에 관하여 잘못 생각하는 것은 이 세상의 우두머리가 이미 심판을 받았기 때문이다.” 라는 말씀은, “심판을 받은 것은 내가 아니라 이 세상의 우두머리다.” 라는 뜻입니다. <‘이 세상의 우두머리’는 사탄인데, 여기서는 박해자들, 즉 사탄의 영향력 아래에 있는 자들을 가리키는 말입니다.> 박해자들은 자기들이 ‘죄인 예수’를 심판했다고 생각하지만, 실제로 심판을 받은 자들은 바로 그들이라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심판을 받을 것이다.’가 아니라, ‘이미 심판을 받았다.’ 라고 말씀하신 것은, 당신의 부활로 사탄과 사탄의 세력에 대한 심판과 멸망이 확정되기 때문입니다.>
4) 성령께서 오시면, 또는 성령을 받게 되면, 우리가 가만히 있어도 성령께서 알아서 다 해 주시는 것은 아닙니다. 성령을 받는다고 자동적으로 모든 것을 깨닫게 되고 알게 되는 것은 아니라는 것입니다. 우리 쪽에서 할 일이 있는데, 그것은 곧 ‘믿는 것’과 ‘믿는 대로 사는 것’입니다.
송영진 모세 신부 ------------------------------------- [출처] 부활 제6주간 화요일 강론|작성자 송영진 모세 신부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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