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 복자 윤지충 바오로와 동료 순교자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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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조재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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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2025-05-28 | 조회수145 | 추천수8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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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끔 축성을 부탁받습니다. 얼마 전에는 도넛 가게를 축성했고, 또 다른 날에는 헤어스파를 축복했습니다. 사업이 잘되기를 바라는 것도 있지만, 그 사업을 통해 하느님의 영광이 드러나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기도했습니다. 도넛 가게는 새벽같이 문을 열어 하루를 시작합니다. 땀 흘리는 이민자들의 삶이 고스란히 녹아 있는 곳입니다. 도넛 하나에도 사랑과 정성이 담겨 있기를 기도했습니다. 예수님께서 보리떡 다섯 개를 축복하셨듯이 말입니다. 또 다른 곳은 새로 시작한 헤어스파였습니다. 문을 열자, 향기가 은은하게 퍼졌습니다. 예수님께서 말씀하십니다. “수고하고 지친 이들은 모두 나에게 오너라, 내가 너희에게 안식을 주겠다.” 그 공간을 찾는 이들이 단지 몸만 아니라, 마음까지 쉬어 갈 수 있기를 청했습니다. 사람들은 종종 세상에서의 성공만 기억하려 합니다. 올림픽 금메달리스트는 기억하지만, 은메달리스트는 쉽게 잊어버립니다. 그러나 꽃밭을 가보면 다릅니다. 모든 꽃은 1등을 자랑하지 않습니다. 저마다 색깔을 내며 피어납니다. 신앙도 마찬가지입니다. 1등만 기억하는 것이 아니라, 실패하고 넘어졌던 이도, 낙오자도, 슬퍼하던 이도, 모두를 품는 것이 신앙입니다. 저도 흔들렸던 순간들이 있습니다. 서품받고 나서 병원에 입원하기도 했고, IMF로 대출을 받기도 했고, 다리가 부러져 수술을 받기도 했습니다. 그런데 돌아보니, 그 시절이 있었기에 지금 여기까지 올 수 있었구나 싶습니다. 지금 꽃이 피지 않아도 괜찮습니다. 언젠가 열매 맺을 수 있다면 말입니다. 도종환 시인은 이렇게 말했습니다. “흔들리지 않고 피는 꽃이 어디 있으랴. 이 세상 그 어떤 아름다운 꽃들도 다 흔들리며 피었다.” 우리의 삶도 그렇습니다. 흔들리면서, 비에 젖으면서 피어나는 꽃. 그것이 신앙인의 삶입니다. 오늘은 복자 윤지충 바오로와 동료 순교자들을 기억하는 날입니다. 선교사가 없이 시작된 한국 천주교회는 100년 동안 50년은 사제 없이 신앙생활을 했습니다. 신유, 기해, 병오, 병인박해가 있었습니다. 글로 표현할 수 없을 만큼 참혹한 박해와 시련이 있었습니다. 순교자도 있었지만, 배교자도 있었고, 밀고자도 있었습니다. 순교자들의 뜨거운 피와 숭고한 신앙이 열매 맺었고, 오늘 한국 천주교회가 있는 것입니다. 오늘 기념하는 복자 윤지충 바오로와 동료 순교자들은 꽃이었습니다. 흔들림 속에서 피어난 꽃이요, 비에 젖으며 드러난 향기였습니다. 윤지충 복자는 조선시대 양반 출신으로, 유학을 공부하던 사람이었습니다. 하지만 천주교를 접하면서 그는 전통 제사를 거부했고, 자신의 어머니 장례에서 신앙을 지켰다는 이유로 체포되어 순교하였습니다. 함께 순교한 권상연 복자도 그의 동료였습니다. 당시엔 조선이라는 사회 자체가 거대한 바람이고, 믿음을 시험하는 장대비였습니다. 그 속에서 그들은 자신의 믿음을 지켰습니다. 우리는 순교자를 영웅처럼 여기지만, 그들도 우리처럼 고민하고 흔들렸던 사람들이었습니다. 믿음과 충성 사이에서, 부모의 뜻과 하느님의 뜻 사이에서, 전통과 진리 사이에서 그들도 아팠을 것입니다. “한 알의 밀알이 땅에 떨어져 죽지 않으면 그대로 남고, 죽으면 많은 열매를 맺는다.” 주님의 이 말씀처럼, 그들은 죽음을 선택한 것이 아니라 생명을 심은 것입니다. 그들의 피는 씨앗이 되었고, 그 씨앗에서 우리는 지금 ‘한국 교회의 믿음’이라는 열매를 보고 있습니다. 우리 삶에도 바람이 있고, 비가 있습니다. 병으로, 경제적 어려움으로, 가족 문제로 고통받는 분들이 있습니다. 하지만 그 속에서 꺾이지 않고, 흔들리면서도 살아내는 신앙인이야말로 오늘 우리가 드리는 순교의 향기입니다. 오늘 우리가 기리는 윤지충 바오로 복자와 동료 순교자들은 ‘하느님의 말씀’을 따르기 위해 생명을 바쳤습니다. 우리는 그분들처럼 생명을 내어놓지는 못하더라도, 오늘 하루 작은 선택 하나라도 하느님께 드릴 수 있습니다. 무례한 말 한마디를 참는 인내, 상대의 고통에 귀 기울이는 연민, 그리고 기도 속에서 묵묵히 하느님을 기다리는 믿음. 그 작은 선택들이 모여, 결국 우리의 삶도 “흔들리며 피는 꽃”이 됩니다. 그러니 조금 흔들려도 괜찮습니다. 하느님은 흔들리며 피는 꽃을 누구보다 사랑하십니다.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말한다. 밀알 하나가 땅에 떨어져 죽지 않으면 한 알 그대로 남고, 죽으면 많은 열매를 맺는다. 자기 목숨을 사랑하는 사람은 목숨을 잃을 것이고, 이 세상에서 자기 목숨을 미워하는 사람은 영원한 생명에 이르도록 목숨을 간직할 것이다. 누구든지 나를 섬기려면 나를 따라야 한다.” 시련을 견디어 내는 사람은 행복하다. 시험을 통과하면 생명의 화관을 받으리라.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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