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 [복되신 동정 마리아의 방문 축일]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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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박영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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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2025-05-31 | 조회수35 | 추천수4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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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되신 동정 마리아의 방문 축일] 루카 1,39-56 "행복하십니다, 주님께서 하신 말씀이 이루어지리라고 믿으신 분!”
오늘은 “복되신 동정 마리아의 방문 축일”입니다. 하느님의 구원계획에 순명한 성모 마리아께서 성령으로 아들을 잉태하시고 난 뒤, 친척인 엘리사벳을 방문한 것을 기념하는 날이지요. 그렇기에 엘리사벳을 왜 방문하셨는지, 그 방문을 통해 무엇을 깨닫고 얻으셨는지, 그리고 우리는 오늘의 축일을 기념하면서 어떤 점을 마음에 새기고 묵상해야 하는지를 하나씩 꼼꼼하게 확인해볼 필요가 있습니다.
먼저 마리아께서 엘리사벳을 방문하신 이유를 살펴봅니다. 나자렛에서 엘리사벳이 살던 ‘아인카림’까지는 꾸불꾸불하고 험준한 산길을 따라 약 160킬로미터나 걸어가야 하는 고된 여정입니다. 즉 마리아께서는 몸상태가 불안정하여 각별히 조심해야 하는 임신 초기의 몸으로 서울에서 대전까지의 거리를 홀로 걸어가신 겁니다. 하지만 처음부터 대단한 목표나 비장한 각오를 가지고 가신 건 아닐 겁니다. 친척 엘리사벳도 자신처럼 하느님의 놀라운 능력에 힘 입어 아이를 잉태하였다는 소식을 듣고 절반은 ‘동병상련’의 마음으로, 나머지 절반은 늙은 나이에 아이를 잉태하여 다른 임신부보다 더 큰 고생을 하고 있을 이모를 안쓰럽게 여기며 보살피고자 하는 자비의 마음으로 찾아갔겠지요. 그런 면에서 마리아의 대단한 점이 드러납니다. 보통 사람은 감당하기 어려운 상황을 마주하면 자기가 힘든 점만 생각하며 이기적이 되거나, 불평 불만을 늘어놓기 바쁜데, 이제 막 사춘기에 접어든 어린 소녀가 자기보다 더 큰 어려움을 겪는 다른 이를 먼저 챙기는 넓은 아량을 지녔으니 참으로 대단하고 장하지요.
한편, 엘리사벳은 조카인 마리아의 방문에 크게 기뻐하고 또 놀라워하면서 이렇게 묻습니다. “내 주님의 어머니께서 저에게 오시다니 어찌 된 일입니까?” 인간적이고 개인적인 목표를 가지고 엘리사벳을 찾아간 마리아로 하여금 자신이 엘리사벳을 찾아가야만 했던 신앙적 의미가 무엇인지를 돌아보게 하는 질문이지요. 그 질문을 듣고 마리아는 최근에 자기 삶에 일어났던 놀라운 일들이 어떤 의미인지를 하느님과의 관계 안에서 바라보게 됩니다. 처음에는 나이 어린 소녀가 감당하기에 너무나 무겁고 어려운 ‘과제’가 주어졌다고 여겼는데, 그럼에도 그것이 하느님의 뜻이라고 하니 일단 받아들여야 한다고만 생각했는데, 그게 다가 아니었던 것입니다. 하느님께서 계획하신 그 뜻이 이루어지기까지 수없이 많은 난관을 거쳐가야 하겠지만, 하느님께서 그 뜻을 이룰 협력자로 자신을 선택하셨다는 것 자체가 스스로에게 커다란 축복이자 영광이며, 나중에 그분 뜻이 완성되고 나면 그 풍성한 혜택이 이스라엘 민족 전체에게 더 나아가 그 후손들에게까지 돌아가게 될테니 모두에게 너무나 기쁘고 좋은 일임을 깨달은 겁니다.
마지막으로 오늘 축일을 기념하는 우리가 마음에 새기고 묵상해야 할 핵심 메시지에 대해 살펴봅니다. 마리아께서 엘리사벳을 방문하여 성령께서 주시는 은총과 기쁨을 나누었던 것처럼, 하느님께서는 다양한 상황에서, 여러 사람을 통해, 놀라운 방식으로 우리에게 ‘행복’을 전해주십니다. 그런데 그 행복은 조건의 행복이 아니라 상태의 행복입니다. 즉 어떠한 조건을 만족하면 그 후에야 행복이 실현되는 게 아니라 내가 마음만 먹으면 즉시 그 행복을 누릴 수 있는 겁니다. 이 때 내가 지녀야 할 마음가짐은 나의 구원과 참된 행복에 관한 뜻과 계획이 담긴 하느님의 말씀이 어떤 어려움에도 불구하고 반드시 이루어짐을 믿는 것입니다. 내가 하느님 말씀을 믿고 그분 뜻을 실천하는 그 순간 나의 행복도 시작되지요. 그러니 믿음과 희망을 마음에 품고 사랑을 실천하며 하느님을 찾아갑시다.
* 함 승수 신부님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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