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 주님 승천 대축일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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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하느님 자비심의 5단 기도의 가치와 효력과 약속 [하느님 자비심, 파우스티나 성녀] |1|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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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조재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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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2025-05-31 | 조회수265 | 추천수7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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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5월 5일에 달라스에 있는 ‘보현사’엘 다녀왔습니다. 그날은 ‘부처님 오신 날’이었습니다. 작년에는 작은 선물을 드리고, 차를 마시고 왔습니다. 올해는 스님께서 드리는 ‘예불’에 함께 했습니다. 스님께서는 1시간 넘게 예불을 드렸고, 스님의 정성과 간절함을 볼 수 있었습니다. 부처님의 자비가 모든 불자와 함께 하기를 기도했습니다. 부처님 오신 날을 축하하며 불교와 천주교의 교리를 잠시 생각했습니다. 불교는 ‘깨달음’의 종교입니다. 부처님은 삶의 고통을 깊이 성찰했습니다. 그리고 고통에는 4가지가 있다고 보았습니다. ‘애별리고(愛別離苦)’가 있습니다. 사랑하는 사람과 헤어져야 하는 고통입니다. 저도 14년 전에 아버지가 하느님의 품으로 가셨고, 어머니가 5년 전에 하느님의 품으로 떠났습니다. 안타깝게도 저는 아버지의 임종도, 어머니의 임종도 볼 수 없었습니다. ‘원중회고(怨憎會苦))’가 있습니다. 원수를 외나무다리에서 만난다는 말이 있듯이, 미워하는 사람과 함께해야 하는 고통입니다. ‘구부득고(求不得苦)’가 있습니다. 원하는 것을 얻지 못하는 고통입니다. 성공과 명예 그리고 권력을 추구하지만, 그것을 얻지 못하는 사람이 많습니다. ‘오음성고(五陰盛苦)’가 있습니다. 나는 선을 추구하지만, 악으로 향하게 되는 고통입니다. 내 마음을 나도 모른다는 말처럼, 우리의 마음을 다스리지 못하는 고통입니다. 부처님은 이런 고통의 원인은 ‘집착’에 있다고 보았습니다. 그런 집착을 버리면 깨달음을 얻을 수 있다고 하였습니다. 그런 집착을 버리기 위해서는 바른 말, 바른 행동, 바른 생각을 해야 한다고 하였습니다. 천주교는 ‘계시종교’입니다. 하느님께서 인간을 사랑하셔서 인간이 바른길을 갈 수 있도록 이끌어 주신다고 믿습니다. 하느님께서는 하느님을 닮은 모습으로 인간을 창조하셨습니다. 그래서 인간에게는 양심이 있습니다. 이 양심이 있기에 사람은 가난한 사람, 아픈 사람을 보면 측은한 마음을 가지게 됩니다. 예수님께서는 ‘착한 사마리아 사람’의 비유를 통해서 자비를 베푸는 사람이 하느님과 함께한다고 하셨습니다. ‘너의 중에 가장 가난하고, 굶주리고, 헐벗은 이에게 해 준 것이 곧 나에게 해 준 것이다.’라고 하셨습니다. 이 양심이 있기에 겸손한 마음을 지니게 됩니다. 벼는 익을수록 고개를 숙인다고 합니다.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에게 첫째가 되고자 하는 사람은 꼴찌가 되어야 한다고 하셨습니다. 제자들의 발을 씻어 주셨습니다. 이 양심이 있기에 잘못한 것에 대해서 부끄러워합니다. 베드로 사도는 닭이 울자, 회개의 눈물을 흘렸습니다. 예수님께서는 하느님 나라에서는 선한 사람 아흔아홉보다 회개하는 죄인 하나를 더 기뻐한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이 양심이 있기에 배우지 않아도 옳고 그름을 식별하게 됩니다. 오늘은 예수 승천 대축일입니다. 예수님께서 제자들의 눈앞에서 하늘로 올라가셨습니다. 천사들은 말합니다. "갈릴래아 사람들아, 왜 하늘을 쳐다보며 서 있느냐? 너희를 떠나 승천하신 저 예수님께서는, 너희가 보는 앞에서 하늘로 올라가신 모습 그대로 다시 오실 것이다." 예수님의 승천은 단지 예수님이 떠났다는 의미가 아닙니다. 오히려 그분의 승천은 우리를 위한 희망의 약속입니다. 예수님이 가신 그 길을, 우리도 따라가야 한다는 부르심이자, 이미 그 하늘 자리에 우리 몫의 자리가 마련되어 있다는 위로입니다. 예수님의 승천은 우리가 이 땅에서 ‘허공을 응시하며’ 사는 것이 아니라, 하늘을 소망하며 이 땅에서 살아가라는 부르심입니다. 그래서 제자들은 크게 기뻐하며 예루살렘으로 돌아갔습니다. 슬퍼하지 않았습니다. 왜요? 승천은 떠남이 아니라, ‘더 깊은 함께 있음’이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우리 안에는 그 하느님의 형상이 남아 있습니다. 우리는 양심을 통해 옳고 그름을 식별할 수 있습니다. 그 양심으로 우리는 아픈 사람을 보면 도와주고 싶고, 어려운 이웃을 보면 마음이 아파집니다. 그 양심은 예수님이 말씀하신 ‘하늘나라의 씨앗’입니다. 그래서 착한 사마리아 사람처럼 자비를 실천할 수 있고, 베드로처럼 잘못한 일에 회개할 수 있으며, 배우지 않아도 겸손과 사랑을 실천할 수 있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승천은 우리에게 이렇게 말합니다. "너희도 나처럼 하늘을 향해 걸어오라. 땅에 묶여 살지 말고, 하늘의 가치로 살아라." 오늘 우리는 이 미사 안에서, 승천하신 주님을 바라보며 다시 결심해야 합니다. 자비를 실천하면 좋겠습니다. 겸손을 배우고, 회개의 삶을 살면 좋겠습니다. 그리고 우리가 머무는 그 자리에서, 하늘을 가리키는 사람들이 되면 좋겠습니다. “성자 그리스도의 승천으로 저희를 들어 높이셨으니, 저희가 거룩한 기쁨에 가득 차 감사의 제사를 바치며, 머리이신 그리스도께서 영광스럽게 올라가신 하늘나라에 그 지체인 저희의 희망을 두게 하소서.”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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