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미사

우리들의 묵상/체험

제목 송영진 신부님_<“내가 세상을 이겼다.”>
이전글 이영근 신부님_“그러나 용기를 내어라. 내가 세상을 이겼다.”(요한 16,33)  
다음글 6월 2일 _ 김건태 루카 신부님  
작성자최원석 쪽지 캡슐 작성일2025-06-02 조회수51 추천수2 반대(0) 신고

 

“그러자 제자들이 말하였다. ‘이제는 드러내 놓고

이야기하시고 비유는 말씀하지 않으시는군요.

저희는 스승님께서 모든 것을 아시고, 또 누가

스승님께 물을 필요도 없다는 것을 이제 알았습니다.

이로써 저희는 스승님께서 하느님에게서 나오셨다는 것을

믿습니다.’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대답하셨다. ‘이제는

너희가 믿느냐? 그러나 너희가 나를 혼자 버려두고

저마다 제 갈 곳으로 흩어질 때가 온다. 아니, 이미 왔다.

그러나 나는 혼자가 아니다. 아버지께서 나와 함께 계신다.

내가 너희에게 이 말을 한 이유는, 너희가 내 안에서

평화를 얻게 하려는 것이다. 너희는 세상에서 고난을

겪을 것이다. 그러나 용기를 내어라.

내가 세상을 이겼다.’(요한 16,29-33)”

1) “이제는 너희가 믿느냐?” 라는 말씀은, 제자들의 믿음을

인정한다는 뜻이 아니라, 인정할 수 없다는 뜻으로 하신

말씀인데, 뒤의 “너희가 흩어질 때가 온다.” 라는 말씀과

합하면, “너희가 지금은 나를 믿는다고 말하지만,

조금 후에는 나를 버려두고 흩어질 것이다.”가 됩니다.

제자들은 자기들이 예수님의 말씀을 알아들었다고

생각했지만 그 생각은 착각이었고, 또 자기들이 예수님을

믿고 있다고 생각했지만, 믿음이란 생각이 아니라 ‘삶’입니다.

예수님이 체포될 때 제자들이 예수님을 버려두고

흩어진 것은, 그들의 믿음이 부족했다는 것을 나타냅니다.

믿는다고 생각하는 것은 믿음이 아니라, ‘믿는 대로 사는 것’,

또는 ‘믿는 대로 행하는 것’이 믿음입니다.

베드로 사도의 경우, 그는 “주님을 위해서라면 저는

목숨까지 내놓겠습니다.” 라고 장담했습니다(요한 13,37).

그때 예수님께서는 그에게, “나를 위하여 목숨을 내놓겠다는

말이냐?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에게 말한다. 닭이 울기 전에

너는 세 번이나 나를 모른다고 할 것이다.” 라고

말씀하셨습니다(요한 13,38).

주님을 위해서라면 목숨까지 내놓겠다는 베드로 사도의 말은

‘진심으로’ 한 말이었을 것이고, 또 그 당시에는, 자기가

세 번씩이나 예수님을 모른다고 말하게 된다는 것은

상상할 수도 없는 일이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모든 일이 예수님 말씀대로 되었다는 것을

우리는 잘 알고 있습니다.

베드로 사도가 마음에도 없는 말을 한 것이 아닌데도

자기가 한 말을 지키지 못한 것은, 또 세 번씩이나 예수님을

모른다고 말한 것은, ‘믿음의 부족’이 원인이었습니다.

<그렇지만 나중에, 부활하신 예수님을 만나고 나서,

또 성령 강림 때 성령의 은사를 받고 나서,

베드로 사도는 ‘믿음의 완성 단계’에 도달하게 되고,

주님을 위해서 목숨을 바쳤습니다.

예수님의 수난 때에는 실행하지 못했던 자신의 말을,

자기가 말한 그대로, 또 자기가 믿는 그대로 실행했습니다.>

2) “나는 혼자가 아니다. 아버지께서 나와 함께 계신다.”는,

“너희가 나를 버려두고 흩어져도 아버지께서 항상

나와 함께 계시니 나는 혼자가 아니다.”인데, 이 말씀은,

당신의 십자가 수난은 힘이 없어서 당하는 일이 아니라

하느님께서 하시는 일이라는 뜻으로 하신 말씀입니다.

또 하느님께서 하시는 일이라는 말은, 인간들의 구원을

바라시는 하느님의 뜻을 이루기 위해서 예수님께서

당신의 목숨을 내주시는 일이라는 뜻이기도 합니다.

아버지께서 함께 계신다는 말씀에 대해서, “예수님께서는

십자가에서 ‘저의 하느님, 저의 하느님, 어찌하여 저를

버리셨습니까?(마태 27,46)’ 라고 부르짖으셨다. 그 일과

이 말씀은 서로 모순되지 않는가?” 라고 물을 수 있습니다.

“저의 하느님, 저의 하느님, 어찌하여 저를 버리셨습니까?”는

시편 22편 2절이고, 시편 22편의 전체 내용을 보면,

버림받은 사람이 부르는 ‘비탄의 노래’가 아니라, 항상 함께

계시는 하느님을 찬양하는 노래이기 때문에, 아버지께서

함께 계신다는 예수님의 말씀과 모순되지 않습니다.

3) “내가 너희에게 이 말을 한 이유는”이라는 말씀에서

‘이 말’은, 요한복음 15장과 16장의 말씀들을 가리킵니다.

“너희가 내 안에서 평화를 얻게 하려는 것이다.” 라는

말씀은, “너희에게 믿음과 용기를 주기 위해서다.”입니다.

‘참 평화’는 예수님에 대한 믿음에서부터 시작됩니다.

그래서 이 말씀은, 앞의 14장 1절의 말씀에 연결됩니다.

“너희 마음이 산란해지는 일이 없도록 하여라.

하느님을 믿고 또 나를 믿어라(요한 14,1).”

“너희는 세상에서 고난을 겪을 것이다.”는, “내가 겪은

것처럼 너희도 그렇게 고난을 겪을 것이다.”이기도 하고,

“너희는 ‘세상에서는’ 고난을 겪어도, ‘내 안에서는’

평화를 얻을 것이다.”이기도 합니다.

“그러나 용기를 내어라. 내가 세상을 이겼다.” 라는 말씀은,

이 모든 싸움에서 ‘승리자’는 당신이라는 선언입니다.

안 믿는 자들의 눈에는 예수님의 십자가 수난과 순교자들의

순교가 ‘패배’로 보이겠지만, 패배가 아니라 승리입니다.

죽음을 물리치고 영원한 생명을 얻는 일이기 때문입니다.

예수님께서 ‘이길 것이다.’가 아니라 ‘이겼다.’ 라고

말씀하신 것은, 십자가 수난 전에 이미

승리가 확정된 상태라는 것을 나타냅니다.

사도 요한은 세상을 이기는 것에 대해서 이렇게 말합니다.

“하느님을 사랑하는 것은 바로 그분의 계명을 지키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분의 계명은 힘겹지 않습니다.

하느님에게서 태어난 사람은 모두 세상을 이기기

때문입니다. 세상을 이긴 그 승리는 바로 우리

믿음의 승리입니다. 세상을 이기는 사람은

누구입니까? 예수님께서 하느님의 아드님이심을

믿는 사람이 아닙니까?(1요한 5,3-5)”

주님이신 예수님이 ‘승리자’이시니, 예수님의 뒤를 따르는

신앙인들도 ‘승리자’입니다.

송영진 모세 신부

-------------------------------------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태그
COMMENTS※ 500자 이내로 작성 가능합니다. (26/500)
[ Total 27 ] 기도고침 기도지움
등록하기
※ 로그인 후 등록 가능합니다. 파일 찾기